가을비가 스며든 땅속, 잠들어 있던 세균이 깨어난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에 비가 내린다. 농작물은 수확됐지만 흙 속에는 미처 흡수하지 못한 비료 성분이 남아 있다. 빗물은 이 질소 성분을 녹여 땅속으로 운반한다. 그 아래에서는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들이 비료 핵심 성분인 질산염을 분해하고 있다. 사람에게는 오염물질이지만 일부 세균에게는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 과정의 일부다. 질산염을 여러 물질로 바꾸고 최종적으로 질소 기체를 대기로 돌려보낸다.
땅속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들이 비료 핵심 성분인 질산염을 분해한다.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뉴스펭귄
과학자들은 이 작은 생명체의 활동을 촉진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새로운 세균을 투입하는 대신 원래 살던 세균에게 수소를 공급했다. 그리고 온도를 13℃ 높인 결과 질산염 제거 속도가 53% 빨라졌다. 세균의 양과 종류도 달라졌다. 2026년 10월 5일 국제학술지 『Applied and Environmental Microbiology』에 발표된 독일 바이로이트대 등의 공동연구 결과다. 땅속에 이미 존재하는 미생물의 에너지 공급 조건을 바꿔 정화 활동을 촉진한 것이다.
가을비가 스며든 땅속에서는 오염물질의 이동과 미생물의 분해가 동시에 진행된다. 빗물이 질소를 운반하는 동안 세균은 그 일부를 다른 물질로 바꾼다. 지금 우리 발밑에서는 얼마나 많은 질산염이 땅속으로 들어가고, 또 얼마나 많은 질산염이 세균에 의해 사라지고 있을까. 한반도 지하기후위기(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제주 마늘밭 비료 권장량 2.6배…절반 줄여도 생육 유지
제주 서부지역 마늘밭에서는 농민들이 필요 이상으로 많은 비료를 사용하는 문제가 확인됐다. 수확량을 높이기 위해 뿌린 비료가 토양에 축적되면서 영양분의 균형을 무너뜨릴 위험을 키운 것이다. 제주도 농업기술원이 2022~2024년 대정읍과 한경면 등 서부지역 108개 농가를 조사한 결과, 질소비료 사용량은 표준량의 2배를 넘었다. 인산과 칼륨도 적정 범위를 초과했다. 제주연구원의 2024년 10월 농민 100명 조사에서도 마늘 재배 농가의 질소비료 사용량은 권장량의 2.6배, 인산은 6.4배, 칼륨은 3.4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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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료 사용 기준으로 작황을 꼽은 응답은 40.3%, 비료가격은 33.6%였다. 농업기술센터의 권장량을 참고한다는 응답은 9.7%에 그쳤다. 농민들은 비료를 줄이면 수확량과 품질이 떨어질 것을 우려했다.
하지만 비료를 많이 준다고 작물이 더 잘 자라는 것은 아니다. 토양에 염류가 쌓이면 뿌리가 물을 흡수하기 어려워진다. 수분이 충분해도 작물은 물 부족과 비슷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충남 부여와 예산의 방울토마토 농가 47곳에서도 양분 과잉이 확인됐다. 농촌진흥청 조사에서 10a 당 질소비료 사용량은 평균 26.9㎏으로 적정량보다 8.6㎏ 많았다. 인산과 칼륨도 각각 9.7㎏, 4.9㎏ 초과했다.
과잉 시비는 농민에게 생산비 부담을 안긴다. 비료를 더 사서 뿌려도 작물의 생육이 나빠지면 수확량까지 감소할 수 있다. 제주도 농업기술원은 토양검정을 바탕으로 질소 10%, 인산 5%, 칼륨 3%의 마늘 전용 비료를 개발했다. 2025년부터 농가 실증을 추진했고, 2026년 5월 조사에서는 관행 농법보다 비료 사용량을 53.2% 줄여도 마늘 생육에 큰 차이가 없었다.
비료 사용량은 토양의 화학적 성질도 바꾼다. 암모늄은 미생물에 의해 질산염으로 전환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소이온은 토양 산성화를 촉진한다. 산소가 부족한 곳에서는 일부 세균이 질산염을 단계적으로 분해해 질소 기체로 바꾼다. '탈질'이라는 과정이다. 에너지원이 부족하거나 온도 조건이 맞지 않으면 분해가 느려지고 아질산염이나 온실가스인 아산화질소가 중간 생성물로 발생할 수 있다. 제주 농경지에서는 토양에 공급하는 질소를 줄이고 있다. 이미 축적된 질산염을 제거하는 방법은 땅속 세균의 활동에서 찾을 수 있다.
토양에 염류가 쌓이면 뿌리가 물을 흡수하기 어려워진다.?사진은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로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수소 공급에 정화속도 53% 증가…세균의 생존 전략도 달라졌다
독일 바이에른주 아우텐리트의 지하 8~10m에서 채취한 오염 퇴적물에 수소를 공급하자 미생물의 활동이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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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도를 12℃에서 25℃로 높였을 때 퇴적물 1g당 하루 평균 질산염 제거량은 0.74마이크로몰에서 1.13마이크로몰로 증가했다. 제거 속도가 53% 빨라진 것이다. 그러나 정화를 주도하던 아시도보락스(Acidovorax)의 비중은 오히려 줄었다. 12~15℃에서 전체 미생물 군집의 70%를 차지했지만 20~25℃에서는 51%로 낮아졌다. 대신 슈도모나스 등 다른 세균이 늘었다. 아시도보락스와 슈도모나스의 일부 종은 질산염을 분해하는 세균이다.
퇴적물 1g당 16S 리보솜 RNA 유전자 사본 수는 배양 전 4,500만 개에서 25℃ 배양 후 9,000만 개로 증가했다. 미생물 다양성을 나타내는 섀넌지수도 12℃의 1.17에서 20℃에는 1.80으로 높아졌다. 특정 세균의 비중이 줄어드는 동안 전체 군집의 구성과 정화 속도가 함께 달라진 것이다.
국내에서도 세균이 정화 환경에 적응하면서 우세종이 바뀌는 현상이 확인됐다. 2006년 서울대 연구팀은 황과 석회석을 이용한 질산염 정화장치를 500일간 가동했다. 초기 15%였던 탈질세균 티오바실러스 데니트리피칸스의 비중은 100일 뒤 장치 하부에서 94%까지 증가했다. 500일 뒤에는 장치 전체의 86%를 차지했고 질산염 제거율은 최대 99%에 달했다. 한국지하수토양환경학회 학술지 《지하수토양환경》에 발표된 연구로, 정화물질과 미생물의 적응 조건이 처리 효율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독일 실험에서는 세균의 유전자에서도 흥미로운 특징이 발견됐다. 아시도보락스 데플루비이(Acidovorax defluvii)는 주로 유기물을 이용하는 세균으로 알려졌지만 이번에 우세했던 계통은 수소를 이용하고 이산화탄소를 세포 구성물질로 만드는 유전자까지 갖고 있었다. 16만 염기쌍 길이의 DNA 구간에 관련 유전자들이 모여 있었다. 휘발유 엔진을 사용하는 자동차에서 수소를 이용하는 별도의 동력장치를 발견한 것과 비슷하다.
복원한 미생물 유전체 28개 가운데 12개에서는 질산염을 질소 기체까지 전환할 수 있는 유전자 경로가 확인됐다. 수소 이용 유전자 주변에는 DNA 이동에 관여하는 유전자도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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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세균으로 유전적 기능이 전달될 수 있는 구조다. 유사한 유전자 집합은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윈드케이브 국립공원의 지하 호수와 테네시주 오크리지의 지하수, 흑해의 기수 환경에서 확보된 미생물 유전체에서도 확인됐다. 서로 다른 지역의 세균들이 수소를 이용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땅속 정화 능력은 세균의 수뿐 아니라 보유한 유전자와 에너지 이용 능력, 군집 구성에 따라 달라진다.
충남 예산 정화 84일 만에 효과 소멸…겨울엔 처리속도 0까지 하락
충남 예산군 농경지역에서는 오염된 지하수를 처리하던 정화시설의 효과가 3개월도 유지되지 못했다. 2016년 조사 당시 지역 관정 42곳 가운데 22곳에서 질산성질소가 수질기준을 초과했던 지역이다. 광운대 연구팀은 오염 지하수에 영가철(산화되지 않은 순수한 철,Fe?)과 미생물을 이용한 복합 정화물질을 주입했다. 지하수 흐름을 따라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투과성 반응벽 방식이다.
설치 후 42일까지 질산성질소 농도는 5㎎/L 미만이었다. 그러나 84일째에는 초기 농도로 돌아왔다. 정화물질의 반응성이 떨어지면서 처리 효과가 사라졌다. 현장에서는 아질산성질소와 암모니아성질소가 검출됐다. 미생물 다양성도 증가했고 탈질세균을 포함한 베타프로테오박테리아 계열이 크게 늘었다. 2021년 한국환경영향평가학회 학술지 《환경영향평가》에 발표된 현장 연구다. 미생물이 정화 과정에 관여할 수 있지만 처리 효과를 유지하려면 정화물질의 반응성과 생물학적 조건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온도 역시 정화 능력을 좌우한다. 2026년 전북대 연구팀은 소나무 우드칩을 채운 실험장치에 질산염이 포함된 물을 통과시켰다. 나무조각은 세균이 질산염을 분해하는 데 필요한 유기물을 공급한다. 24.4℃에서는 질산염 농도가 48.0㎎/L에서 2.6㎎/L로 떨어졌다. 제거율은 94.6%였다. 그러나 8.8℃에서는 49.0㎎/L에서 40.9㎎/L로 줄어드는 데 그쳤다. 제거율은 16.5%였고 분해 속도는 5.9배 차이가 났다. 이 내용은 한국지하수토양환경학회 학술지 《지하수토양환경》 2026년 8월호에 실렸다.
미국 뉴욕주 농경지에서도 계절에 따른 차이가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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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 지역에 나무조각과 바이오차를 채운 정화시설을 설치하고 3년간 조사했더니 겨울철 질산태질소 제거 속도는 0까지 떨어졌다. 여름에는 정화시설 1㎥당 하루 최대 72g을 제거했다. 전체 평균 제거율은 50%였다. 겨울에는 낮은 온도와 유기탄소 공급 부족이 정화 성능을 제한했다. 2017년 국제학술지 《Journal of Environmental Management》에 발표된 이 현장 연구는 농민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온도를 지나치게 높여도 정화 능력은 떨어졌다. 2025년 3월 《Science of the Total Environment》에 발표된 독일 헬름홀츠 환경연구센터 등의 공동연구는 지하수층 미생물에 초산염을 공급하고 온도를 12~80℃로 조절했다. 탄소 동위원소로 분해 반응을 추적한 결과 12~38℃에서는 질산염 환원과 초산염 분해가 활발했다. 45~60℃에서도 반응은 이어졌지만 속도는 느려졌다. 80℃에서는 해당 반응이 검출되지 않았다. 12~25℃에서는 슈도모나스과와 코마모나스과, 38℃에서는 리조비움과가 우세했다. 45~60℃에서는 고온에 적응한 심비오박테리아과와 파에니바실루스과 등이 증가했다.
고온에 적응한 세균이 기존 미생물의 역할을 이어받았지만 정화 속도까지 유지하지는 못했다.
세균이 사용하는 효소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효소는 화학반응을 돕는 단백질로, 지나친 고온에서는 일부 효소의 입체구조와 기능이 달라진다. 고온성 세균은 열에 적응한 효소를 갖지만
모든 세균의 처리 능력이 같지는 않다.
독일의 수소 공급 실험에서는 25℃까지 온도를 높였을 때 정화 속도가 증가했다. 초산염을 사용한 고온 실험에서는 45℃ 이상에서 오히려 느려졌다. 에너지원과 온도, 미생물 종류가 함께 작용한 결과다. 실제 농경지에서는 물의 흐름도 정화 성능을 좌우한다.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10~16년간 가동한 나무조각 정화시설 10곳을 조사한 결과, 시설별 연간 질산태질소 제거율의 중앙값은 13.94~99.66%였다. 2026년 7월 국제학술지 《Journal of Environmental Quality》에 발표된 조사다. 한 시설에서는 제거율이 높아졌지만 실제 처리 능력이 개선된 것은 아니었다. 물의 흐름이 제한되고 일부 배수가 시설을 우회하면서 처리시설을 통과한 물의 체류시간이 길어진 결과였다
릴게임다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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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충분한 시간 동안 정화시설을 통과해야 세균이 질산염을 분해할 수 있다. 제거율이 높아도 처리하지 못하고 우회한 물이 많으면 전체 오염물질 제거 효과는 떨어진다. 충남 예산과 미국 뉴욕·아이오와의 현장 사례는 미생물 정화시설의 성능이 주변 환경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정화물질의 반응성과 물의 온도, 흐름, 세균의 에너지 공급이 유지돼야 처리 효과도 지속된다. 미생물이 살아남는 온도와 오염물질을 가장 빠르게 제거하는 온도는 서로 다르다. 세균의 생존 능력만큼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중요한 이유다.
한반도 땅속, 미생물의 질서가 바뀌고 있다
한반도 기후위기는 땅속 생명체의 생존 조건까지 바꾸고 있다. 토양 온도가 오르고 강수 양상이 달라지면 세균의 활동 시기와 서식 환경, 군집 구성에도 변화가 생긴다.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미생물의 물질순환도 영향을 받는다. 세균은 땅속의 탄소와 질소를 분해하고 재순환시킨다. 토양이 따뜻해지면 일부 미생물의 활동이 빨라지지만 지나친 고온과 건조는 분해를 억제한다. 집중호우로 흙 속 산소가 부족해지면 질소를 처리하는 세균의 활동과 아산화질소 배출 조건도 달라진다.
이러한 변화가 지속되면 한반도 농경지에서는 작물이 이용할 영양분과 토양에 저장되는 탄소, 대기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이 함께 달라질 수 있다. 탄소 분해가 빨라져 온실가스 배출이 늘면 기온 상승을 다시 촉진하는 순환도 가능하다.
한반도 땅속 미생물이 이미 생태학적 임계。에 도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른 나라보다 변화가 심각한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토양 온도와 수분 조건이 장기간 달라지면 기존 미생물이 줄어든 자리를 다른 세균이 차지하고, 그 과정에서 정화 능력과 탄소 저장 기능도 변할 수 있다. 한반도 지하기후의 미래는 미생물이 이러한 변화에 얼마나 적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기존의 물질순환을 유지할지, 정화 기능이 약해지고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전환할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기후위기는 땅속 미생물의 생존 조건을 바꾸고, 미생물은 다시 토양의 화학적 환경과 대기의 온실가스 농도를 바꾼다. 한반도 지하기후의 미래에는 이 작은 생명체들이 어떤 기능을 유지하고 잃게 되는지가 깊이 관여한다. 그 변화는 농경지의 생산성과 토양의 탄소 저장, 대기의 온실가스 순환으로 이어진다.
제학술지 《Jo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