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휠체어 한 대가 원목실 앞에 멈춰 섰다. 아흔을 바라보는 목사님이셨다. 오래전 이 병원에서 원목으로 사역하셨지만, 이제는 혼자 몸을 가누지 못하신다. 사모님도 편찮으셔서 요양병원에 누워 계신다고 했다. 휠체어를 밀던 딸이 말했다. “아버지가 기억을 많이 잃으셨어요. 그런데 이 병원에서 지내신 젊은 날을 떠올리시면 종종 기억이 돌아오세요. 그래서 남은 날을 행복하게 보내시라고 모시고 왔어요.”
딸은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 곳곳을 돌았다. 건물은 새로 올라가고 복도는 낯설게 바뀌었다. 그래도 추억이 깃든 자리에 이르면 딸이 “아버지, 여기 기억나세요?” 하고 물었다. 그때마다 목사님의 얼굴이 환해지셨다. 주일 예배 시간이면 더 그랬다. 찬송이 시작되면 창백하던 뺨에 붉은 핏기가 돌았다. 예배를 마친 뒤 손을 잡아 드리고 기도하면, 예배실이 울리도록 “아멘” 하고 대답하셨다.
그 한마디에 긴 세월이 담겨 있었다. 젊은 날 목사님은 이 병원의 병상 곁에서 수많은 환자의 손을 잡고 기도하셨다. 이제 그 손이 내 손 안에 있었다. 기도해 주던 분이 기도를 받는 자리에 앉으신 것이다. 그러나 목사님의 “아멘”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고백이었다. 이름도 날짜도 흐려졌지만 그 고백만은 지워지지 않았다. 딸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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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망으로 정신이 흐려진 병상에서도 목사님은 “저는 예수님을 전하러 왔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목사님이 끝까지 붙들고 계신 것은 화려한 경력이 아니었다. 예수님을 전하는 일, 그 한 가지였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출 15:25)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은 사흘 동안 광야를 걸었지만 물을 찾지 못했다. 겨우 찾은 물은 써서 마실 수 없었다. 그곳이 마라다. 백성은 모세를 원망했고,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하나님이 가리키신 것은 대단한 무엇이 아니라,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을 나무 한 조각이었다. 그 나뭇조각이 던져지자 같은 샘의 같은 물이 단 물로 바뀌었다. 그 나뭇조각에서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본다.
병원에도 마라의 쓴 물이 있다. 기다리던 검사 결과가 쓴 소식으로 돌아올 때다. 미디안 광야의 40년이 모세를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사람으로 만들었듯, 그 쓴 소식이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이끈다.
세상 사람들은 기억을 잃은 노인을 두고 “이제 끝났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할 수 있는 일이 하나씩 줄어들 때 많은 환자는 스스로를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자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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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마저 나를 잊으신 것은 아닐까 묻기도 한다.
그러나 마라의 쓴 물은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자리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여 주시려는 자리일지도 모른다. 내 기억이 흩어져도 하나님의 기억은 흩어지지 않는다. 내가 주님의 이름을 잊어도 주님은 내 이름을 잊지 않으신다.
얼마 뒤, 목사님께 더는 해 드릴 치료가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지막 퇴원 날, 목사님은 딸과 함께 원목실을 찾아오셨다. 한때 목사님의 자리였던 방이다. 목사님은 원목실을 둘러보시며 기뻐하셨다. 그리고 내게 말씀하셨다. “자리를 지켜줘서 고맙다.” 병원 밖까지 배웅하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목사님 귀에 대고 말씀드렸다. “목사님, 이 병원에 뿌리신 기도가 지금도 여기 남아 있습니다. 목사님이 잊으셔도 하나님은 다 기억하십니다.” 목사님은 그날도 “아멘” 하셨다.
오래전 목사님이 병상 곁에서 건네신 위로 한마디, 기도 한 줄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누군가의 쓴 물에 던져진 나뭇조각이었다. 이제 그 섬김이 목사님의 흐려진 기억 속에 작은 나뭇조각으로 머물러 남은 날들의 쓴 물을 달게 하기를 기도한다. 목사님은 다 잊으셨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나뭇조각으로 단 물을 마신 환자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할 것이다. 병원은 오늘도 누군가의 쓴 물에 나뭇조각이 던져지는 선교지다.
이경석 목사(명지병원 원목실장)
모른다.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