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아이들이야 누가 해도 잘하겠지만, 힘든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게 진짜 선생님의 역할 아닌가요?"
오래전, 방문교사로 일할 때 한 학부모가 건넨 말이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지금까지도 마음속 깊이 남아 있다. 당시에는 '한글 공부 잘 부탁한다'는 당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아이들을 만나고, 가르치고, 때로는 뜻대로 되지 않는 수업 앞에서 고민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그 말의 무게를 조금씩 알 것 같았다.
글쓰기가 어려운 까닭
필자는 초등학교 방과 후 강사로 독서논술을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의 글을 읽다 보면 한글 표기가 익숙하지 않은 경우를 생각보다 자주 만난다. '굳이'를 '구지'로, '고양이'를 '고냥이'로 쓴다. 저학년뿐 아니라 고학년의 글에서도 기본적인 맞춤법 오류가 반복된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해야 하는 독서논술 수업에서 글자를 쓰는 일부터 막히면 아이들은 생각을 펼치기도 전에 어려움을 느낀다.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는, 읽고 쓰는 경험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고, 글자를 익히는 과정에서 흥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틀린 글자를 찾아 고쳐 쓰게 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까. 한글이 서툰 아이들을 마주할수록 한글을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이런 고민은 최근 한 아이를 만나면서 더욱 깊어졌다.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는 한글을 왜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다 듯 자주 물었다. "선생님, 저는 초등학생도 아닌데 왜 한글을 배워야 해요?" 한글은 학교에 들어가서 배우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초등학교에 가면 책도 읽고 선생님이 불러 주는 글도 써야 해서 미리 배우는 거야"하고 설명하면 아이는 학교에 가지 않으면 되지 않냐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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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의 논리로 주장하는 아이와 이야기가 길어지다 보면 어느새 어른이 되기 싫고 공부도 하지 않는 여섯 살로 영원히 살고 싶다고 했다.
칭찬도 하고 여러 활동도 시도했지만, 아이는 글자를 익히는 일 자체를 즐거워하지 않았다. 어쩌면 한글 공부가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동화책이라며 <똥꼬 아저씨의 하루>를 가져왔다. 그리고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 "저 이거 다 읽을 수 있어요." 반신반의하면서 읽어 보라고 했는데 아이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막힘없이 잘 읽어 내려갔다. 큰 글씨로 적힌 효과음 '쏴아'도 실감 나게 표현했다. 깜짝 놀라서 칭찬해 주고 어머니에게도 기쁜 소식을 전했는데 어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그거 다 외워서 읽은 거예요."
순간 당황했다. 아이는 글자를 읽은 것이 아니라 어머님 말씀대로 유튜브에서 반복해 들은 이야기를 기억해 책의 내용과 연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도 아이가 가진 능력이었다. 좋아하는 이야기를 암기하고 장면을 떠올리며 실감 나게 표현할 수 있는 것. 글자를 읽는 능력은 부족했지만 이야기를 즐기고 받아들이는 힘은 충분했다. 그렇다면 한글 공부도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어느 날 동시가 쓰고 싶다는 아이
그렇게 선택한 책이 <말놀이 동시집>이었다. 모음, 동물, 자음, 비유, 리듬 등 다섯 권 가운데 처음 펼친 것은 '동물' 편이었다. 동물의사가 꿈인 아이에게 친숙한 주제였기 때문이다. 동시를 읽기 시작하자 아이는 생각보다 빠르게 글자를 익혀 나갔다. 그리곤 얼마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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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동시 쓰고 싶어요" 하면서 A4 용지 한 장을 꺼내 '강아지'라는 제목을 쓰고 첫 동시를 완성했다. 작품 옆에는 '꼬마 시인'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동시도 잘 썼지만 중요한 건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스스로 쓰고 싶어 연필을 잡았다는 것이다. 그날 이후 아이는 매일 동시를 썼다. 석 달, 지금까지 쓴 동시가 60여 편이다. 동시를 쓰면서 질문도 많아졌다. '리듬과 비유'에 관해 묻고, 자신이 쓴 작품 가운데 어떤 것이 가장 좋은 지도 궁금해했다.
한글 공부를 싫어 했던 아이가 어느새 글을 읽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글자를 익히기 위해 시작한 활동이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활동으로 바뀌었다. 한글은 더 이상 누군가의 요구에 따라 공부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었다.
이런 경험은 한글 교육의 출발。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물론 동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기초가 저절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모든 아이들이 동시를 통해 한글을 배우는것도 아니다. 다만 아이 마다 배움에 들어서는 '문'이 다를수 있다는 것이다. 교재를 통해 자음과 모음의 원리를 배우고 글자를 정확하게 익히고 맞춤법을 배우며 반복해서 읽고 쓰는 연습도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 들어서는 '문'이 반드시 교재와 문제집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아이가 쓴 동시를 보고 틀린 글씨를 지적하기보다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처음부터 맞춤법과 글씨 모양만 강조하면 부담스러워 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쓰고 싶어 하는 마음을 지켜 주면서 잘못 쓴 글자를 다시 살펴보고 정확한 표기를 익히도록 자연스럽게 도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정확하게 쓰는 교육과 글쓰기를 즐기는 경험을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 일이다.
아이는 여전히 공부보다 노는 것을 더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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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동시를 쓰겠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동시는 상상이잖아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아이에게 동시는 정해진 답을 찾아가는 공부가 아니었다. 마음껏 상상하고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한글을 배우기 위해 시작한 동시가 자기 마음을 펼치는 도구가 된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모든 글자를 완벽하게 익혀야 되는 것은 아니지만, 방과 후 교실에서 아이들의 글을 읽을 때면 여전히 한글 교육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글자를 배우는 방법은 하나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어떤 아이에게는 체계적인 반복 학습이 필요하고, 어떤 아이에게는 좋아하는 이야기를 통해 글자와 친해지는 경험이 먼저 필요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기는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읽고 쓰는 경험을 꾸준히 쌓게 해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글을 정확하게 쓰는 힘은 단기간의 반복만으로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글자를 읽고 쓰는 경험 속에서 조금씩 자라기 때문이다.
여전히 무언가를 가르치는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오래전 한 학부모가 건넨 말은 지금도 내게 질문을 남긴다. 나는 배우기 쉬운 아이만 잘 가르치는 사람인가. 아니면 배우기 어려워하는 아이에게도 배움의 길을 찾아 주는 사람인가.
교육은 앞서가는 아이의 속도에 모두를 맞추는 일이 아니다. 뒤처진 아이를 다그쳐 따라오게 하는 것도 아니다. 아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살피고 그 자리에서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도록 손을 내미는 일이다. 아이마다 속도가 다르기에 가르치는 방법도 달라질 수 있다. 아이가 얼마나 빨리 배우는지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직 배우지 못한 아이에게 어떤 길이 열려 있는지 함께 찾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선생님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
관해 묻고, 자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