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 시간) 저녁 미국 뉴욕 매디슨스퀘어파크에서 열린 뉴욕 최대 아시아계 음식 문화 축제 ‘테이스트 오브 아시아(Taste of Asia)’ 행사에서 현지인 가족들이 이지한 셰프의 ‘TBD 김밥’ 부스에서 김밥을 기다리고 있다. 뉴욕=곽도영 특파원
《“오, 저기 또 한국 치킨 있다(Oh, there’s another Korean chicken)!”
8일(현지 시간) 저녁 미국 뉴욕 매디슨스퀘어파크 잔디밭에서 열린 ‘테이스트 오브 아시아(Taste of Asia)’ 행사 부스들 틈에서 한 10대 여자 아이가 소리쳤다. 그 말에 종이 접시와 포크를 든 또래 아이 두 명이 얼른 뒤를 따라가 부스 앞 줄에 합류했다. 뉴욕의 한식당 ‘노원(Nowon)’에서 차린 한국식 양념치킨 팝업 부스였다.》
테이스트 오브 아시아는 올해로 5년째를 맞은 뉴욕의 대표 아시아 음식 문화 축제. 뉴욕 전역의 아시아 레스토랑 40여 곳이 참여하는 이 축제에서 올해는 4분의 1 가까이가 한식 셰프들의 부스로 차려졌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인 주옥, 아토보이를 비롯해 키사, C as in Charlie, 꼬치, 꽃, 무노, TBD 김밥, 리제 등 쟁쟁한 주자들이 부스를 열고 손님을 맞았다.
올해 이 행사에서 특히 눈에 띄는 건 어린이 관람객이었다. 백인이나 라틴계, 유대계, 아시안 할 것 없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부모 혹은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한식을 즐겼다. 치킨과 김밥처럼 우리에게도 익숙한 부스에는 줄이 길게 늘어섰고, 한식 숯불구이 식당인 꽃과 쉐이크쉑이 협업한 핫도그도 인기였다.
양념치킨과 치킨 무 접시를 들고 있던 아이에게 한국 치킨을 언제 처음 먹어봤는지 물어보자 “식당에서 ‘반찬(Banchan)’으로 나온 걸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재이 리 노원 셰프는 “아이들이 한국식 치킨을 정말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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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한 번만 먹는 게 아니라 두 번, 세 번 다시 받으러 왔다”고 말했다.
● ‘이민자 문화’에서 아이들 데려가는 주말 외식 메뉴로
뉴욕의 미식업계에서 한식은 세 번째 물결(Phase)을 맞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첫 번째는 32번가로 대표되는 K타운을 중심으로 초기 한국인 이민자들이 모여들어 열었던 한식당들이다. 주메뉴는 비빔밥, 불고기였다. 현지인들에겐 주로 ‘한국인 친구가 먹어보라며 데려오는’ 신기한 곳에 가까웠다.
팬데믹 이후 K콘텐츠가 급격히 성장한 뒤에는 삼겹살, 떡볶이, 치킨의 시대가 열렸다. 드라마를 보고 한식 메뉴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주를 이뤘다. 그리고 2026년 현재, 한식당은 이제 아이들을 데리고 주말에 뉴요커들이 가족 외식을 하러 오는 찾아오는 곳이 됐다.
7일 저녁 32번가 K타운 한복판에 있는 한식당 안토를 찾았다. 새롭게 바꾼 메뉴를 선보이기 위해 미디어데이를 연 날이었다. 식당 2, 3층은 외신 기자들과 인플루언서들로 북적였지만 1층에선 여느 때와 같은 일반 손님들의 주문을 받았다.
퇴근하고 온 직장인들과 친구 모임으로 보이는 무리들 사이에서 초등학생쯤 돼 보이는 아이들 둘을 데리고 온 외국인 가족이 눈에 띄었다. 아빠가 불판에서 접시로 옮겨주는 갈비를 포크로 열심히 찍어 먹는 아이들의 모습이 한국인 가족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이들은 다음 세대의 식문화 시장을 이끌어갈 소비자이기도 하다. 이들이 일찍부터 자연스럽게 한식을 접하고 기호로 받아들인다는 건 그만큼 한식 셰프들에게도 희망찬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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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동부 한식세계화추진위원회(KCGC) 5대 회장이자 뉴욕 한식당 ‘두부하우스’, ‘너비아니’ 등을 운영하는 문준호 대표는 “우리가 어릴 때 차이나타운에서 외식했듯이 이제 가족 외식으로 어릴 때부터 한식을 접한 아이들이 뉴요커로 크고 있다”며 “뉴욕의 한식 시장은 ‘핫플(핫플레이스·인기 장소)’로 인식되는 걸 넘어서, 모두가 ‘찐(진짜) 치킨’, ‘찐 떡볶이’를 감별하는 수준까지 왔다”고 말했다.
수요층이 가족 단위로 넓어지면서 ‘키사’, ‘C as in Charile’ 등 비교적 새로 문을 연 한식당들은 K타운을 넘어 이스트빌리지와 같은 젊은 외식 상권으로도 뻗어가고 있다. 미동부 KCGC 신임 회장으로 선임된 김훈이 ‘메주’ 셰프는 5일 뉴욕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제6회 한식의 밤’ 대담 행사에서 “초창기 32번가 K타운은 한국인 손님들을 위한, 한국인 .주들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제 한식당들은 K타운을 벗어나기 시작했고, 뉴욕의 주민들은 자기 동네에 한식당이 있다는 걸 행운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한식의 범주는 주류로도 저변을 넓히고 있다. 2020년부터 뉴욕 브루클린에서 쌀과 누룩으로 직접 막걸리를 주조하고 있는 하나막걸리는 미국 18개주 700곳에 막걸리를 공급하고 있다. 하나막걸리 홈페이지
●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미식 시장, 뉴욕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여 사는 ‘멜팅 팟(melting pot)·여러 인종 문화가 어울린 사회’ 뉴욕은 그만큼 세계에서 가장 치열하고 거대한 미식 무대로도 꼽힌다.
뉴욕시 감사원에 따르면 지난해 8월까지 1년간 뉴욕시 식당 및 기타 외식 업소의 과세 매출은 약 285억 달러(약 38조 원)에 달했다. 연간 40조 원에 육박하는 규모의 외식 시장에서 한식당들이 기회를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각국 음식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뉴욕에서 가장 명확한 성적표 중 하나는 미슐랭 등재 숫자다. 2020년 19곳이었던 뉴욕 내 미슐랭 등재 한국 식당은 지난해 28곳으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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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는 최고 등급, 즉 미슐랭 스타를 받은 식당도 11곳이다. 이중 2024년 미국 한식당 최초로 미슐랭 3스타를 받은 ‘정식(Jungsik)’을 비롯해 한식당 5곳이 지난해 3스타를 받았다.
오랜 기간 대중 외식 시장 강자였던 중식과 비교해서도 한식의 약진은 눈에 띈다. 중식이 오랜 이민 역사와 함께 일찍부터 미국인들의 일상적인 외식 메뉴로 자리 잡았다면, 한식은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대중적인 치킨과 바비큐부터 최고급 코스 요리까지 폭넓은 시장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뉴욕 내 미슐랭 등재 중식당은 20곳이었다. 미슐랭 스타를 받은 중식당은 ‘잉타오(YingTao)’ 한 곳이었다. 볼룬 야오 잉타오 창업자는 올해 1월 미슐랭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레스토랑이 영감을 주었나”는 질문에 “현대적인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들로부터 가장 큰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가 꼽은 식당들은 ‘정식’, ‘꽃’, ‘주아’, ‘꼬치’ 등 모두 한식당이었다. 또 ‘꽃’의 사이먼 김 대표가 자신에겐 친형 같은 존재라며 그로부터 식당 경영과 서비스에 관한 조언을 받았다고도 전했다.
다음 세대의 아이들을 비롯한 대중 외식 시장과 파인다이닝 무대에서 분명 한식은 세 번째 물결을 맞고 있다. 다만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뉴욕 외식 시장에서 확고한 주류에 올라서고 장기간 살아남는 건 또 다른 과제다. 높은 임대료와 인건비, 끊임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식당들 사이에서 도전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수요층이 늘고 ‘찐’ 한국의 맛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안정적인 식재료 조달 체제 마련도 다음 세대 한식 셰프들의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이정미 주뉴욕 한국문화원장은 “뉴욕의 젊은 셰프들이 한식의 전통과 정체성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창의적 해석을 더해 세계 미식계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며 “앞으로 계속될 젊은 세대의 새로운 감각과 도전 정신으로 한식이 더욱 경쟁력을 가지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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