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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위스키와 와인의 불모지로 불립니다. 소주와 맥주가 주를 이루는 시장, 고급 주류에 불리한 주세, 까다로운 기후. 하지만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위스키와 와인을 틔워낸 사람들이 있습니다. 라이프스타일 담당 우태경 기자가 묵묵히 술을 빚어온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국내 최초의 온천이 있어 한때 온천여행지로 유명했지만, 이제는 관광객 발길이 드물어진 시골 마을이다. 이 한적한 마을 깊숙한 곳에 '작은알자스'라고 써붙인 작은 와인 농가가 있다.
한국에서 뜬금없이 프랑스 알자스라니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알자스 출신 도미니크 에이케와 신이현 작가 부부가 빚은 와인을 맛본다면 금세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과실 본연의 맛을 살리는 알자스 지역 내추럴 와인의 양조 철학이 부부의 와인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살았던 부부는 10년 전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알자스의 와인 철학과 충주 수안보의 테루아(Terroir·풍토)를 결합한 개성 있는 와인을 선보이고 있다. 연고도 없는 낯선 지역에서 뚝심 있게 와인을 만들고 있는 부부를 이달 7일 수안보에서 만났다.
터 잡는 데만 4년… "얼마나 힘들지 몰랐어서 시작"
10년 전 충주에 오기 전만 해도 부부의 삶은 농사와 거리가 멀었다. 신 작가는 파리에서 살림을 하면서 글을 썼고, 에이케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성실히 직장을 다녔다. 그러다 에이케에게 2014년 서울에서 일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졌고, 마냥 부푼 마음으로 왔던 한국행이 부부의 삶을 180도 뒤바꿨다.
휴일도 없이 야근이 반복되던 한국 생활이 2년 차로 접어들던 어느 날, 새벽에 퇴근한 에이케는 "이렇게 더 이상 계속할 수는 없어. 죽을 것 같아"라고 말했다. 부부는 곧장 한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파리로 돌아갔지만, 남편이 원한 것은 귀국만이 아니었다.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농부로서 새 삶을 시작하길 원했다. 이후 에이케가 프랑스 농업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 남부 지역의 농지도 알아봤지만, 이번엔 신 작가가 한국에 대한 강렬한 향수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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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두 사람은 다시 한번 삶의 방향을 틀어 한국에서 농사를 짓기로 결심했다.
2016년 전 재산을 처분하고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한국에 왔지만, 의지만 갖고 무모하게 뛰어든 결과는 쓰라렸다. 어디서 농사를 지을지도 알아보지 않았던 터라 땅을 구하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신 작가의 고향 부근인 대구와 경북을 중심으로 경기 파주, 강원 양구까지 전국을 헤맸지만, 마음에 쏙 드는 땅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닿게 된 곳이 충주였다. 이곳에서도 원하는 농지가 빌 때까지 1년여를 기다리면서 다른 밭에서 임대농 신세로 지내야 했다. 지금의 밭에 최종 정착하기까지 장장 4년이 걸렸다.
이 모든 고락은 부부가 함께했다. 에이케야 원해서 농부가 된 것이지만, 신 작가도 농사에 함께 뛰어들어야 했다. 생계가 달린 일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에이케에게 한국은 낯선 이국인 만큼, 신 작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일도 많았다. 에이케가 유기농 풀을 먹고 자란 소의 신선한 똥이 필요하다고 하면 신 작가가 주변 축산 농장을 수소문했고, 꿀벌이 필요하다고 하면 양봉업자에게 연락을 돌렸다. 신 작가는 "얼마나 힘들지 아무것도 몰랐으니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덕분에 10년 전과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며 웃었다.
"와인은 테루아를 솔직하게 담아낸 것"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에 위치한 작은알자스 와이너리 포도밭. 일반적인 와이너리 빈야드와 달리 포도나무만 심겨 있지 않고, 양조용 포도나무와 사과나무 외에도 약 100종의 나무와 허브들도 심겨 있다. 충주=왕태석 선임기자
부부가 일군 5,600㎡ 남짓의 소박한 밭은 다소 정돈되지 않은 듯한 인상을 준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와이너리처럼 포도나무만 질서정연하게 심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은알자스 와이너리에는 양조용 포도나무와 사과나무 외에도 약 100종의 허브와 나무가 곳곳에 심겨 있다. 양조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 식물들이지만 제각기 역할이 있다. 가령 복분자나무는 산속의 영양을 밭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쐐기풀은 땅속 미네랄을 퍼올려주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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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이너리의 주연인 포도나무, 사과나무만큼이나 중요한 핵심 조연인 셈이다.
이는 에이케가 알자스에서 배워온 생명역동(비오디나미·Biodynamie) 농법에 따른 것으로, '작은알자스'만의 테루아를 만들어가는 방식 중 하나다. 사회에서도 모든 생명체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하는 것처럼, 밭 역시 여러 식물이 조화를 이룰 때 가장 좋다는 것이 부부의 지론이다. "포도밭에 포도만 있고 사과밭엔 사과만 있는 것은 인간이 관리하기 좋은 시스템이지, 포도나무와 사과나무는 좋아하지 않죠. 하지만 다른 식물들을 함께 심으면 결국엔 포도나무, 사과나무와도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요."
농사를 지을 때도 부부는 이 농법에 따라 일체의 화학 약품을 사용하지 않는다. 영양제를 써야 한다는 주변 조언에도 유기농을 고수하느라 초반엔 2년 넘게 흉작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부부는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 "좋아해서 시작한 농사라면 좋아하는 방식으로 하는 게 맞죠. 그 방식이 아니면 해야 할 이유가 없어요." 대신 부부는 경북이나 충북 등 다른 지역의 유기농 농가를 찾아가 배움을 구하고, 과실나무도 유럽 품종 대신 한국의 테루아에 더 적합한 한국 품종을 식재하면서 방법을 찾아갔다.
부부가 빚은 와인은 에이케의 애칭을 그대로 딴 '레돔(LESDOM)'으로, 스파클링 사과주인 시드르를 포함해 레드, 화이트, 로제 등 총 6종이다. 모든 와인은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하는 내추럴 방식으로 양조하고 있다. 부부가 생각하는 한 해의 와인 맛은 그해의 테루아와 농부가 기울인 노력을 그대로 담은 것이기에, 자연의 과정을 존중하는 내추럴 방식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내추럴 와인 한 병은 그 와인이 온 땅과 그해의 비바람, 그 풍경을 병 속에 봉인해둔 것과 같아요. 과일이 자란 땅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죠."
"유럽 추종 벗어나 한국 와인 가능성 봐주길"
지난 10년간 갖은 노력을 기울이며 와인 농사를 지어왔지만, 여전히 부부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한국 포도로 와인이 되나요'다. 한국 와인은 한국 사람에게도 생소한 술인 만큼, 평소 와인을 즐긴다는 사람들까지도 이런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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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타국의 유명 산지에서 나오는 포도만이 맛있는 와인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공고하다는 의미다. 그럴 때마다 신 작가는 "모든 포도는 다 와인이 될 수 있어요"라고 답한다. "유럽 와인은 유럽의 테루아를 표현하는 와인이고, 한국 와인도 한국의 테루아를 표현하는 와인일 뿐이에요. 우리나라 와인도 유럽의 어느 와인에 못지않아요."
신 작가는 유럽 와인에 대한 일방적인 추종에서 벗어나, 한국 와인을 더 열린 미각으로 응원해줄 것을 당부했다. 꼭 한국 와인만 마시라는 것이 아니라, '한국 와인은 맛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 오히려 해외에서는 한국 포도가 흔치 않기에, 한국 와인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봤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농사를 짓는 캠벨 포도는 유럽에 없어요. 오히려 어떻게 보면 캠벨 포도로 한국은 개성 있는 와인을 만들 수 있는 거죠."
부부는 특히 충주의 테루아가 세계적 와인 산지인 프랑스 알자스와 비견될 정도로 훌륭하다고 봤다. 우연히 정착하게 됐지만, 충주를 만난 것은 부부에게 '최고의 선택'이라고도 표현했다. 신 작가는 "충주는 지리적으로 사과랑 포도 두 가지 술을 다 만들 수 있는 지역인 데다, 동서남북 어느 지역과도 소통이 좋다"라면서 만족감을 드러냈다. 특히 부부가 터를 잡은 수안보는 충주에서도 물이 깨끗하고 미네랄이 풍부한 지역인 데다 구릉지가 많아 배수가 원활해 와인 농사를 짓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부부의 꿈은 충주의 테루아를 계속해서 설득해나가는 것이다. 신 작가는 "지금 하는 방식대로 계속 농사를 짓고 와인을 만들고 싶지만, 나이가 적지 않기 때문에 언제까지 (와이너리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신 작가에게 와이너리는 단순한 양조장이 아니라, "지역의 역사적인 문화재만큼이나 그 지역의 테루아를 표현하는 중요한 문화재"다. "꼭 우리가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와인을 계속 만들어서 충주의 테루아를 이어나갔으면 좋겠어요. 이게 저희의 최종 목표예요."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에 위치한 '작은알자스 와이너리'의 포도밭에서 거위들이 햇볕을 쬐고 있다. 부부가 택한 농법인 '생명역동농법'에서는 거위가 제초 등의 역할을 하면서, 밭의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충주=왕태석 선임기자
틔워낸 사람들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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