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윤 대한안과학회 이사장
어린 시절 시작된 근시가 고도근시로 진행하면 성인이 된 뒤 녹내장과 망막질환 등 실명을 유발할 수 있는 질환의 위험이 높아진다. 시력교정수술로 안경을 벗더라도 이미 길어진 안구와 그에 따른 위험은 남는다.
“고도근시가 있는 말기 녹내장 환자는 치료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미리 발견했다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치료할 기회를 놓친 환자들을 종종 봅니다.”
김찬윤 대한안과학회 이사장(연세대 의대 안과학교실 교수)은 15일 동아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소아·청소년 근시를 국가 차원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랫동안 녹내장 환자를 진료해 온 그는 이미 시신경이 심하게 손상된 환자들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근시 예방과 조기 관리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근시를 방치하는 것이 미래 실명의 큰 위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투자하자는 것”이라며 “과거에는 근시가 유전적으로 생기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진행을 늦추는 치료법이 나오고 예방에 도움이 되는 생활습관도 연구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 초1 시력 이상 30%, 고1은 74%…근시 관리 언제 시작해야 하나
2025년 교육부 학생 건강검사 표본통계에 따르면 초등학교 1·4학년과 중·고등학교 1학년의 시력 이상 판정률은 58.25%로, 전년보다 1.21%포인트 높아졌다. 초등학교 1학년에서는 30.4%였지만 중학교 1학년 66.4%, 고등학교 1학년 74.5%로 상급 학년에서 더 높았다. 다만 시력 이상 판정률은 근시 유병률과 같은 개념은 아니다.
서울지역에서 병역판정검사를 받은 후기 청소년 남성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2022년 근시 유병률이 73.69%, 고도근시 유병률이 22.04%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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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진은 기존 추세가 이어진다는 가정 아래 2050년에는 각각 90.90%, 31.26%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정 지역의 남성 집단을 대상으로 한 분석이어서 전국 청소년 전체에 적용할 수는 없다.
김 이사장은 한국의 근시 유병 실태를 장기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과 대만, 싱가포르 등은 오래전부터 국가와 학교 차원에서 근시 예방을 위한 정책과 권고를 시행해 왔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우려하는 시기는 초등학교 저학년이다. 근시가 어린 나이에 시작될수록 진행할 수 있는 기간이 길어지고, 고도근시로 발전할 위험도 커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검사해 보면 이미 근시가 시작된 아이들이 있습니다. 가족력이 있거나 근시가 빠르게 진행하는 아이들은 안과에서 적절한 조치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근시는 안구의 앞뒤 길이인 ‘안축장’이 길어지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근시가 심해지면 망막과 시신경을 비롯한 안구 조직에 구조적인 변화가 생길 수 있다. 고도근시에서는 망막박리나 근시성 황반병증, 녹내장 등의 위험이 높아진다.
국내 연구에서는 고도근시가 있는 사람의 녹내장 진단 오즈비가 근시가 없는 사람보다 약 4.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즈비는 두 질환의 통계적 연관성을 보여주는 수치로, 녹내장이 발생할 확률이 정확히 4.6배라는 의미는 아니다.
특히 시력교정수술에 대한 오해를 경계했다. 김 이사장은 “라식이나 라섹으로 안경을 벗으면 고도근시의 위험도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며 “수술을 받아도 근시가 진행하면서 얇아진 망막이나 시신경 조직이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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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력교정수술 후에도 고도근시 환자에게 정기적인 안과검진이 필요한 이유다.
● 학교 시력검사, 무엇이 부족한가…“매년 검사하고 안과 진료로 연결해야”
대한안과학회가 추진하는 핵심 정책은 학교 시력검사 강화다. 초·중·고등학교 전 학년을 대상으로 최소 연 1회 시력 선별검사를 실시하고, 이상이 발견된 학생을 안과 진료로 연결하자는 것이다.
현행 학교 건강검진은 초등학교 1·4학년과 중·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검진기관에서 시행한다. 그 밖의 학년에서도 교육청별 계획에 따라 별도의 시력검사를 실시하지만, 시행 여부와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김 이사장은 “지금 제일 큰 문제는 검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학교마다 일률화돼 있지 않다는 것”이라며 “매년 시력검사를 해서 시력이 떨어지거나 이상이 의심되는 아이들은 안과에서 정밀검사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가 자신의 시력 저하를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는 。도 학교 검사가 필요한 이유다. 김 이사장은 “어릴 때부터 잘 안 보였던 아이들은 그것이 정상인지 아닌지 모를 수 있다”며 “한쪽 눈만 나쁘고 다른 쪽 눈이 좋으면 시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학교에서 모든 학생에게 전문적인 안과검사를 시행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일반 시력검사로 이상이 의심되는 학생을 선별한 뒤 안과에서 굴절검사나 조절마비굴절검사, 필요한 경우 안축장 측정 등을 시행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봤다.
그는 “학교에서는 일단 시력검사라도 하고, 시력이 떨어졌거나 안경을 쓰기 시작한 아이들은 안과에서 정밀검사를 받게 하는 것이 현재 인프라에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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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횟수를 늘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사후관리다. 근시는 성장기에 진행하기 때문에 한 번의 검사 결과보다 이전과 비교해 얼마나 빠르게 나빠졌는지가 중요하다. 학회는 학생별 검사 결과를 누적 관리하고, 이상이 발견된 학생에게 진료를 권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안과 진료를 받았는지 확인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검사 결과를 장기간 관리하고 의료기관과 연계하는 과정에서는 학생의 개인정보와 의료정보 보호, 학교 현장의 업무 부담도 고려해야 한다. 단순히 검사받는 학생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조기 발견과 적절한 치료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정책의 핵심이다.
● 복지부는 경제성 자료 요청…“비용 적게 드는 정책부터 시작하자”
학교 시력검사 확대와 근시 예방정책에 관한 학회의 제안은 아직 구체적인 제도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대한안과학회는 지난 9월 28일 국회에서 열린 근시 진행 억제 정책토론회 등을 통해 학교검진 강화와 야외활동 확대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김 이사장에 따르면 당시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정책의 경제성과 효과를 판단할 자료를 요청했고, 학회는 관련 자료를 준비하고 있다.
교육부와의 구체적인 협의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김 이사장은 “교육부에는 아직 구체적으로 제안하지 않았지만 조만간 제안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전국적으로 검진을 확대하려면 예산과 인력, 검사 결과를 관리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다만 김 이사장은 기존 학교 인프라를 활용한 기본적인 시력검사부터 시작하면 초기 비용을 크게 늘리지 않고도 추진할 수 있다고 봤다.
“시력검사는 반드시 숙련된 사람이 해야 하는 검사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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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표를 마련하고 정해진 방법에 따라 측정한 뒤 이상이 있는 학생에게 안과 방문을 권고하면 됩니다.”
안저검사나 안축장 측정 같은 정밀검사를 학교검진에 포함하려면 별도의 장비와 인력이 필요하다. 모든 학생에게 정밀검사를 의무화하기보다 기본 선별검사부터 시작해 효과를 평가하면서 단계적으로 확대하자는 것이 그의 제안이다.
김 이사장은 “비용 때문에 주저된다면 돈이 많이 들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라며 “효과가 확인되면 정밀검사를 포함하는 방향으로 단계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검진 횟수를 늘리는 것만으로 근시 발생이나 진행, 장기적인 합병증이 줄어든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학회는 시범사업을 통해 근시의 조기 발견율과 안과 진료 연계율, 진행 속도, 비용효과성 등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 “학교에서 하루 40분만이라도 밖으로”…부모에게만 맡길 수 없는 근시 예방
김 이사장이 가장 먼저 시행해야 할 정책으로 꼽은 것은 학교 야외활동 확대와 정기적인 시력 선별검사다.
야외활동은 근시 발생을 예방하는 효과가 비교적 일관되게 확인된 생활습관이다. 중국 광저우에서 초등학생 약 19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무작위 임상연구에서는 수업일마다 40분의 야외활동을 추가하고 방과 후 야외활동을 권장한 집단의 3년간 근시 발생률이 30.4%로, 기존 생활을 유지한 집단의 39.5%보다 낮았다. 상대적으로 약 23% 감소한 결과다.
김 이사장은 “가능하다면 하루 2시간 야외활동을 하는 것이 좋지만,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학교에서 40분부터라도 시작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회는 우선 학교에서 하루 40분의 야외활동 시간을 확보하고 가정에서도 시간을 보태 하루 총 60분 이상 실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장기적으로는 하루 2시간가량 야외활동을 하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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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밝은 빛을 쬐는 것이 중요하다. 실내에서는 조도를 높여도 야외만큼 밝은 환경을 만들기 어렵다”며 “야외에 나가 있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야외활동은 이미 발생한 근시의 진행을 늦추는 효과보다 근시가 처음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는 효과에 대한 근거가 더 확실하다. 근시가 시작된 학생에게는 정기적인 안과검진과 필요한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현재 근시 진행을 늦추기 위한 방법으로는 저농도 아트로핀 .안제, 특수 설계 안경렌즈, 각막굴절교정렌즈 등이 활용된다. 나이와 근시 정도, 진행 속도, 가족력 등을 고려해 치료 방법을 선택하며, 모든 근시 아동에게 약물이나 특수렌즈 치료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김 이사장은 “치료 방법이 여러 가지이기 때문에 아이의 진행 속도와 선호도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며 “한 가지 방법으로 효과가 충분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으로 바꾸거나 병행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상에서는 책이나 스마트폰 화면 등 가까운 곳을 오래 바라보는 습관에도 주의해야 한다. 그는 근거리 작업을 30분 정도 했다면 10분 정도 눈을 쉬게 하는 생활수칙을 권했다.
문제는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한국 아이들의 일상이다. 공부 시간을 줄여 야외활동을 늘리기가 쉽지 않은 만큼 부모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학교에서 해줘야 한다”며 “근시 예방을 개인이나 부모에게만 맡기지 말고 국가나 학교가 책임지고 교육과정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두 자녀도 근시가 심했다고 털어놨다. “우리도 그때는 잘 몰랐다”며 당시에는 지금처럼 근시 예방의 중요성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의 눈 건강을 지켜주는 일도 중요합니다. 야외활동과 정기적인 시력검사, 근거리 작업 중 휴식 같은 생활수칙을 꼭 실천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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