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청소년들 사고, 평생 잔인한 말 들어”
故 이지혜양 조속한 명예회복 목소리도
인천시, 처음으로 추모제 직접 주관
박찬대 시장 “책임 사라지지 않아” 사과
인천 연안부두 팔미도 선착장을 떠난 배가 빨간 등대를 지나 11번 부표에 가까워지자 기적 소리가 울려 퍼졌다. 흰 국화를 손에 쥔 유족들은 바다를 향해 꽃을 던졌다. 배가 부표에서 멀어질 때까지 한참 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손을 흔들었다. 팔미도 해상은 27년 전 인현동 화재 참사 희생자들의 유골이 뿌려진 곳이다.
‘인현동 화재 참사’ 27주기를 맞은 30일 오전 인천 팔미도 인근 해상에서 희생자들을 기리는 해상추모제가 열렸다. 올해는 참사 발생 27년 만에 처음으로 인천시가 추모제를 직접 주관했다. 이날 행사에는 유가족 20여명을 비롯해 시민단체 관계자 등 70여명이 참석했다.
인현동 화재 참사는 1999년 10월 30일 인천 옛 중구 인현동(현 제물포구)의 한 상가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학생 52명을 포함해 57명이 숨지고 80여명이 다친 대형 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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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참사로 딸 김태연(당시 18세)양을 잃은 어머니 홍옥례(72)씨는 “인천여상에 다니던 딸은 아남반도체에 취업해 정직원 전환을 하루 앞두고 동인천에 친구들과 생일 파티를 하러 나갔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이어 “부모들은 ‘불량청소년들이 술을 마시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잔인한 말을 평생 듣고 살았다”며 “같은 날 자식을 잃은 부모들과 두 달에 한 번씩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김 양의 아버지 김동한(74)씨는 “사고 현장에서 발견한 우리 아이는 머리카락 하나 타지 않은 채로 발견됐다”며 “그날 가게 사장이 문만 열어줬더라면, 내가 인천에 터를 잡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과 후회를 매일 안고 산다”고 말했다.
참사 당시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이유로 보상 대상에서 제외된 고(故) 이지혜(당시 17세)양의 명예회복과 보상 절차를 조속히 마무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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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은 참사 이듬해 제정된 보상 조례에서 종업원이 제외되면서 다른 희생자들과 달리 보상받지 못했다. 지난 3월 관련 조례가 개정돼 보상 근거가 마련됐지만, 행정체제 개편 이후 제물포구와 영종구 사이의 책임 승계 문제가 불거지면서 절차가 지연됐다. 유가족들이 지난 26일 제물포구청 앞에서 노숙 농성에 나선 끝에 김찬진 제물포구청장으로부터 연내 보상심의위원회 개최를 추진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이양의 어머니 김영순(72)씨는 “불법 영업을 한 가게의 잘못은 묻지 않고 아이들의 탓을 했던 시선과 더불어, 아르바이트생이었다는 이유로 가해자로 몰렸던 아픔을 잊을 수 없었다”며 “딸의 명예회복을 위한 절차가 문제없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이제는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추모제에 참석한 박찬대 인천시장은 “참사는 아이들 잘못이 아닌 행정의 실패이자 유착의 결과였다. 불법 영업이 이어졌고 단속해야 할 공무원은 눈감아줬다”며 “27년이 지났다고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사과했다. 이어 “인천시도 제물포구와 지속적으로 협력하며 희생된 학생들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살피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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