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 고려대 사회학,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인구학 석·박사, 현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 전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민간위원 /조영태
“요즘 청년에게 ‘어포더빌리티(생활비 감당 능력)’란 말은 ‘준비된 부모’ ‘완벽한 자녀’에 대한 강박과 직결된다. 서울에 살아야 하고, 서울에서도 특정 핵심 지역에 살아야만 준비가 됐다고 여기는 ‘단 하나의 피라미드’만 존재하다 보니 다들 ‘나는 아직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삶을 짓누르는 비용 앞에 멈춰 서는 것이다.”
국내 인구학 연구의 권위자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10월 13일 한국 청년층의 어포더빌리티 위기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수도권 과밀화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조 교수는 한국 청년층의 어포더빌리티 붕괴와 수도권 과밀화는 결코 떼어 놓고 볼 수 없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진단한다. 조 교수의 실증 분석에 따르면, 1998년만 해도 소득 분위 전반에 걸쳐 고르게 태어나던 신생아가 2024년에는 상위 40%(소득 4·5분위) 가구에 무려 74.4%나 쏠려 있다. 사실상 중· 하위 계층 청년은 아이를 낳아 기르는 삶 자체를 ‘감당 불가능(Unaffordable)’ 영역으로 규정하고 포기한 셈이다.
조 교수는 “출산율 수치 반등에 일희일비하고 보조금에 기대어 출산율 자체를 목표로 삼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며 “이미 정해진 인구 급감 추세에 맞춰 2030년 정년 연장과 노동 유연화 등 국가 제도의 기본 틀을 변화된 인구구조에 맞게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청년의 삶을 짓누르는 위기의 본질은.
“청년에게 ‘어포더블(감당 가능)하다’는 말은 경제적 여건과 심리적 준비가 합쳐진 개념이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모두 서울만을 바라보고, 서울에서도 특정 핵심 지역에 살아야만 ‘준비된 삶’이라고 여기는 단 하나의 피라미드만 존재하는 사회라는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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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의 비교 기준선이 극단적으로 높아지다 보니 대다수 청년이 나는 아직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좌절하게 된다.”
비혼·비출산 흐름은 가치관 변화인가, 생활비 압박 결과인가.
“가치관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지난 20년간 주거비와 생활비 부담이 끊임없이 악화한 것을 청년이 직접 목격하며 체득한 현실적 학습의 결과다. 삶의 어포더빌리티가 떨어지는 현실이 누적되면서 ‘내가 굳이 결혼해야 하나, 아이를 낳아야 하나’라는 인식이 하나의 사회적 문화로 굳어졌다. 대기업에 다니는 고소득 청년조차 결혼을 미루고 출산을 꺼린다. 그들의 비교 대상이 원룸에 사는 청년이 아니라 앞서 나가는 상위권 선배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소셜미디어(SNS)가 텍스트 중심에서 이미지와 영상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타인과의 상대적 비교 심리가 극대화됐다.”
신생아의 74.4%가 상위 40%에서 태어난다는 분석 결과는 어떤 의미인가.
“1998년만 해도 1분위부터 5분위까지 아동 분포가 균등했다. 각자의 소득수준에 맞는 의류, 용품, 교육 시장이 계층별로 촘촘했다. 반면 지금은 육아 시장 자체가 4·5분위 고소득층 눈높이 위주로만 형성돼 있다. 1~3분위 계층을 위한, 저렴하고 감당할 수 있는 교육과 유아용품 시장은 사실상 사라졌다.”
사교육비 지출 급증은 청년층의 잔여 소득을 어떻게 갉아먹나.
“우리 사회 부모는 내 아이가 뒤처지거나 홀대받는 현실을 결코 견디지 못한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유치원 교사가 달리기 시합 후 아이들 모두에게 ‘다 1등이야’라고 말하는 풍자가 나온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학부모의 항의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치원까지는 교사가 억지로 맞춰줄 수 있을지 몰라도,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이 환상은 산산조각 난다.”
계층 양극화는 교육 현장에 어떤 충격을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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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2030년이 되면 공교육 현장은 극심한 갈등에 직면하게 된다. 소득 분포로 보면 이미 양극화가 굳어져 ‘평균’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지고 하위 분위 부모조차 아이에게 거는 기대치는 평균 이상이기 때문이다. 학교를 신뢰하지 못하는 학부모는 결국 자녀를 사교육 시장으로 더 깊숙이 밀어 넣게 될 것이고, 사교육 의존도는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서울의 공간은 어떻게 재편되고 있나.
“2015년만 해도 자녀를 둔 40대 가구주(3인 이상 가구)는 노원, 양천(목동), 강남, 송파 등 4대 학군지에서 균형 있게 분산 이동했다. 그런데 2025년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한강 이북에서 이남으로 내려오는 이동만 있을 뿐, 강남에서 강북으로 올라가는 이동은 사실상 없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규모의 경제에 민감한 대형 학원가가 강북에서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기 때문이다. 결국 부모는 직장이 강북에 있어도 자기 미래 생활 여력을 희생해 가며 강남 벨트로 남하한다. 동서남북으로 분산돼 있던 ‘어포더블 학군’이 사라지고 한강 이남으로 단일화될 것이다.”
저출생 대책이 계속해서 실패하는 이유.
“정부는 신혼부부 특별 공급이나 정책 대출 지원을 설계하며 맞벌이 소득 기준을 꾸준히 올려왔다. 서울 맞벌이 가구의 소득이 높다는 민원에 밀려 월 소득 기준을 800만원, 100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다 보니, 결국 국가 재정이 상위 40% 계층의 주거와 양육을 보조하는 데 집중되는 역진성이 발생했다. 정작 지원이 절실한 하위 1~3분위 계층은 철저히 소외됐다.”
지방 분산 정책이 번번이 겉돈 까닭은.
“청년층, 특히 고학력 여성이 원하는 일자리가 오직 서울에만 몰려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20대 여성이 가장 많이 종사하는 업종 1위는 정보통신(IT), 2위는 과학기술 연구개발(R&D), 3위는 금융업이다. 반면 지방의 여성 일자리 1위는 보건복지(돌봄·요양), 2위는 도소매업, 3위는 교육 서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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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만 하더라도 주력 산업이 제조업과 물류업 위주라 남성 일자리 중심이다.”
어포더빌리티 회복을 위해 필요한 정책은.
“저출생 세대가 노동시장에 본격 진입하는 2030년대가 되면 청년 인구 자체가 워낙 적어 고령층이 일자리에 남아 있어도 청년 취업을 밀어내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청년층의 부양 부담을 줄이기 위해 당장 2030년부터 매년 1년씩 정년을 연장해 2034년쯤 65세로 안착시키는 청사진을 공식화해야 한다. ‘출산율 몇 퍼센트 달성’ 같은 수치 놀음식 목표도 당장 폐기해야 한다. 출산율은 사회 여건에 따라 움직이는 결과 지표일 뿐이다. 인구 축소를 사람 중심으로 국가 제도를 전면 혁신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한국 사회는 새로운 질적 균형.에 도달할 수 있다.”
Plus Point
중간 가격대 사라진
‘바벨 소비’의 역습
/닐슨IQ
생활비 부담이 장기화하면서 소비재 시장의 허리였던 ‘중간 가격대’가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 어중간한 상품은 외면받고 초저가 가성비와 고가 프리미엄으로 수요가 갈리는 ‘바벨(barbell) 소비’가 뚜렷해진 결과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닐슨IQ(NIQ)는 미국 일상 소비재(FMCG) 시장에서 주류 가격대 매출 중 230억달러(약 31조원) 이상이 가성비와 프리미엄 제품군 양극단으로 이동했다고 분석했다. 소비 자체가 줄었다기보다 극단적 절약과 과감한 가치 소비로 양분되며 중간 가격군이 짓눌린 셈이다.
절약 수요는 자체 브랜드(PB)의 약진으로 드러난다. 시장조사 업체 서카나에 따르면, 유럽 6대 식료품 시장에서 PB 판매량 .유율은 사상 최초로 50%에 달했다. 스페인(59%), 영국·독일(52%) 등에서는 장바구니의 절반 이상을 PB가 채웠으며, 상품 90% 이상을 PB로 구성한 독일계 할인。 알디(ALDI)도 미국 내 매장을 공격적으로 확장 중이다. 만족도가 확실한 고가 제품에 대한 지출도 늘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600달러(약 80만원) 이상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글로벌 판매 비율은 올 상반기 29%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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