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최불암 / 사단법인 제로캠프 제공
“‘전원일기’에서 22년간 제 아버지로 사셨기 때문에 제 개인적인 입장으로서는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30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배우 최불암의 빈소. MBC ‘전원일기’에서 양촌리 김 회장의 둘째 아들 용식으로 살았던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아버지’를 배웅하러 왔다. 오전 조문이 시작되자 일찌감치 빈소를 찾은 그는 “평상시에도 늘 ‘아버지’라고 불렀었다”고 했다.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두 사람 사이에는 부자의 호칭이 남아 있었다.
유 전 장관은 자신의 데뷔 작품에서도 고인이 아버지 역을 맡았다며 오랜 인연을 돌아봤다. 최근 두세 달은 직접 만나지 못한 채 건강이 나아지기를 기다렸다. 그는 “좋아지면 만나자고 멀쩡히 볼 수 있을 거라고 하셨는데 부고를 받게 되어 가슴 아프다”며 “후배들이 잘 하고 있는지 늘 내려다보고 계시지 않을까”라고 했다.
고인이 데뷔 무렵 드라마에서 들려준 대사도 기억했다.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 네 등 뒤에 있는 창문을 열어봐라. 행복이라는 놈이 거기 있을 거다.” 유 전 장관은 사람들에게 가까운 곳의 행복을 일러주던 모습으로 고인이 오래 기억되기를 바랐다.
2014년 SBS ‘기분 좋은 날’에서 고인과 부부로 호흡을 맞춘 나문희는 매니저의 부축을 받아 빈소를 찾았다. 조문을 마친 그는 “최불암 씨, 먼저 가셨네”라며 “우리의 자랑이었는데 이렇게 먼저 가서 마음 한구석이 많이 섭섭하다”고 말했다. 함께한 기억을 묻자 “추억이 너무 많은데”라며 말을 아끼다가 “그냥 잘 간직하겠다”고 했다.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장례식장을 떠났다.
배우 김성환과 가수 진성도 함께 조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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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은 “연기 시작을 형님 밑에서 했었다”며 “후배들이 제일 좋아하는 선배였고, 후배들을 너무 사랑해주는 선배였다”고 돌아봤다. 투병으로 고생했던 선배가 이제는 편히 쉬기를 바랐다. 진성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가며 잘살아 보려 애썼던 국민들의 삶을 고인이 함께해 왔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저세상에 가셔서는 좋은 일만 가득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불암·김민자 부부와 각별하게 지낸 김혜수는 오랜 시간 빈소에 머물렀다. 조문을 마치고 나왔을 때는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고, 빈소 밖에서도 눈물을 흘렸다. 김혜수는 2021년 KBS ‘한국인의 밥상’ 10주년 특집에서 김민자와 함께 고인을 위한 식사를 준비했다. 동료 연예인들의 축하 영상 편지도 모아 전했던 후배였다.
낮 12시쯤에는 한복 디자이너 박술녀가 김민자의 상복을 챙겨 왔다. 고인은 생전 한복이 필요할 때마다 그를 찾았다. 박술녀는 “오늘은 사모님이 입으실 상복을 가져다 드리기 위해 급히 왔다”며 “저와는 한복이 맺어준 특별한 인연이다”라고 말했다.
고인의 수의는 약 1년 전부터 준비했다. 허리 수술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도포 등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박술녀는 “바지저고리 같은 옷들은 거의 만들어놓은 지 1년이 됐다”고 했다. 2~3주 전에는 김민자로부터 고인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 본격적으로 준비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머리에 쓰는 복건 등 소품까지 챙겼다.
박술녀가 기억하는 최불암은 옷에서도 꾸밈없는 멋을 찾던 사람이었다. 밝은 흰색 한복을 준비했을 때 고인은 누르스름한 소색을 원했다고 한다. 염색하지 않은 옷감 본래의 빛깔을 좋아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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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고인을 “예스러운 걸 너무 좋아하셨던 어른”이자 “자연을 사랑한 분”으로 기억했다.
‘영원한 수사반장’을 배웅하기 위해 경찰 지휘부도 빈소를 찾았다. 김종철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이날 오후 국가수사본부 안보수사국장, 경찰청 경무국장 등과 함께 조문했다. 김 대행은 “저희 14만 경찰은 물론이고 5000만 국민들께 ‘영원한 수사반장’으로 기억되실 것”이라며 “고인의 뜻을 잘 받들어 국민에게 신뢰받는 경찰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고인은 1972년 명예 경감으로 위촉된 뒤 2024년 민간인 최초로 명예 치안정감에 올라 명예 국가수사본부장을 맡았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청소년들을 위한 활동을 함께했던 인연을 떠올렸다. 국회에서 맺은 인연에 더해, 행정안전부 장관 시절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을 함께하며 관계를 이어왔다고 했다. 김 전 총리는 고인을 “산업화 시대를 살아온 한국인의 표상”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셨던 분”이라고 기렸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빈소를 찾았다. 두 사람은 1996년 15대 총선 서울 영등포을에서 맞붙었다.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였던 김 대표가 신한국당 후보 최불암을 누르고 당선됐다. 김 대표는 조문 뒤 “한 번도 경쟁 상대라고 생각하지 못할 만큼 늘 저를 따뜻하게 대해주셨다”며 “그런 마음을 알기에 특별히 더 아쉽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함께 조문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김민자가 전한 고인의 응원도 소개했다. 민주당 전당대회 당시 최불암이 김 대표를 응원하며 파이팅을 외쳤다는 것이다. 한정애 의원과 방송인 이상벽도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도 빈소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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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회장은 고인을 “대한민국 국민 아버지이자 45년간 아동 행복을 위해 헌신해 오신 분”이라며 “한평생 아이들을 ‘또 하나의 나’로 품으신 진정한 어른이셨다”고 추모했다. 최불암은 1981년 어린이 후원을 시작했고, 1985년 초록우산 전국후원회장을 맡아 국내외 아동들을 도왔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조문객을 맞은 장례식장 20호실 바깥 안내 화면에는 고인의 흑백사진과 본명 ‘최영한’이 함께 표시됐다. 영정 속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남아 있었다. 아내 김민자와 자녀 내외 등이 상주로 이름을 올렸다. 유족의 뜻에 따라 빈소 내부는 공개되지 않았고, 취재진은 입구에서 조문을 마친 인사들을 기다렸다.
빈소에는 작품으로 맺은 인연들이 보낸 화환도 이어졌다. ‘전원일기’에서 며느리를 연기한 고두심과 일용 역의 박은수, 후배 배우 신현준·송혜교·최민수·심은경 등이 화환으로 애도했다. 고인이 노년의 박영한으로 특별출연했던 ‘수사반장 1958’의 김성훈 감독과 야구인 박찬호, 방탄소년단 제이홉도 근조화환을 보냈다.
빈소 밖에서도 작별 인사가 이어졌다. 지난해 ‘한국인의 밥상’ 진행을 이어받은 최수종은 SNS에 “선생님이라는 커다란 그늘 아래에서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했고 감사했습니다”라고 썼다. 고인 부부를 이모·이모부라 부르며 가까이 지냈던 팝페라 가수 임형주도 “몇 달 전 병문안에서의 인사가 영원한 작별 인사가 될지 몰랐다”고 적었다. 자신의 독창회에 함께 찾아와 노래를 아껴주던 부부의 모습을 떠올렸다.
고인은 29일 밤 87세로 별세했다. 장례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닷새간 치러진다. 발인은 11월 2일 오전 7시 40분이다. 오전 9시 여의도성당에서 염수정 추기경 집전으로 장례미사를 거행한 뒤, 오전 10시 40분 서울 무교동 초록우산 본부에서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눈다. 장지는 경기 파주 동화경모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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