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리(아랍어로 한국인)? 손? 풋볼! "
지난달 22일 레바논 동부 베카 지역 사드나엘의 비공식 텐트촌. 한국인을 발견한 아이들이 축구선수 손흥민의 이름을 외치며 다가왔다. 흙먼지가 날리는 골목에서 아이들은 낯선 방문객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지난달 19일 요르단 마프락의 자타리난민촌에서 방문객에게 반갑게 손을 흔드는 아이들. 사진 유엔난민기구
같은 달 19일 요르단 자타리 난민촌에서는 한국어 구령이 울려 퍼졌다. 태극기가 걸린 태권도 교실에서 흰 도복을 입은 시리아 난민 아이들이 발차기를 연습하고 있었다. 전쟁을 피해 온 아이들이 친구들과 어울리며 몸과 마음을 돌보는 공간이다. 태권도박애재단과 한국난민기구(KRP)가 운영하는 이 교실에서는 지금까지 약 3000명이 태권도를 배웠다.
지난달 19일 요르단 마프락의 자타리난민촌 내 태권도박애재단과 한국난민기구(KRP)가 운영하는 난민들 대상 태권도 교실. 사진 유엔난민기구
전혜린(31) 유엔난민기구(UNHCR) 요르단 사무소 대외협력 담당관은 “아이들이 한국인을 보면 방탄소년단(BTS)이나 블랙핑크 이야기를 꺼내고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시리아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전 담당관은 이제 현장에서 이들의 삶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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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잊히지 않는 사람은 두 다리를 잃은 여성 난민이다.
낡은 임시거처에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화장실조차 갈 수 없었다. 하지만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의 지원으로 집을 고친 뒤 휠체어를 타고 혼자 이동할 수 있게 됐다.
전혜린 유엔난민기구 요르단 사무소 대외협력 담당관. 사진 유엔난민기구
전 담당관은 “그분이 ‘벽이 있다는 게 좋고, 지붕이 있다는 게 좋고, 바닥이 탄탄하다는 게 좋다’며 제 손을 꼭 잡았다”고 떠올렸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벽과 지붕이 그 여성에게는 간절한 소망이었다.
한국은 코이카를 통해 유엔난민기구의 난민 지원사업에 힘을 보태고 있다.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난민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한편, 한국인 직원들이 국제기구 현장에서 전문성을 쌓을 기회도 넓히고 있다.
김소영(49) 코이카 요르단 사무소장은 “단기적인 구호를 넘어 난민들이 스스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장기적인 자립 기반을 마련하는 데 중.을 뒀다”고 설명했다.
정승현(맨 왼쪽) 유엔난민기구 레바논 사무소 대외협력 담당관이 레바논 베이루트 내 비공식텐트촌을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정승현
레바논에서도 한국인 직원들이 난민들의 일상과 귀환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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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승현(32) 유엔난민기구 레바논 사무소 대외협력 담당관에게는 레바논에서 태어나 부모의 고향인 시리아를 한 번도 밟지 못한 아이가 기억에 남아 있다.
한국 대사와 함께 현장을 찾았을 때 사진을 찍자며 다가온 아이였다. 장래 희망은 외교관. 정 담당관은 “당당하게 꿈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좋으면서도 걱정됐다. 시리아에는 학교조차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곳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리아 정세가 바뀌면서 레바논에서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난민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집이 무너졌거나 일자리가 없어 귀환을 망설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유엔난민기구는 난민들이 스스로 귀환을 결정했는지 확인하고 이동을 지원한다. 정 담당관 역시 현장에서 이들의 사연을 듣고 지원사업을 연결하는 일을 맡고 있다.
지난달 19일 요르단 마프락의 자타리난민촌 8구역 내 난민 아이와 대화 중인 전 담당관(맨 오른쪽). 사진 유엔난민기구
난민들은 한국이 똑같은 실향의 아픔을 겪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중 “시리아도 언젠가 한국처럼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는 이들도 있었다.
70여 년 전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한국이다. 이제는 중동 난민들의 무너진 일상을 다시 세우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그 현장에는 난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함께 성장하는 한국인들도 있다.
자립 기반을 마련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