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현지시간) 칠레 발파라이소의 국회에서 열린 하원 특별회의에서 페르난도 라바트 칠레 법무장관(오른쪽 두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특별회의는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수형자들의 형기 단축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논의를 위해 소집됐다. EPA연합뉴스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칠레 대통령이 이끄는 우파 정부가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자 56명의 형기를 단축해준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국 혼란이 확산되고 있다. 치안 강화와 아동 보호를 핵심 공약으로 집권한 카스트 정부가 감형 사태로 인해 정치적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1일(현지시간)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에 따르면 곤살로 아레나스 칠레 정부 대변인은 이날 칠레 채널13 방송 인터뷰에서 “야당이 정치적 목표를 설정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 예언자가 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성범죄자 감형 관련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는 배경에 야당의 조직적인 정치 공세가 있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아레나스 대변인은 “이러한 정치적 공격은 사전에 계획되고 치밀하게 준비되며, 최대한 많은 주목을 받도록 시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전개된다”고 주장했다. 엘파이스는 아레나스 대변인의 발언이 감형 혜택을 받은 수형자들의 구체적인 정보가 잇따라 공개되는 상황을 가리킨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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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이번 사태는 카스트 정부가 아동 성추행·강간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수형자 56명의 형기를 단축하는 행정명령을 승인하면서 촉발됐다. 이 가운데 50명이 실제로 석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칠레에서는 모범수의 형기 단축이 가능하지만, 앞서 2022년 법 개정을 통해 아동 대상 성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수형자들은 감형 대상에서 제외된 바 있다. 다만 법 개정 이전에 저지른 범죄에 대해 이 같은 제한을 적용할 수 있는지를 둘러싼 법적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성범죄자들의 형기를 단축한 것에 대해 페르난도 라바트 법무장관은 개정법을 이전 범죄에 소급 적용할 수 없다는 판례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미 ‘확립된 판례’에 근거해 행동했다는 주장을 거듭했다고 엘파이스는 전했다.
이에 대해 글로리아 아나 체베시치 대법원장은 성범죄자들을 감형한 행정명령이 라바트 장관 자신의 “법적 권한에 따라” 발령된 것이라고 밝혔다.
논란이 증폭되자 지난달 26일 카스트 대통령은 감형 조치를 ‘실수’라고 인정하면서 국가가 피해자들을 저버렸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카스트 대통령이 라바트 법무장관을 유임시키자 야당은 물론 우파 진영 일부에서도 라바트 장관의 경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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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라바트 장관은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루이스 실바 법무차관은 지난달 30일 사임했다. 실바 차관은 자신이 서명한 감형 명령 중 최소 10건이 라바트 장관의 판단 기준에 따른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해명한 바 있다. 정부는 실바 차관의 사임이 감형 명령 서명 때문이 아니라 상부에 알리지 않고 관련 영상을 공개하는 과정에서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권 내부에서는 실바 차관이 책임을 장관에게 떠넘기기 위해 관련 영상을 공개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야당은 이번 주 라바트 장관에 대한 헌법상 탄핵소추안을 의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반면 정부는 감형 조치가 법적 요건에 따른 것이라며 탄핵소추 사유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파문이 확산하면서 카스트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이후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 1일 발표된 여론조사업체 크리테리아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카스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25%로 하락했다. 부정 평가는 65%로 상승했다. 응답자의 72%가 라바트 장관 유임에 반대했으며, 우파 지지층에서도 유임 반대 응답이 54%에 달했다. 아동 성범죄자에게 모범수 감형 혜택을 주는 데는 95%가 반대했다.
앞서 카스트 대통령은 지난 3월 조직범죄 소통 등 치안 강화와 가족·아동 보호 등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워 집권했다. 칠레 정부와 여권은 추가 감형을 차단하기 위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