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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판결문은 어디에서 오는가
최정규 지음, 시월 펴냄
“내가 진짜로 바랐던 것은 법원이 사람을 살리는 장면들이었다.”
사법개혁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법원이 일반 시민들과 괴리되어 법조 엘리트들의 성역이 되어간다는 의구심도 높아진다. 그렇다면 법원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좋은 재판이란 무엇일까? 이주민, 장애인, 국가폭력 피해자 등 한국 사회의 약자들 곁을 지키며 공익 변론을 담당해온 저자는 판결문의 한 줄 한 줄이 누군가의 삶에 드리우는 영향력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무성의한 판결문이 일상화된 법원과 사법 시스템의 부조리에 분노해 전작 〈불량 판결문〉을 썼다. 비판과 고발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에 5년 만에 다시 책을 내게 되었다. 가난한 외국인 유학생이 피고인이 된 사건에서 피고인과 증인의 말을 더 잘 듣기 위해 판사가 법대에서 직접 내려왔던 재판 등 저자가 경험한 ‘명품 판결문’들을 읽다 보면 법원이 ‘인권의 보루’라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빈곤과 뇌
스즈키 다이스케 지음, 송현정 옮김, 사이드웨이 펴냄
“분명히 말하고 싶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
‘왜 그들은 그다지도 게으를까.’ 어린이, 청소년, 여성의 빈곤 문제를 오랫동안 취재해온 저자는 자주 생각했다. 곧장 뭐라도 하지 않으면 상황이 나빠질 텐데 왜 남 일인 듯 가만히 있을까. 이런 생각은 뇌경색으로 쓰러져 고차 뇌기능 장애를 갖게 된 후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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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으름이나 의지 부족으로 치부하던 행동 패턴이 실제로는 뇌의 인지기능 저하와 직결된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빈곤이란 ‘불편한 뇌’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높은 확률로 발생하는 2차 증상 또는 하나의 증후군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개인의 노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압도적 어려움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자신의 지난 저작들의 한계를 인정하고 반성하며 빈곤을 ‘망가진 뇌’ 문제로 다루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저자의 몸을 통과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목사 딸의 백팔배
이정은 지음, 온다프레스 펴냄
“너희에게 남길 수 있는 유산은 오직 신앙뿐이다.”
목사 딸의 백팔배라니, 손이 안 갈 수 없었다. ‘목사 딸’의 어린 시절을 두 단어로 요약하면 기도와 금욕이다. 급진적 학생운동 단체의 일원이던 아버지는 신학대학원에 진학한 후 ‘오직 신앙’으로 삶의 노선을 선회했고, 아이들 공부방을 운영하던 어머니도 ‘성령의 언어’를 접한 뒤 종교의 길에 접어든다. 저자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새벽 기도를 했다. 예배와 기도로 빡빡한 일정, 그 세계에서 주어진 것은 ‘하느님이 원하는 것에 순종하는 것’뿐이었다. 그는 미셸 푸코의 ‘자기 배려하기’ 개념을 접한 뒤, 자신과의 ‘관계’를 재설정하기로 했다. 40년 다니던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우상 앞에 절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저버린 채 백팔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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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학 전공자인 그는 현재 한국 개신교계 신종교 현상을 연구하고 있다.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
세라 베이크웰 지음, 조영 옮김, 다산초당 펴냄
“실존주의는 참 끔찍해요!”
전쟁과 .령, 냉전을 격렬하게 겪은 프랑스인들의 카페 거리. 지금은 누구나 아는 이름이지만 ‘사실은 아무도 모르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레몽 아롱, 메를로퐁티, 카뮈 그리고 하이데거. 저자는 그들이 자리 잡은 카페에서 커피와 와인을 사이에 두고, 읽고 쓰고 토론하고 취하고 흔들고 사랑에 빠졌던 일상을 그리며 ‘실존주의’라는 철학의 얼개를 흥미롭게 빚어낸다. 이 탁월한 철학자들의 사유와 삶, 교류가 서로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당시 상황을 기반으로 인간의 존재 방식과 의미를 어떻게 사유하며 자신의 삶으로 실험했는지, 현대의 우리 시각에서는 부러우면서도 신기한 이야기들을 엄청난 필력으로 서술한다. 뭔가 골치 아픈 이야기인데 굉장히 재미있다는 것은 보증한다. 2010년대 중반에 한국어 번역본이 발간되었으나 절판된 책. 그러나 중고가로 16만원까지 치솟을 만큼 누구나 읽고 싶어 했던 그 작품이다.
정신 나간 세상에서 아픈 사람들
조애나 치크 지음, 제효영 옮김, 심심 펴냄
“의대에서 배우지 않은 문제를 안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비중이 。。 늘어나는 추세다.”
우울과 불안, 무기력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병원에 가면 환자가 된다
오리지날황금성
. 그런데 정말 아픈 것은 누구일까. 저자는 진료실을 찾아오는 이들의 고통을 뇌나 마음에서만 찾지 않는다. 빈곤, 불평등, 기후위기, 차별, 고립 같은 ‘정신 나간 세상’도 함께 들여다본다. ‘아프다’는 것은 때로 세상이 잘못되어 있음을 감지하는 능력임을 찬찬히 풀어나간다. 의사로서 ‘중립’을 지키라는 요구에도 맞선다. “정치적 결정이 우리 건강에 영향을 준다면, 의사가 사회 변화의 필요성을 얘기하는 것이 마땅히 해야 할 도덕적 의무라고 생각한다.” 약과 상담으로 사람을 치료해 다시 망가진 환경으로 돌려보내는 것만으로 충분한지 묻는다.
나치 독일의 전쟁범죄
김재명 지음, 진실의힘 펴냄
“나치당이 세력을 키운 데에는 젊은이, 특히 대학생이 한몫했다.”
지은이는 국내 언론사에서 일하며 분단 극복을 위해 애쓴 인물들을 취재했다. 분단에 대한 관심은 국제분쟁으로 이어져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이란, 시리아, 레바논, 보스니아, 코소보 등 20여 개국의 분쟁 현장을 취재하고 보도했다. 특히 팔레스타인에는 20차례 가까이 방문해 그곳의 참상을 알렸다. 국제분쟁 전문기자이자 정치학 박사인 지은이가 〈나치 독일의 전쟁범죄〉를 써냈다. 대량 학살을 가능하게 한 독일 보통 사람들의 역할에 주목한다. 전쟁 전에는 폭력과 거리가 먼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홀로코스트의 공범자가 됐는지에 주목한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해나 아렌트의 통찰에 공감하면서도 아이히만에 대한 그의 판단에는 문제를 제기한다.
시사IN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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