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 관찰 시간 1분 남았습니다.”
심판의 외침에 선수들의 시선이 더욱 바빠진다. 벽에 붙은 홀드를 하나라도 더 눈에 담으려는 듯 고개를 움직인다. 관찰 시간은 6분. 등반 시간도 6분이다. 주어진 시간은 단 12분. 선수들은 그 안에 자신의 최고 기량을 보여줘야 한다. 장애는 더 이상 핑계가 될 수 없다
지난 8월 21일 경기도 파주국제스포츠클라이밍경기장. 안대를 착용한 시각장애인부터 의족을 찬 지체장애인까지 선수 10명이 모였다. 하반기 국제대회 출전권이 걸린 선발전인 만큼 경기가 시작 전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시각장애 선수들은 눈 대신 귀와 손으로 길을 찾는다.
“왼쪽 11시 방향에 홀드 있어요. 오른발은 5시 방향!”
가이드의 목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진다. 선수는 목소리에 의지해 보이지 않는 홀드의 위치를 머릿속에 그린다. 손과 발을 뻗어 홀드를 찾아가며 가상의 지도를 따라 벽을 오른다. 한발 한발 오를 때마다 가이드의 소리도 높아진다.
지체장애 선수들에게도 등반은 치열한 투쟁이다.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신체를 통제하고 균형을 잡아야 한다. 벽에 몸을 붙이고 홀드를 딛는 모든 동작이 도전이다.
파라클라이밍은 장애 유형과 정도에 따라 등급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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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와 상체·하체 장애 등을 기준으로 분류하고 장애 정도에 따라 세부 등급을 구분한다. 숫자가 낮을수록 장애 정도가 심하다.
한국에 파라클라이밍이 보급된 것은 불과 1년 남짓이다. 2028년 로스앤젤레스 패럴림픽 정식 종목으로 확정되면서 대한장애인협회도 선수단 구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아직 실업팀조차 없는 상황이지만 선수들은 인공암벽에 오른다. 이들에게 벽은 자신의 존재와 가능성을 증명하는 무대다.
윤태인(33) 선수도 그중 한 사람이다. 15년간 보디빌딩을 하며 헤어디자이너로 일했던 그는 2023년 교통사고로 척추가 부러졌다. 갑작스러운 사고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절망에 빠진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병원에서 접한 클라이밍이었다. 그는 매일 8~9시간씩 벽을 탔다. 감각이 마비된 다리로 홀드를 딛고 몸을 끌어올렸다. 한 동작 한 동작이 그에게는 치열한 재활이었다. 1분도 걷기 어려웠던 그는 이제 목발 없이 30분을 버틴다. 그를 진료했던 의사들은 입을 모아 ‘기적’이라고 말한다.
지난 5월 솔트레이크시티 월드컵에서 4위에 오른 윤 선수의 시선은 이제 더 높은 곳을 향한다. 오는 10월 군산과 11월 후쿠오카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메달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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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선수는 SNS 팔로워 1만 5000여 명을 보유한 인플루언서이기도 하다. 자신의 등반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다.
최형욱(42) 선수에게도 암벽은 삶을 바꾼 공간이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었다. 2020년부터 암벽등반을 시작한 그는 산악등반 다큐멘터리를 보고 등산학교에 입학했다. 산을 향한 도전은 .차 본격적인 등반으로 이어졌다.
올해 5월에는 히말라야 사트피크 원정대원으로 선발되어 고산 알파인 등반을 하였다. 한쪽 다리를 잃은 뒤에도 산을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은 결과다.
최 선수는 “클라이밍은 신체와 정신을 함께 단련할 수 있다”며 “다양한 신체 부위를 사용해 몸을 단련하고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건강한 정신도 기를 수 있어 주변에도 적극 추천한다”고 말했다.
파라클라이밍 국가대표 서종국 감독은 선수들이 암벽에 오르는 이유를 ‘성취감’으로 설명한다. 서 감독은 “비장애인도 힘들어하는 클라이밍에 장애인들이 도전하는 것은 성취감 때문”이라며 “정상에 올랐을 때 느끼는 만족감은 어쩌면 이들에게 더 클 수 있다”고 전했다.
선수들이 오르는 벽은 저마다 다르지만, 마주한 도전의 무게는 같다. 손이 닿는 곳에 다음 홀드가 있고 그 너머에는 아직 오르지 못한 정상이 있다. 선수들은 오늘도 자신의 속도로 벽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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