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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동형 비례’ 요구, 단식까지 했던 손학규 전 대표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는 15일 “거대 양당 제도가 존속하는 상황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갖는 의미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했다. 이어 “대통령제의 폐해는 。。 더 심해지고 있다”며 “AI 시대에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데 정권만 8년간 이어진다면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성룡 기자
왜 다당제를 촉진하고 민의를 보다 충실히 반영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약 8년 만에 존립의 기로에 섰나.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비례대표 의원직 사퇴 거부 논란은 이 제도가 앞으로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했다. 거대 양당의 의석 독.을 완화하고 다양한 정치세력의 원내 진입을 넓히겠다는 취지였지만, 21·22대 총선을 거치며 거대 양당의 독.은 더 강해졌다. 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2018년 12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요구하며 열흘간 단식했던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를 지난 15일 서울 미근동 동아시아미래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이유다. 그는 “내가 하고자 했었던 게 이렇게 엉망이 되는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당시를 복기하면 그럴 만했다. 71세인 그의 단식에 여야 5당 원내대표들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방안 적극 검토”란 합의를 발표했다. ‘적극 검토’란 표현이 담겼지만 바른미래당(30석)·민주평화당(14석)·정의당(5석)에 해당하는 말이지, 1·2당인 더불어민주당(129석)·자유한국당(112석, 국민의힘 전신)에 해당하는 건 아니었다.
자유한국당은 곧 반대로 돌아섰다. 뜨뜻미지근했던 민주당이 선거법 개정에 나섰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을 위해 나머지 야당들의 협조가 절실해서였다. 제1야당이 반대한 선거법 처리여서 관례를 깨는 일이었으나 민주당엔 공수처법이 귀했다. 대신 연동형을 준연동형으로 후퇴시켰다. 연동형은 정당득표율 기준대로 100% 의석을 보장하는 것이고(그래서 재적보다 더 많은 초과 의석이 발생하기도 한다), 준연동형은 50% 정도만 보장한다. 자유한국당은 “선거법을 일방처리하면 위성정당을 만들겠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만들었다. 그러자 민주당도 위성정당을 창당했다. 대신 모양새를 만들겠다며 군소정당들을 위성정당 안에 끌어들였다. 용혜인 의원처럼 위성정당으로 당선됐다가 이후 원 군소정당으로 돌아가는 민주당식 트랙이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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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당제를 꿈꾸며 선거법 처리에 나섰던 군소정당들은 결국 원내에서 사라졌다. 대신 양당, 특히 민주당에 의탁하는 군소정당들이 입성했다.
손 전 대표는 “정말 죽어 넘어져서 나가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완결을 봤어야 하는데 이 정도면 대통령이 지시했고 여야가 합의했으니까 되겠지 하는 생각에서 단식을 중단한 것에 후회도 됐다”며 “양당 중심의 현 정치 구도에선 이 제도를 취지대로 유지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에게 우선 용혜인 의원 건부터 물었다.
Q : 용 의원 논란을 어떻게 봤나.
A : “표면적으로는 용 후보자가 의원직 사퇴를 거부하면서 불거진 문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대통령제와 양당제의 한계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대통령의 연임 개헌을 목표로 범여권을 결속하고 사실상 기본소득당도 흡수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으면서 사태가 악회된 것 아닌가.”
Q : 왜 대통령제와 양당제가 더 근본적인 문제인가.
A : “한국 정치는 대통령이 막강한 권한을 갖고 여당은 대통령의 수족 노릇을 한다. 양대 정당은 정권을 번갈아 잡으며 여야 위치만 바꾼다. 여기서 생기는 갈등과 대결의 정치를 바꿔보자는 게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였다. 그런데 연동형이 준연동형이 되고 위성정당까지 생기면서 양당 체제는 그대로 존속했다.”
이재명 정부 가장 우려되는 건 사법부 파괴
손 전 대표는 한때는 대통령제 옹호론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대통령 중임제도 반대한다. 그는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이 더 연장될 뿐이다. 처음 4년은 재선을 위한 4년이 될 수밖에 없다. 재선되고 나면 곧바로 레임덕이 시작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같은 사람이 8년간 정권을 잡으면 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기동력과 변화 능력이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을 바꾼 계기는 2013년 독일에서의 1년이었다고 한다. 2018년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했다.
Q : 그런 이유는.
A : “독일은 의원내각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토대로 여러 정당이 연정을 구성하며 합의의 정치를 하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왜 우리는 제3당이 자리 잡지 못하고 다당제에 기반을 둔 합의의 정치를 하지 못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2017년 대선에서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을 공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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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듬해 내가 바른미래당 대표가 된 뒤 ‘이번에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Q : 정작 처리된 건 준연동형이었다.
A : “그래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이름이라도 갖고 가면 한 번 시행해보고 부족한 .을 고쳐나갈 수 있겠지’라는 기대가 있었다. 자유한국당에 이어 민주당도 위성정당을 만드는 걸 보고, 결국 더 나쁜 양당제로 가는구나, 그러고 나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꿈, 다당제·합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꿈은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거냐는 깊은 회의에 빠졌다.”
Q : 제1야당이 반대하는 선거법 개정은 관행을 깬 것이다.
A : “자유한국당을 설득할 방법이 도저히 없었다.”
Q :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결정을 하겠나.
A : “그런 가정은 할 필요가 없다. 내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생각한 건 우리나라에서 개헌이 아주 힘들기 때문이다. 개헌 전에라도 대통령제 하에서 합의제 민주주의를 위한 최소 기반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연동형 비례대표제였다.”
조정식·강훈식 등 한때 ‘손학규계’ 인사들
Q : 23대 총선에서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존속할 수 있다고 보나.
A :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장기적으로 대통령제를 끝내고 의회 중심의 합의제 민주주의로 가자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지금 양당 모두 그런 생각이 없다. 여야가 서로 바뀌는 것은 받아들여도 그 사이에 제3당이 들어오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런 양당 구도가 계속되는 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그는 지역구엔 후보를 내지 않고 비례대표만 노리는 비례대표용 정당은 막는 조항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기본소득당뿐 아니라 조국혁신당 같은 위성정당의 출현을 막자는 의미다.
이재명 정부에서 대통령 권력 집중과 여대야소 구도를 우려하는 손 전 대표지만, 한때 ‘손학규계’로 불렸던 인사들이 현 정권 핵심에서 일하고 있다. 조정식 국회의장은 2012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손학규 캠프 공동총괄본부장을 맡았고,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보다 앞선 2004년 손 전 대표가 경기지사이던 시절 보좌관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다 ‘손학규 대통령 만들기’를 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 이재명 사람들이다. 그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정치인이 됐으면 성장하고 역할도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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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됐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라고 한다. 다만 그들에게 정치적으로 과거의 중도적 성향을 그대로 기대할 수는 없다.”
Q : 이 대통령은 보수·진보를 아우르는 인사를 말한다.
A : “소위 중도 세력의 통합이라고 하는데, 중도 인사로 영입된 사람 가운데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한 사람이 이석연 전 국민통합위원장 말고 누가 있나. 중도 세력을 끌어들여 통합하려면 그 사람이 중도로서 자기 정체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전에 다른 당에 있었지만 생각을 바꿔 여기 와서 출세하라’는 것은 중도 통합이 아니다. 대통령에게 동의하지 않으면 장관이든 위원장이든 자리를 지키기 어렵지 않나.”
Q : 현 정부에서 어떤 。을 가장 우려하나.
A : “사법부의 파괴다. 나는 젊어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어 온갖 고초를 겪었지만 사법부가 이렇게 농락당하고 무력화되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충돌해도, 정치권 내부에서 싸움이 벌어져도, 최종 판단은 법원이 한다. 그런데 법원의 판단마저 대통령의 권력에 좌우된다면 민주주의의 근본 기반이 흔들리는 것이다.”
Q : 1970,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했다. 당시와 비교하면 어떤가.
A : “우리가 민주화운동을 할 때 재야와 학생운동 세력이 앞장섰지만, 그 맨 앞에는 김영삼·김대중이라는 정치 지도자가 있었다. 정치권과 정당이 앞에서 이끌어줬다. 지금은 그러한 지도자가 없다. 야당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 열정이 있었고 여당에도 국가에 대한 나름의 우직한 충성심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재야 세력도 권력에 눈이 멀고, 학생운동도 과거와 같은 열정과 패기가 사라졌다. 우리 사회가 갖고 있던 민주화의 저력이 약해진 것 아닌가 걱정된다.”
사흘 뒤 이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지켜본 손 전 대표는 추가로 입장을 전해왔다. “개헌은 권력구조 개편이라야 의미가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해소다. 그러나 지금 개헌 논의는 대통령 임기의 연임에 집중되어 있다. 이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연임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했지만 ‘개헌은 국회와 국민이 하는 것’이라고 묘한 여운을 남겼다. 이 대통령은 지금 뭐라고 말하든 결국 공소 취소를 하고 연임을 추진할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도 3선을 하지 않겠다고 공약했지만 3선에 이어 유신까지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권력이 무한대로 커지면 반드시 민중의 저항으로 정권이 무너졌다. 이 대통령은 권력의 이치와 국민의 심판이라는 역사의 법칙을 깊이 깨닫고 국민과 역사 앞에 겸손해야 할 것이다.”
일하고 있다.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