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남(둘째 줄 가운데) 목사와 박윤영(첫째 줄 가운데) 사모가 두 아들 조지훈(둘째 줄 왼쪽), 조나단 목사 내외와 함께한 가족사진.
아내는 미혼이던 시절 서울 영락교회 선교관에서 면사포를 쓰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데 결혼을 준비하던 어느 날, 머뭇거리며 미안한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영락교회 선교관에서는 안 된대요. 사별은 괜찮지만 이혼한 경우는 안 된대요.”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호탕하게 웃으며 아내를 위로했다. “하하하. 아직 한국교회가 살아 있네. 영락교회는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인데 아무나 아무렇지 않게 결혼 장소를 빌려주면 안 되겠지요. 나는 직접 관련된 일이지만 오히려 교회에 자부심을 느껴요. 그래야지요.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우리의 결혼식은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1층 소예배실에서 임택진 목사님의 주례로 단출하게 치러졌다. 이후 아내의 많은 후배도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큰아들 지훈도 같은 곳에서 결혼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뒤 나는 가족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먼저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지금까지 잘 버텨주셨지만 앞으로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새로 들어온 며느리가 아무리 잘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많을 겁니다. 그러니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시고 조금 부족해도 그러려니 하고 살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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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어려운 자리에 시집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아내에게도 말했다. “당신도 이왕 이렇게 시작했으니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현실의 어려운 고비를 지혜롭게 헤쳐나가주길 바라오. 어머니도 그렇지만 아이들에게도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요. 당신이 아무리 잘해줘도 자기들 생모보다는 부족하게 느낄 수 있으니까. 그래도 아이들이 착해서 당신을 크게 실망시키지는 않을 거요. 그저 당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아이들에게 신경 써주면 돼요. 어차피 쉬운 자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시작한 결혼 생활이니까.”
아이들에게도 당부했다. “지훈이, 나단이도 아빠 말 잘 새겨들어야 한다. 새어머니가 너희에게 최선을 다해 보살펴줄 것이다. 그래도 친엄마와는 다를 수 있다. 그러니 믿음으로 여기까지 온 기도의 어머니라는 것을 기억하고 신앙 안에서 잘 섬기도록 해라.”
그런 가운데 아이들은 내 특별한 간섭 없이도 잘 성장했고 각자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한 번은 지훈이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됐을 때 단둘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그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말을 꺼냈다.
“지훈아, 아빠는 내 선택으로 이 길을 택해서 훈련받는 것이지만 너와 나단이는 목사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나 때문에 덩달아 고생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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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지훈이는 ‘뭘 그런 것까지 미안해하느냐’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아빠는 아빠대로 훈련받으면서 아빠의 길을 가세요. 나는 나대로 아빠의 아들이라기보다 예수님 제자의 한 사람으로 훈련받는 중이니까요. 다만 같은 처지에서 훈련받고 있을 뿐이에요.”
나는 아들의 이 어른스러운 한마디로 얼마나 큰 자유를 얻었는지 모른다. 아들은 이미 내 울타리를 벗어나 하나님 손안에서 스스로 훈련받고 있었다. 아이들은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학교를 졸업했고 자신들의 결혼도 기도 가운데 준비했다. 큰아들 지훈의 경우에는 지금의 ‘기쁨이있는교회(JoyfulChurch)’를 개척하는 일까지 기도 가운데 이뤄갔다. 그의 말대로 하나님께 직접 훈련받으며 얻은 열매들이었다.
지훈이가 자신의 믿음으로 교회를 개척할 때도 나는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물론 기도는 했지만 물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오히려 아버지인 나와 무관하게 스스로 자리를 만들어왔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그야말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훈이는 나와 단둘이 이야기할 때면 진지하게 말했다. “아버지도 아시다시피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배운 것도 별로 없고 무일푼인 제게 어떻게 이토록 은혜를 베풀어주셨는지 생각할수록 감사할 뿐입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한마디였다. “그러기에 더욱 겸손해야 한다.”
아무나 아무렇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