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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출범한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은 제주대학교 최초의 법정연구소라는 위상을 지니고 있다. 특히 학술지 '탐라문화'는 한국학술진흥재단 등재지 선정, 인문사회연구소지원사업선정 등 제주에 대한 연구를 세상을 알리는 중요한 창구 역할을 했다. [제주의소리]는 탐라문화연구원과 함께 '탐라문화' 논문들을 정기적으로 소개한다. 제주를 바라보는 보다 넓은 창이 되길 기대한다. 연재분은 발표된 논문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주]
앞서 살펴본 것처럼 2003년 진상규명 이후 20여 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온라인 댓글의 과반은 여전히 공산폭동론을 재생산하고 있다. 이 괴리는 상당 부분 공식 아카이브의 '수동성'에서 비롯된다.
제주 4.3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공식 기록은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540쪽 분량의 PDF 파일로 웹사이트에 게시되어 있다. 특정 의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이용자가 전체 문서를 직접 뒤져야 한다. 검색엔진 최적화(SEO)도 되어 있지 않아 검색 결과 상위에 노출되기 어렵다.
반면 유튜브의 자극적 영상은 짧고 단정적인 답을 내놓는다. 그리고 알고리즘의 추천을 타고 퍼져 나간다. 아스만의 용어로 말하면, 저장 기억(공식 아카이브)이 기능 기억(디지털 담론)으로 전환되는 통로가 막혀 있는 셈이다.
기억 연구자 아스트리드 에를은 미디어가 기억을 단순히 전달하는 매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미디어는 기억을 형성하고 창조하는 능동적 행위자라는 것이다. 같은 사건도 어떤 미디어로 재현되느냐에 따라 다르게 기억된다. 540쪽 PDF와 3분짜리 유튜브 영상이 경쟁하는 조건에서, 공식 기록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가는 결코 부차적인 문제가 아니다.
더욱 우려되는 지.은 생성형 AI의 등장이다. 정보를 얻는 방식이 검색에서 AI 질의응답으로 빠르게 옮겨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2025년 10월 범용 AI인 ChatGPT-4o에 질문 하나를 입력해 보았다. 온라인에서 확산율이 가장 높은 왜곡 프레임을 그대로 담은 질문, "4.3은 공산폭동이야?"였다.
ChatGPT-4o는 이 질문에 담긴 왜곡을 탐지하지 못했다. 공산폭동론을 하나의 정당한 견해처럼 소개했고, 출처도 제시하지 않았다. 인터넷의 오염된 담론을 학습한 AI가 왜곡된 기억을 다시 확대 재생산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진상조사보고서만 학습시킨 AI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필자는 기념관이 보유한 공식 자료를 AI가 직접 참조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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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결과물이 RAG(검색 증강 생성) 기술을 활용한 'AI 팩트 체커' 프로토타입이다. RAG란 AI가 답을 지어내는 대신 지정된 문서를 먼저 찾아본 뒤 그 근거로 답하게 하는 방식을 말한다.
시스템은 세 단계로 작동한다. 이용자가 앱에 질문을 입력하면 5대 왜곡 프레임에 해당하는지를 먼저 판별한다. 다음으로 데이터베이스에서 관련 근거를 검색한다. 마지막으로 미리 설계된 규칙에 따라 답변을 만든다.
핵심은 참조 자료의 통제다. AI가 사실이 아닌 내용을 그럴듯하게 지어내는 현상을 '환각(hallucination)'이라 한다. 이를 막기 위해 진상조사보고서 전문만을 참조 자료로 지정하고, 보고서 텍스트를 기계가 검색할 수 있는 데이터로 변환했다. 종이 문서에 잠겨 있던 저장 기억을 디지털 환경에서 다시 깨우는 작업인 셈이다.
여기에 앞서 분류한 5대 왜곡 프레임을 실시간 탐지 기준으로 적용했다. 그리고 세 가지 원칙을 시스템에 부여했다. 보고서에 없는 내용은 추측하지 않는다, 모든 답변에 출처를 명시한다, 왜곡이 있어도 정중하게 사실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동일한 질문에 대한 두 시스템의 답변은 뚜렷한 대조를 보였다. 스마트폰 앱으로 구현된 프로토타입은 화면 상단에 "왜곡 프레임 탐지: 공산폭동론"이라는 경고를 표시했다. 이어 진상조사보고서 4장 4절을 인용해 4.3이 복합적 원인으로 발생한 사건임을 설명하고 출처를 밝혔다. 범용 AI가 온라인의 오염된 기억을 무비판적으로 반영한 반면, 공식 자료에 연결된 AI는 '능동적 아카이브'로 기능할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그림2) ChatGPT-4o의 답변 화면. (2025년 10월 실행)
이 실험을 토대로 필자는 디지털 시대의 능동적 아카이브가 갖추어야 할 요건을 네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데이터의 정전화'다. 소장 자료를 AI가 판단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표준 데이터로 만드는 일을 말한다. 둘째는 물리적 아카이브를 앱과 웹으로 여는 '디지털 접근성', 셋째는 이용자의 질문에 문헌적 근거를 들어 답하는 '상호작용성', 넷째는 왜곡 확산을 즉시 탐지하고 교정하는 '실시간 대응'이다.
나아가 제주 4.3에 관한 사실상 유일한 공식 대응 기관인 제주4.3평화기념관에 역할 전환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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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검색엔진 최적화, SNS 팩트 체크 콘텐츠 발행, AI 시스템의 공식 도입을 통해 수동적 보존소에서 능동적 디지털 아카이브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연구에는 한계도 있다. 프로토타입은 2003년 진상조사보고서를 단일 기준으로 삼고 있어, 이후 축적된 연구 성과를 반영할 데이터 파이프라인이 필요하다. 5대 왜곡 프레임 역시 2020~2024년 데이터에 기반한 것이므로 새로운 유형의 왜곡에 대비한 지속적 모니터링이 요구된다.
다만 이 제안이 디지털 공론장의 담론 자체를 통제하려는 시도로 오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온라인에는 왜곡을 비판하고 바로잡으려는 시민적 토론 역시 활발하다. 그러한 공론장의 순기능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마땅히 보전되어야 할 가치다. 필자의 핵심 주장은 그 토론의 장에서 기념관이 보유한 공식 자료가 손쉽게 참조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3년 진상규명으로 공식 기억은 정립되었다. 그러나 물리적 보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디지털 공간의 현실이 보여주고 있다. 저장 기억이 기능 기억을 입증하고 교정하지 못할 때, 기억은 왜곡되고 공동체의 정체성은 위협받는다.
이번 프로토타입은 막혀 있던 그 통로를 다시 여는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체험 세대가 모두 떠난 뒤에도 4.3의 진실이 왜곡 없이 전승되려면, 공식 기록은 사람만이 아니라 알고리즘도 참조할 수 있는 자리에 놓여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접근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한국전쟁 피해 기록 등으로 확장되어 디지털 시대에도 희생자의 존엄과 역사적 진실이 지켜지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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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현, 「4.3, 5년간 유튜브 콘텐츠 및 댓글 분석 결과」, 『4.3 역사왜곡 미디어 모니터링 결과보고회』 연구보고서, 제주4.3평화재단·민주언론시민연합, 2024.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2003.
「제주도 80곳 일제히 걸린 현수막…이 문구에 도민 경악했다」, 『중앙일보』, 202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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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학술지 『탐라문화』 제81호(2026)에 ?제주 4?3 사건의 기억 변형과 디지털 시대의 공식 기념관의 역할 재정립? 이라는 제목으로 게재한 논문을 [제주의 소리]에 싣기 위해 요약 정리한 것이다.
정환석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박사과정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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