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를 비롯한 아시아 고산지대의 빙하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기온 상승으로 얼음이 녹는 데 머물지 않고 빙하 주변의 암석과 영구동토층까지 불안정해져 산사태와 토석류, 빙하호수 범람 등이 연쇄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산 위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가 하천을 타고 수십km 아래로 내려가 마을과 도로, 수력발전 시설을 덮치는 이른바 '복합재난'이다.
최근 네팔과 중국 티베트 접경 지역에서 발생한 대홍수는 그 위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네팔과 중국 양국에서 8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고, 실종자도 3000명을 넘어섰다. 네팔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한국인 9명도 여전히 소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대홍수와 산사태가 네팔 라수와를 덮친 가운데 9월3일(현지시간) 어퍼 트리슐리 3A 수력발전소 터널 인근의 붕괴된 건물에서 네팔 군인들이 실종자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REUTERS
렌데강 가로막은 '자연댐'…추가 범람 우려
이번 대홍수의 시작。으로 지목되는 곳은 네팔과 중국 국경 인근의 고산지대다. 사고 전후 위성영상 분석 결과, 네팔 랑탕 리룽산 북쪽 사면에서 대규모 붕괴가 일어난 흔적이 포착됐다. 해발 약 5200m 지.에서 빙하 하단부와 암석이 무너져 약 1200m 아래 계곡까지 쏟아져 내렸고, 빙하·바위·토사가 이곳을 흐르는 보테코시강 지류인 렌데강을 가로막아 일시적으로 물이 고이는 호수가 만들어졌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일종의 임시 댐이 생긴 셈이다.
하지만 이 댐은 견고하지 않았다. 물이 계속 차오르면서 압력이 커졌고, 결국 막혀 있던 강물이 한꺼번에 터져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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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양의 물과 토사가 계곡 아래로 쏟아져 내려 거대한 급류가 발생했다. 일반 홍수와 달리 급류에 얼음과 바위, 토사가 뒤섞여 있었다. 좁고 가파른 히말라야 계곡은 이 물질들을 한곳으로 집중시키며 파괴력을 키웠다. 산 위에서 발생한 작은 붕괴가 하류에서는 거대한 토석류로 바뀐 것이다.
아시아의 고산지대는 흔히 '세계의 지붕'으로 불린다. 히말라야와 힌두쿠시, 카라코람, 티베트고원 등에는 거대한 빙하가 자리 잡고 있고, 이곳에서 흘러내린 물은 인더스강과 갠지스강, 브라마푸트라강, 메콩강, 양쯔강 등으로 이어진다. 수억 명의 식수와 농업용수, 수력발전이 고산지대의 물 순환과 연결돼 있는 이유다.
빙하는 거대한 물 저장고인 동시에 산악 지형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영구동토층도 암석과 토양을 단단하게 묶어준다. 그러나 기온이 상승하면 빙하가 후퇴하고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암반과 토양을 붙잡는 힘이 약해질 수 있다. 특히 녹은 물이 암석 틈으로 스며들면 암반 내부의 결합력이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산비탈이 어느 순간 무너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사고 역시 이런 과정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기온 상승으로 녹은 물이 빙하와 암석 사이로 침투하면서 경사면을 약화시켰을 가능성을 거론한다. 여기에 여름 몬순의 강수와 앞서 녹은 눈까지 더해져 토양과 하천에 이미 많은 물이 쌓였을 수 있다. 이 상태에서 얼음과 바위가 강으로 쏟아지면 물과 토사가 뒤섞여 거대한 토석류로 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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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류에서 나타난 변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카트만두 소재 국제통합산악개발센터(ICIMOD)에 따르면 트리슐리강 하류 갈치 지역에서는 홍수 전후 30분 사이에 수위가 최대 9m 상승했다. 아파트 3층 높이에 해당한다. 말레쿠에서도 수위가 약 7m 치솟았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추가 홍수다. 최초 붕괴가 발생한 렌데강 상류에는 강을 가로막고 있는 잔해가 남아있어 이것이 무너질 경우 다시 대규모 급류가 발생할 수 있다. 중국 당국은 네팔의 라수와 지역 상류 5.6km 지。에 약 140만㎥의 물이 고인 호수가 범람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지진으로 오인돼…달라지는 고산 재난
당초 이번 사고는 규모 4.4의 지진으로 발표됐다. 하지만 미국지질조사국(USGS)은 추가 분석을 통해 실제 지진이 아니라고 정정했다. 빙하와 암석이 계곡으로 쏟아지는 과정에서 발생한 충격이 지진파처럼 관측됐다는 것이다. 이 충격은 지진 규모로 환산하면 5.2에 해당했다. 즉, 지진이 빙하를 무너뜨린 게 아니라 빙하와 암석의 붕괴가 지진과 유사한 진동을 만들어낸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네팔 홍수를 단순한 산사태나 일회성 자연재해로만 보지 않는다. 히말라야 일대의 빠른 기온 상승으로 빙하는 물론 주변 암석과 지형까지 변하고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빙하가 줄어들고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산악지대의 지질학적 불안정성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히말라야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 지역 중 하나다.
히말라야 빙하의 변화는 수치에서도 확인된다. 최근 10년간 빙하가 녹아내린 속도는 그 직전 10년보다 65%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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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에 따르면 네팔의 설산은 30여 년 사이 얼음의 약 3분의 1을 잃었다. 빙하와 관련된 홍수도 잦아지고 있다. 2000년대에는 히말라야의 빙하 홍수가 5~10년에 한 번꼴로 발생했지만, 최근엔 한 해에도 여러 차례 나타날 만큼 빈번해졌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재난의 양상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이다. 빙하가 녹아 호수가 붕괴해 발생하는 '빙하호수 범람'은 히말라야에서 이미 반복적으로 관찰돼 왔다. 그러나 이번처럼 빙하와 암석이 직접 강을 막아 임시 호수를 만들고, 이후 이 구조물이 무너지면서 홍수가 발생한 사례는 또 다른 위험을 보여준다. 기후변화가 단순히 고산지대에서 예상하지 못한 형태의 연쇄 재난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만 이번 홍수와 지구온난화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확인된 것은 아니다. 중요한 。은 이번 재난이 지구온난화 때문에 발생했다고 단정하기보다 온난화로 빙하와 고산지대의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는 .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재난이 발생할 수 있는 조건 자체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양의 비가 내리더라도 과거와 같은 결과가 나타난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이유다.
네팔 홍수는 이러한 복합적인 위험이 한꺼번에 현실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히말라야에서 시작된 변화는 더 이상 산 위에서 끝나지 않는다. 빙하의 작은 변화가 산사태로 이어지고, 산사태가 하천을 막아 홍수를 일으키며, 그 물과 토사가 도시와 산업 시설을 위협할 수 있다. 기후위기 시대의 고산 재난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사건의 연쇄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빙하가 얼마나 줄었는가'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빙하가 사라진 자리에 어떤 위험이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할 때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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