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초중반. 대한민국엔 '멘토 열풍'이 뜨겁게 불었다. 멘토링 콘셉트의 콘서트가 전국적으로 인기몰이를 했고,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은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당시 인기를 끈 오디션 프로그램들도 대개 멘토링 형식에 기댔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에 상륙한 영화가 있었으니, 낸시 마이어스가 연출한 《인턴》(2015)이다. 70대 인턴(로버트 드니로)과 30대 CEO(앤 해서웨이)의 유쾌한 회사 생활과 우정을 그린 영화는 현명한 멘토를 갈구하는 젊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극장가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개봉 국가 중에서 한국이 가장 높은 성적을 기록했으니, 그 인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이상적인 어른을 얼마나 갈구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 사례이기도 했다.
9월16일 개봉하는 김도영 감독의 《인턴》은 이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작에서 앤 해서웨이가 연기한 스타트업 CEO 줄스는 패션 브랜드 CEO 선우(한소희)로, 로버트 드니로가 연기한 70세 실버 인턴 벤은 60대 실버 인턴 기호(최민식)로 새롭게 옷을 입었다. 원작과 한국판의 시간 차이는 11년. 멘토 열풍이 저물고, 멘토는커녕 세대 갈등이 사회문제로 급부상한 올해, 영화를 리메이크하면서 제작진은 어떤 비책을 내놓았을까. 《82년생 김지영》과 《만약에 우리》 등 원작이 있는 작품 변환에 재능을 보였던 김 감독의 도전은 이번에도 성공할까.
영화 《인턴》 포스터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원작과 무엇이 같고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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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간 출판 업계에 몸담은 기호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후 적적한 은퇴 생활을 보내고 있다. 익숙한 것들과 하나둘 이별하던 기호는 어느 날 패션 스타트업 '우투투(woo22)'의 실버 인턴 채용 공고를 보게 된다. 끌리듯 지원한 기호는 회사 CEO 선우의 직속 인턴으로 3개월간 채용된다. 선우는 젊음과 패기로 창업 3년 만에 우투투를 매출 100억원을 달성한 패션 브랜드로 성장시킨 입지전적인 인물. 그러나 부대표 영환(김준한)은 안정적인 회사 운영을 위해 전문경영인을 영입하자며 선우를 설득하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기호는 회사 생활에 적응해 간다.
영화는 적잖은 부분에서 원작을 그대로 따랐다. 사건이 벌어지는 배경이 패션 업계라는 것도 같고, 시니어 인턴을 믿지 못하던 선우가 기호에게 마음을 열게 되는 계기도 동일하다. 주인공이 일로 가정에 소홀한 사이, 자존감을 잃은 남편이 불륜에 빠지는 상황도 똑같이 그려진다.
원작의 큰 그림은 유지하되, 세부적인 디테일에서 영화는 변화를 줬다. 일단 원작의 줄스가 일과 육아 사이에서 고민하는 '워킹맘'이었다면, 선우는 임신과 출산 자체를 미룬 딩크족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 저출산 국가의 현실을 반영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워킹맘이라는 설정을 덜어내면서 영화는 인물의 감정에 좀 더 집중하는 선택을 했다. 이 과정에서 결말도 상당 부분 달라졌다. '갈등 봉합'에 방。을 찍는 원작과 달리, 한국판은 선우의 '성장'을 더 깊게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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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인물의 성장에 신경 쓴 작품치고는, 선우가 지닌 능력에 대한 묘사가 많이 빈약하다. 이 작품엔 '진취적인 여성 리더'의 모습이 거의 탈색돼 있다. 영화에 그려진 선우는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지나치게 감정적이다. 직원을 대할 때도, 클라이언트를 만날 때도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선다. 나이 든 사람에 대한 편견도 가지고 있어 실버 인턴을 채용하고도 별다른 업무를 주지 않고 방치하기도 한다. 결말의 방향을 비튼 것은 나쁘지 않지만, 이를 설득시킬 만한 빌드업이 부족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반면 기호는 원작에 비해 10년 젊어진 것 빼고는 차이가 크게 없다. 벤이 그랬듯, 기호 역시 판타지의 정.이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젊은이들에게 꼰대처럼 굴지 않으며, 새로운 걸 배우는 데 적극적이고, 관계에 있어선 선을 지킬 줄도 안다. 어디 이뿐인가. 일도 꼼꼼하게 잘하고, 경험을 살려 주위에 도움도 준다. 감독은 "기호를 현자(賢者)의 모습보단 노동시장에서 제외된 어른으로 그리고 싶었다"는데, 원작처럼 너무 이상적으로만 그려지다 보니 그 계획이 크게 성공한 것 같진 않다.
원작은 영화사에 남는 걸작까진 아니었어도, 당대의 관객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간파한 기획이었고 그걸 묵직하게 밀어붙이는 영화였다. 그러나 11년 만에 리메이크된 《인턴》은 원작의 설정 안에서 몇 가지를 안전하게 변주했을 뿐, 이 영화만의 개성을 입지는 못했다. 앞서 언급했듯 세대 갈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한 상황에서 관객에게 필요한 건 판타지가 아니라, 땅에 발붙어 있는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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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에서 지금의 상황을 예민하게 반영한 리메이크물인가에 대한 물음표가 남는다.
선과 악 없이 인물들이 놓인 환경을 갈등 요소로 활용한 원작과 달리, 등장인물 한 명을 뚜렷한 악인으로 몰고 간 설정도 사뭇 걸린다. 다소 촌스럽달까. 원작의 장.을 수혈하면서, 한국 상업 영화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돼온 부분들도 집어넣은 모양새다.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한국적인 변환이다.
영화 《인턴》 포스터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자기 탓'에 익숙한 여성들에게 고함
그러나 관객의 감정을 찌르는 부분이 없는 영화는 아니다. 특히나 성장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당근보다 채찍을 휘두르는 여성이라면, 기호가 극 말미에 건네는 대사에 뭉클해질 법하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지나친 자기 검열로 인해, 자기 잘못이 아닌 일도 '자기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그런 여성들에게 영화는 자기 안의 한계를 두지 말라고 응원을 보낸다. 이 메시지를 건네는 이가 '연기 백단' 최민식인 만큼, 울림은 꽤 크게 다가온다.
한국판 《인턴》의 볼거리 중 하나는 한소희의 패션이다. 패션 회사 CEO라는 설정을 살려 장면마다 멋스러운 오피스룩을 선보인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영화를 보다 보면 한소희 패션을 장바구니에 담아내는 상상을 할 관객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면에서 《인턴》은 앤 해서웨이의 또 다른 흥행작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떠올리게도 한다. "선우 캐릭터가 고민도 많고 여러 가지 '불안'도 있는 얼굴이었으면 했다"는 감독의 의도는 한소희가 지닌 특유의 기질과 만나 증폭된 면도 있다. 작품의 성패와 무관하게, 배우 한소희 개인의 이력에선 꾸준히 언급될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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