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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use she couldn't erase the videos, she had to erase herself." (영상을 지울 수 없었기에, 그는 자기 자신을 지워야했습니다)
2022년 11월 30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 유럽본부 팔레 데 나시옹의 템푸스(Tempus) 회의장에서 나온 말이다. 발언자는 <추적단 불꽃>의 원은지 대표(아래 활동명 '단'으로 표기).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들의 보복 우려 때문에 그는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였다.
UPR(Universal Periodic Review, 국가별 정례 인권 검토)을 앞두고 각국 외교관 등을 상대로 한국의 인권 현안을 직접 설명하는 자리(프리세션)였다. UPR은 유엔 인권이사회의 핵심 제도 중 하나다. 즉, 프리세션 발표가 UPR 본심사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향한 공식적인 UN 권고안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그 날, 단은 국제사회에 "국내외 민간 플랫폼·중개사업자가 온라인상의 차별과 폭력을 근절하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게 해달라"라고 요구했다. 두 달 후, 제4차 UPR 본심사에서 아일랜드·이탈리아·코스타리카·리투아니아 등은 온라인 젠더 기반 폭력 근절 등을 위해 적절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고, 우리 정부는 이를 수용했다. 온라인 젠더 기반 폭력 대응을 우리 정부에 권고한 것은 UPR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한다.
선글라스
▲ ?2023년 3월 8일, 국제여성의 날에 서울 구글코리아 본사 앞에서 여성들이 "온라인 성폭력 생존자를 보호하라"며 플래시몹을 진행하고 있다.
ⓒ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2023 소식지 갈무리
그 자리에서 단은 울었다. 프리세션에 함께 참가한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관계자는 "(단이) 발표 도중 눈물이 차 올라 잠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라고 홈페이지 소식란을 통해 당시 상황을 전했다. 다음은 단의 회상이다.
"2분 30초부터 목이 메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의 연령이 。. 낮아지고 있다는 대목에서였다. 선글라스와 마스크 안으로 눈물과 콧물이 흘렀다. 휴지로 닦기도 애매했다... (중략)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했지만 마음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눈물을 삼키면서 계속 말을 뱉었다."
단이 최근 내놓은 책 <불꽃이 꺼지지 않게>(돌고래)에 나오는 내용이다.
"디지털 성범죄자의 은신처가 텔레그램이라면, 나의 전장 역시 텔레그램이다. 미치도록 잡고 싶은 '그놈'에게 닿을 수 있는 전쟁터에서 내 유일한 무기는 '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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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1부 '지금도 여전히, 추적단 불꽃입니다'에 나오는 이야기들, 참혹하다. 단이 그 전쟁터에서 어떻게 싸웠는지 읽다 보면 머릿속이 새하얘질 정도다. 피해자들과 함께 가해자들과 직접 싸웠던 그 시간, 'N번방' 사건 이후만 따져도 약 6년이다. 피해자들과의 강한 연대가 "누군가 분명히 말하고 있는데 돌아보지도 않고 듣지 않는 구조"에 기반하고 있다는 역설과는 2부에서 마주한다. 3부에 이르러서야 단이 꿈 많고 치기도 있는 젊은이라는 사실이 새삼 다가온다.
전쟁터
▲ ?'추적단 불꽃'의 단(원은지 대표)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 함께 2022년 11월 28일부터 12월 2일까지 열린 UPR 프리세션에 참석했다. 회의장 앞에서 함께 참석한 앰네스티 캠페이너 자아(오른쪽)와 온라인 젠더 폭력을 멈추라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 국제앰네스티한국지부
"무엇보다 끔찍한 건 죄의식이 아예 사라진 '진공의 공간'을 지켜보는 일 자체였다."
그만큼은 아니겠지만, 읽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나는 조련하면 내 서진부터 몸에 새김"이라고 말했다는 '엘(성착취 영상을 찍어 텔레그램을 통해 유포)'에게 당한 피해자의 나이, 사건 당시 고작 열* 네 살이었다. 그로부터 "도와달라"는 SOS 메일이 도착한 날은 단이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제주도 여행 첫 날이었다고 했다. 단이 그 날 했던 일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피해자를 대신해 엘과 직접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혹시라도 경고하는데 나 가지고 장난하는 거면 너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죽여버린다."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 주범으로부터 단이 들었던 말이라고 했다. 스스로를 "반쯤 나사가 풀린 상태의 기혼 남성"으로 위장하고, 가해자를 잡기 위해 대화를 나눈 기간이 무려 2년 정도였다고 한다. 그 시간 동안 단은 가해자로부터 "같이 서울대 X들 능욕하자"라는 말을 들어야 했고, 심지어는 가상의 부인을 상대로 한 각종 음담패설과도 마주해야 했다고 전했다.
"2주가 넘도록 매일 밤 11시 김T(가해자의 텔레그램 대화명)와 대화한 끝에 오프라인으로 그를 끌어낼 방법이 떠올랐다. 팬티를 미끼로 써보자... (중략) 그는 매번 착실하게 팬티를 수거해갔다... (중략) 그동안 모았던 증거와 피해 사실을 모두 경찰에 제출했다. 체포영장이 나왔다. 이제 그놈을 불러낼 마지막 팬티 1장만 있으면 된다
모바일 오리지날야마토연타예시
."
그리고 2024년 5월이었다. 검은 옷을 입고 모자를 눌러 쓰고 마스크까지 착용한 가해자가 시청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팬티를 가져가려고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CCTV 장면, 많은 사람들이 뉴스를 통해 생생하게 목격했다. 경찰에게 잡힌 '그놈'은 징역 9년 형을 받았다.
성형수술
▲ ?'추적단 불꽃'의 단(원은지 대표)이 최근 내놓은 책 <불꽃이 꺼지지 않게>(돌고래)
ⓒ 돌고래
책에서 단은 여러 차례 성범죄 가해자들을 '그놈'으로 지칭했다. 6년이란 시간 동안 피해자들과 함께 싸운 전사로서, 동시에 가해자가 잡혀도 끝나지 않는 그들의 고통을 지켜본 목격자로서는 한편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읽힌다. 책에서 단이 느끼는 분노의 온도가 가장 뜨겁게 다가오는 지。 역시 피해자들의 고통을 이야기할 때다.
"왜 피해자만 증명하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가? 디지털 성범죄는 그릇된 성문화를 답습한 가해자가 벌이는 범죄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전 생애에 걸쳐 피해와 상처를 딛고 회복해 나가기 위해 노력할 때 무엇을 하는가? 기껏해야 본인의 범죄를 반성하는 것뿐이다."
책에서 단이 전하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노라(가명)씨 사례는 그 분명한 근거다. 단은 "피해를 알게 된 날로부터 5년 가까이 지났다. 그동안 재유포는 수십 번도 더 이뤄졌지만, 주위에서 더는 노라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며 그 이유를 건조하게 전한다.
"성형수술로 얼굴을 바꿨고 개명도 했다."
주위에서 알아보는 이가 없다고 사라질 고통은 물론 아니다. 단에 따르면 "노라는 피해 이후 수년간 꾸준히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고 한다.
억울함도 가라앉지 않는다. 단은 "피해 초기 집중되어 있는 피해자 지원 성격상, 심리 상담 지원 기간이 한정적"이라면서 "노라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지원하는 예산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본인 대신 심리 지원을 받지 못한 다른 피해자가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래서 자비로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눈물
▲ ?2024년 10월 1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경찰청 국정감사장 모습. 참고인으로 출석한 '추적단 불꽃' 단의 발언을 경찰 관계자들이 듣고 있다.
ⓒ 국회TV 갈무리
2024년 10월 11일, 그러니까 스위스 제네바에서 "영상을 지울 수 없었기에, 그는 자신을 지워야 했다"며 국제 사회의 연대를 촉구했던 때로부터 약 2년여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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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경찰청 국정감사장에서 단은 또, 울고 있었다. 참고인으로 출석해 했던 단의 발언을 국회 기록 영상 내용 그대로 옮긴다.
"5년 전부터 디지털 성범죄를 앞장서 수사해 왔던 경찰분들에게 최근 만날 때마다 물어봤습니다. 대체, '텔레그램에서 아는 여성들 사진을 다른 여성 나체 사진 또는 강간당하는 듯한 이미지에 합성하는 놈들, 그리고 그 합성사진을 공개하면서 신상공개까지 하고 피해자들 일상까지 공유하는 이 가해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물어봤더니, 일선 수사관들 모두 '검거되는 거, 검거돼서 본인 죄가 세상에 알려지는 게 가장 두려울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다음 단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것이었다.
"그걸 아는 분들이 왜 그러셨습니까."
그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울먹이며) 범죄를 방관했다는 걸, 범죄자들도 압니다.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정치권에서 지금이라도 경찰에 책임을 물을 수 있어 다행입니다. 이건 5년치 국정감사입니다. 5년 전 이 자리에서 텔레그램이 수사 협조가 안 된다고 하는 경찰관들, 지금 자료로 아무것도 못 하니까 피해자에게 직접 초동수사해오라고 했던 경찰관들, (이렇게) 질의했으면, 서울대 사건, 인하대 사건, 초중고 딥페이크 사건들, 피해자들의 원통함이 조금이라도 나아졌을까요."
피해 고발자
그로부터 다시 2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도 단이 마주하는 현실은, 자신의 피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포인트를 충전해 불법 사이트에 들어가 모니터링하는 피해자다. 교제 남성이 성관계 영상을 몰래 촬영해 유포하자, 자신의 얼굴과 실명 그리고 가해자 신상을 공개한 피해자 또한 그의 곁에 있었다. "(가해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얼굴을 보고 법적으로 책임을 질 때가 끝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던 중학생 피해자의 말 또한 단에게는 여전히 생생한 듯했다.
단은 이들을 피해 고발자라고 부른다. 그에게 이들은 "능동적인 존재로 스스로 싸워야 하는" 사람들이다. "누군가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기 위해 내 사진을 찾아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방안에 틀어박혀 떨면서도", 피해 고발자들과 함께 싸우다가 생긴 트라우마로 단 본인도 심리 상담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는 싸움을 멈출 생각이 없다고 했다.
"피해 이후 노라가 다른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돕고, 함께 투쟁할 수 있는 방법을 줄곧 고민하는 모습을 봤다. 노라는 미래를 그리는 사람이다. 나 역시 적극적인 피해자를 돕는 적극적인 시민이 되고 싶다. 피해자가 스스로 피해를 증명하고 보호받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야 하는 사회라면, 그 싸움이 외롭지 않도록 함께 하고 싶다."
피해를 알게 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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