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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룸?사춘기 아이들과 삼 개월 동안 옹기종기 살았던 곳
ⓒ 김지호
3개월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지난 5월 16일 마땅한 전셋집을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살고 있던 집이 나갔다.
이사 날짜가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작은 원룸을 구해 몇 달 복작복작 살았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방문을 닫고 지내던 딸, 친구들과 놀기 바빴던 아들, 그동안 제대로 이야기 나눌 시간이 없었던 우리는 한방에 옹기종기 모여 잠을 자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밤을 보냈다.
그렇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 가고 있었지만, 새로 계약한 전셋집 대출 심사가 만만치 않았다. 무난하게 대출이 될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대출 규제 정책으로 피가 바짝바짝 말라가고 있었다.
은행에서는 수시로 추가 서류를 요청하는데, 정작 남편은 지방에 있으니, 남편의 대리인으로 은행을 오가며 한여름을 뜨겁게 보냈다. 이사를 며칠 앞두고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게 많았다. 원룸으로 옮길 때 신혼 초부터 썼던 가구며 가전제품 일부를 버렸다는 사실조차 잊고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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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쉴 새 없이 울리는 남편 핸드폰 알람 소리
"여보 세탁기랑 건조기 사야 하지 않아?"
"필요하지!"
건성으로 대답했는데, 생각해 보니 좁은 집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아침저녁으로 벗어 던지는 아이들 빨랫감이었다. 매일 빨래를 해도 말릴 공간이 없어서 빨았던 옷에서 나는 쉰 냄새와 빨지 않은 옷에서 나는 땀냄새로 빨래 지옥이었다.
이사를 2주 남겨놓고 남편의 핸드폰은 수시로 "띵동", "띵동"을 외쳤다.
"여보 이거 어때, 지금 중고로 나왔는데 가지러 가자."
"그걸 가져 와서 어디에 두려고, 보관할 데도 없잖아."
"에이, 잠깐 회사 창고에 보관하자."
"나중에 어떻게 옮길 건데."
이사 전날 구매하던지, 일정을 맞췄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맘에 든 건 바로 사야 한다며 다시 검색을 시작했다.
"여보 우리 로봇 청소기 살까?"
남편은 조용히 나갔다가 두 손 무겁게 돌아왔다. 중고 사이트에서 구매한 제품이었다. 식탁, 건조기, 세탁기, 구매 목록에 예약을 걸어두고, 제품 성능과 가격을 비교하는 남편은 잠시도 핸드폰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여보,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
마치 '중고 사이트'에 중독된 것 같은 남편에서 한 소리 하고야 말았다.
"그럼 안 사? 당신이 관심 없으니까, 나라도 찾아봐야지, 아, 지친다."
남편은 다시 핸드폰으로 눈을 돌렸다.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남편은 남편대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주말부부다 보니 주중에 전화나 메시지만으로 서로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아직은 젊은 혈기를 믿은 걸까, 남편과 이틀 휴가를 빼고 입주 청소와 크고 작은 집수리를 직접 하기로 했다. 짐이 있었을 때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멋스러웠던 집이 짐을 빼고 나니 여기저기 삐그덕거렸고, 손볼 곳이 많았다. 가구와 집의 조화가 무슨 의미인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 처음으로 도전?페인트 칠
ⓒ 김지호
남편은 화장실과 세탁실을 나는 부엌, 싱크대를 아이들은 자기들 방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딸이 자기 방 붙박이장 색깔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투덜거리길래 호기롭게 페인트칠해 주겠다고 했다. 무심코 한 말은 붙박이장 페인트칠을 시작으로 낡은 안방 문, 아이들 방문, 베란다 문까지 완벽하게 칠하게 됐다. 나중에는 손이 덜덜 떨려 숟가락 쥘 힘도 없었다.
그렇게 힘겹게 청소와 페인트칠을 끝내고, 삼 개월 동안 살았던 원룸 짐부터 옮기기로 했다. 짐이 많지 않아서 한나절이면 끝날 거라고, 일찍 끝내고 아이들에게 짜장면, 탕수육을 먹자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작은 집 어디에 그렇게 많은 짐이 쌓여 있었는지 '이제 다 됐겠지' 생각하는 순간 한무더기의 짐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3층에서 1층으로 짐을 내려서, 이사 갈 집으로 이동해 다시 짐을 들고 나르고, 나중에는 체력이 바닥나고, 아이들도 지쳐 드러눕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이삿짐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그렇게 두 번째 이사가 시작됐다. 새집에 꽉꽉 들어찬 짐을 보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생각보다 불필요한 짐들이 거실, 베란다, 안방을 가득 채웠다. 그 많은 짐을 수납할 수납장이 없었다.
"띵동."
남편의 핸드폰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바람같이 사라진 남편은 안방에 설치할 시스템행거를 가지고 왔고, 수납장을 들고 돌아왔다. 새벽부터 사라진 남편은 금세 돌아와 거실 커튼을 달고 있었다.
"여보 저녁에 건조기 올 거야, 용달 아저씨가 싣고 올 거니까 잘 받아놔."
느닷없이 퇴근길에 건조기 올 거라는 전화를 받았다. 남편 핸드폰은 지방에서도 변함없이 울리고 있었다. 모든 물건을 중고 사이트에서 구매하는 남편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구매 링크를 보내는 남편의 집착이 과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말없이 메꾸고 있던 것
▲ 집에서 맞이한 일출?새롭게 시작하는 일상이다
ⓒ 김지호
나는 이사 가면 가구, 가전제품을 새로 장만할 생각이었는데, '중고 사이트'를 검색하는 남편의 열정 앞에서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남편은 물건을 구매하고 내려가면 주말에 올라오니 사실상 정리와 사용은 내 몫이었다.
"또 사?"
나도 모르게 참고 있던 말이 툭 튀어 나왔다.
"식탁은 필요하잖아, 내일 배송이 된다고 하니 자리 배치 잘 해 봐."
그렇게 마지막으로 식탁이 들어왔다. 나는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고 여기서 저기로 자리만 이동하며, 매일 쌓여 있는 이삿짐을 정리하고 있고, 남편은 여기저기 사진을 거느라 주말을 보내고 있다.
"여보 사진은 좀 그만 걸면 안 돼?"
"왜?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잖아."
"넓어 보였던 집이 .。 작아 보여."
내 말을 듣고는 있는지, 손에 들고 있던 액자를 거실벽에 걸면서 이런 말을 했다.
"여보, 우리 15년 걸렸다. 이렇게 번듯한 집으로 이사 오기까지."
툭 던진 남편 말에 움찔했다. 돌이켜보면 중고 사이트에서 장만한 가전제품 덕분에 금전적으로 절약을 많이 했다. 적기에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살게 된 원룸 월세, 짐 보관 비용과 두 번의 이사 비용 예상치 못한 돈이 줄줄 새어 나갔다. 남편은 그것을 말없이 메꾸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이삿짐이 눈에 보이고, 익숙하지 않은 가구들 사이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이사하는 동안 큰 몫을 해준 아이들과 나의 부족한 부분을 조용히 채워준 남편, 오롯이 평일은 내 몫이 되어버린 청소와 정리가 남아 있지만, 남편을 흐뭇하게 미소 짓게 한 이 집에서 어떤 추억을 만들지 내심 기대된다.
《 group 》 주말부부 이야기 : https://omn.kr/group/two_house_story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다른 두 부부가 비슷한 시기에 주말부부가 되었습니다. 아내와 남편 입장에서 주말부부 이야기를 씁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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