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13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검찰개혁에 따른 형사소송법 개정에 대한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단체 기자회견’에서 김남희 더불어민주당 의원(맨 오른쪽)이 발언하는 가운데 참가자들이 피해자 권리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피해자에게 절대 준비 없이 수사기관에 가선 안 된다는 말을 많이 해요. 저도 이 말을 정말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연대자 D는 10년 이상 전국의 성범죄 재판을 모니터링하며 피해자를 지원해온 익명의 활동가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이기도 한 그는 형사사법절차에서 피해자가 배제되는 모습을 감시하고 고발하는 역할을 해왔다. 피해자들을 위한 수사와 재판 대응 매뉴얼 등을 만들기도 했다.
지난달 21일 인터뷰에서 D는 “피해자에게 법적 절차를 밟는 일이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형벌권을 국가가 가지고 있잖아요. 내가 범죄 피해를 입었으면 국가기관에 가서 나의 피해를 인정하고 가해자를 처벌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요. 여기에 왜 장벽이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특히 변호사를 선임할 여력이 없거나 사법시스템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피해자에게는 이 과정이 더욱 지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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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 적극 참여하기를 원하는 피해자가 당사자로서 실질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제도와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문제는 아동·청소년이나 장애가 있는 피해자, 자원이 없는 피해자는 참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이라고 말했다. 형사사법절차에서 피해자의 권리를 확대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것이 ‘피해자가 더 적극적으로 수사와 재판에 임했어야 한다’며 입증 책임까지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결과로 이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D는 “자원이 없는 사람을 기준으로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현재 시스템은 자원이 있는 피해자들의 자원까지 빼앗고 있다”고 말했다.
성범죄 가해자를 위한 법률시장은 이미 커진 지 오래다. 판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 대형 로펌 출신 변호사 등을 내세운 ‘성범죄 전담 법무법인’들이 2010년대 중반부터 등장했다.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김보화 박사는 저서 <시장으로 간 성폭력>에서 성범죄 전담법인과 감형 컨설팅 업체들이 만들어낸 각종 감형 방법을 가해자들이 ‘쇼핑’한다고 분석한다. 이들은 주변인들을 마구잡이로 증인으로 불러내거나 피해자의 ‘피해자답지 않음’을 공격하는 등 2차 가해에 해당하는 전략을 쓴다. 이런 방식으로 피해자를 괴롭혀 합의를 얻어내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런 법무법인들이 ‘피해자 대리’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공포와 불확실한 빈틈을 시장이 파고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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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피해자 지원단체 관계자는 “인생에 한 번뿐인 사건인데 빚을 내서라도 제대로 된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는 식으로 피해자에게 겁을 주고, 합의금을 높이기 위한 방식으로 형사절차를 진행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1심부터 3심까지 한꺼번에 수임한다며 고액의 수임료를 받은 뒤 가해자가 경찰에서 불송치되자 이의신청서를 쓸 때 또 돈을 받는 법무법인도 봤다”고 했다.
이런 문제는 다음달 개정 형사소송법이 시행되면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피해자가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이의신청을 하려면 경찰이 누락한 증거와 수사의 허.을 직접 찾아내야 한다. 부실한 수사가 부실한 재판으로 이어지는 만큼 공소 유지를 위해 변호사가 필요해지는 경우도 늘어날 수 있다. 피해자가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으면 대응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가 있지만 지금도 적은 보수로 많은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국선변호사들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국가가 보호하고 구제해야 할 범죄 피해자에 대한 책임이 시장으로 넘어가는 셈이다. 자원이 있는 피해자만 가해자를 법정에 세울 수 있는 ‘사법의 민영화’ 현상이다.
그렇지 못한 피해자들은 가해자를 수사기관에 신고해 처벌하는 당연한 과정을 앞두고 망설이게 될 수밖에 없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씨는 “이렇게 가해자 처벌이 어려워지면 피해를 신고하고 재판 과정까지 거쳐가며 자기 피해를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해질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