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면 악당(빌런)이 등장한다. 누가 봐도 악하고 나쁜 사람이 빌런이다. 그런데 일상에서는 이들이 잘 구분되지 않는다. 신앙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타인에 대해 어느 정도 용서하지만 어느 선에는 응어리를 남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만 여전히 결정권은 내가 쥐어야 한다. 결국 빌런은 드러나 있지 않고 가만히 숨겨져 있다.
이 책은 요나서를 다룬다. 저자는 요나야말로 진짜 빌런이라고 본다. 하나님의 마음보다 자신의 의로움과 명분을 앞세운 선지자, 그것이 요나의 본모습이다. 특히 다시스로 가는 배에 폭풍이 몰아치는 장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탄다. 주님은 바다에 폭풍을 내리신다. 거센 파도가 배를 집어삼키려 하고 선원들은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 그런데 정작 폭풍의 원인을 제공한 요나는 배의 가장 아래쪽에서 잠을 청한다. 과연 누가 빌런인가. 폭풍 속에 살려고 발버둥치는 선원들인가. 아니면 악독한 니느웨 사람들인가. 저자는 진짜 빌런으로 요나를 지목한다. 세상을 살려야 할 사람이 배 밑바닥에서 깊은 수면에 빠진 것이다. 요나는 자기만 힘들게 한 것이 아니라 주변을 힘들게 하고 위험에 빠뜨렸다. 결국 숨겨진 빌런은 요나였다.
책을 읽는 내내 성경을 파고드는 저자의 집요함에 혀를 내둘렀다. 존 스토트는 설교를 성경의 세계와 현대의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는 작업이라 하지 않았던가. 저자는 성경의 세계를 집요하게 파고들고 오늘의 세상으로 부지런히 퍼 나른다. 자신의 삶을 드러내고 일상에서 예화를 찾는다. 두 세계 사이를 오가며 부지런히 다리는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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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넋 놓고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내가 바로 숨겨진 빌런이며 요나인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독자를 빌런으로 고발하는 저자가 진짜 빌런일지도 모르겠다.
책의 중간중간에 그리스도 중심적 성경 읽기의 예시가 나온다. 빌런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추격하며 설득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은 독생자 예수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찾아오기 때문이다. 결국 이 책은 인간의 한계와 실상을 매섭게 짚어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어둠을 덮고도 남는 무한한 은혜의 빛을 바라보게 만든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따뜻하다. 복음의 온기가 저며 있다. 그러니 자신이 빌런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도 안심하며 읽기를 권한다. 결론은 복음이니까.
조태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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