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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셸 오토니엘 개인전 ‘사랑 안의 미로’ 설치전경 <
영롱한 유리구슬을 꿰어 만든 거대한 목걸이가 공중에 떠 있다. 발아래에는 푸른 유리 벽돌이 강물처럼 이어진다. 빛을 머금은 표면은 잔잔한 물결 위로 햇빛이 반짝이는 윤슬을 떠올리게 한다. 단단하지만 한순간에 깨질 수 있는 유리 속에 사랑과 상실, 상처와 치유를 담아온 ‘유리의 연금술사’ 장 미셸 오토니엘의 세계가 부산에 펼쳐졌다.
2026 부산비엔날레가 지난 29일 개막한 가운데 부산 곳곳에서도 굵직한 전시들이 관람객을 맞고 있다. 그중 부산 수영구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F1963 석천홀에서 열리는 오토니엘 개인전 ‘사랑 안의 미로’는 가장 큰 관심을 받는 전시로 꼽힌다. 작가가 부산에서 여는 첫 개인전으로, 120여 。을 통해 그의 예술세계를 종합적으로 조망한다.
오토니엘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현대미술가다. 유리와 금속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조각과 설치, 공공미술을 선보여왔다. 베르사유 궁전 정원의 ‘아름다운 춤’, 루브르 박물관의 의뢰로 제작한 ‘루브르의 장미’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프랑스 아비뇽 역사 지구를 무대로 아비뇽 교황청을 비롯한 10곳에서 대규모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펼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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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셸 오토니엘 개인전 ‘사랑 안의 미로’ 설치전경.
전시장 초입에는 바닥에 푸른 유리 벽돌을 깔아 설치한 ‘푸른 강’과 함께 공중에 단 ‘목걸이’와 ‘매달린 연인’ 연작이 관람객을 맞는다. 오토니엘 작업의 핵심 재료인 유리는 견고하면서도 깨지기 쉽다. 액체가 고체로 굳어지는 과정에서 생긴 기포와 불순물, 미세한 흠집도 그대로 품는다. 오토니엘은 1993년부터 이탈리아 무라노의 유리 장인들과 협업하며 유리를 자신의 작업 언어로 발전시켜왔다. 완벽하지 않은 유리는 인간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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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셸 오토니엘 개인전 ‘사랑 안의 미로’ 설치전경.
목걸이 작업에는 개인적인 상실의 기억도 깃들어 있다. 오토니엘은 젊은 시절 사제의 길을 가던 신학생과 사랑에 빠졌다. 그의 동성 연인은 종교적 신념과 사랑 사이에서 오랜 고뇌를 겪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 사건은 작가에게 평생 남은 상처가 됐고 이후 작업을 관통하는 중요한 동기가 됐다.
구슬을 꿰어 만드는 목걸이를 만드는 과정은 작가에게 떠나간 이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행위다. 구슬은 여러 종교에서 기도와 명상에 사용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구슬을 하나씩 잇는 행위에는 자신의 상처를 돌아보고, 소중한 이를 기억하며 기도하는 마음이 담긴다. 개인적인 비극에서 출발한 작업은 사랑과 애도, 치유라는 보편적인 감정으로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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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셸 오토니엘 개인전 ‘사랑 안의 미로’ 설치전경.
전시를 따라가다 보면 공간은 。차 꽃과 정원, 우주의 이미지로 넓어진다. 야외 정원에는 한국의 전통 정원과 연꽃에서 영감을 받은 ‘황금 연꽃’이 설치돼 있다. 작가는 자신에게 영감을 준 꽃을 석판화로 표현하기도 했다. 벚꽃은 푸른색으로, 패션플라워는 노란색으로 표현하는 식이다. 그렇게 탄생한 꽃들은 다시 조각으로 모습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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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셸 오토니엘 개인전 ‘사랑 안의 미로’ 설치전경.
작가의 시선은 지상의 정원에서 우주로 향한다. 지름 4m에 달하는 대형 작품 ‘코스모스’와 열두 별자리를 추상적으로 형상화한 ‘황도 십이궁’이 대표적이다. 한 사람이 겪는 사랑과 상실은 더 이상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작가는 인간의 감정을 광활한 우주 속에 놓으며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한다.
작가가 최근 천착하는 유리 벽돌 연작도 소개된다. 작가는 2010년 인도를 여행하던 중 사람들이 집을 짓기 위해 쌓아둔 벽돌과 제단 위에 올려진 공양물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의 작품에서 벽돌은 삶을 이어가고 미래를 만들어가려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과 희망을 상징한다. 서로 기대고 맞물려야 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은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과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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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셸 오토니엘 개인전 ‘사랑 안의 미로’ 설치전경.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유리 벽돌 작업 중 가장 큰 규모인 ‘원더 블록’도 공개된다. 작가는 “조각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건축적인 공간으로 작업을 확장하고자 한다”며 “유리 벽돌을 이용해 내년 프랑스 남부 해안 도시 세트에서 파빌리온과 같은 건축적 구조물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토니엘은 전시명인 ‘사랑의 미로’에 관해 “나는 사랑 속에서 헤매고 있었고, 그것은 매우 긴 과정이었다”며 “미로를 헤매는 것은 사랑을 지니고 살아가기 위한 법에 대한 하나의 철학”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로는 두려워하는 것을 마주하거나, 무언가를 감행하는 공간”이라며 “오늘날 사람들에게 진정한 감정과 마주하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미로라는 개념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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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셸 오토니엘 개인전 ‘사랑 안의 미로’ 설치전경.
이번 전시는 관람객에게 미로를 걷는 경험을 제안한다. 유리구슬에 담긴 사랑과 상실에서 출발해 꽃과 정원을 지나 우주로 향하고, 마침내 서로 기대어 쌓인 벽돌 앞에 선다. 쉽게 깨질 수 있기에 더 빛나는 존재들, 상처를 안고도 다시 무언가를 쌓아 올리는 인간의 이야기가 그 끝에서 기다리고 있다. 전시는 12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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