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수필가협회가 29일 마산 3.15아트홀 국제회의장에서 '수필, 미래문학인가'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경남수필가협회
"수필의 미래는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수필의 장에 발 디디고 있는 사람들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할 과제다."
신재기 계간 <수필미학> 발행인은 수필이 미래 문학으로 자리 잡으려면 먼저 수필 내부에 쌓인 문제를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자아 중심주의와 이론·비평의 빈곤, 고정된 창작 방식을 그대로 둔 채 수필의 미래를 낙관하기는 어렵다는 진단이다.
경남수필가협회가 29일 마산 3.15아트홀 국제회의장에서 '수필, 미래문학인가' 주제로 연 학술세미나에서 나온 이야기다. 이날 유성호 한양대 국문과 교수와 신 발행인이 각각 수필이 지닌 가능성과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를 발표했다.
두 발표자는 수필이 앞으로도 독자와 만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개인 경험과 감상을 기록하는 데 머물지 않고 타자와 사회, 시대 현실로 시선을 넓혀야 한다고 봤다. 수필을 읽고 평가할 비평과 이론을 쌓는 일도 공통 과제로 제시했다.
유성호 교수는 수필이 진솔한 고백으로 자기를 확인하는 글인 동시에 특정한 주제와 현상을 놓고 독자에게 말을 거는 장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상에서 얻은 감동과 깨달음을 쉬운 문장으로 풀어내지만, 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는 글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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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교수는 "수필에는 인생에 대한 예리한 비평적 감각과 적정한 해석 과정, 무엇보다 밑줄을 긋고 싶을 정도로 문장의 매혹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수필이 개인 경험을 다루더라도 그 안에는 삶을 해석하는 시선과 문장에 대한 훈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수필은 시나 소설처럼 허구를 중심으로 한 창작은 아니지만 자연과 인생을 살피고 존재 의미를 밝히며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최근에는 수필을 쓰는 사람이 늘고 전문 매체와 신인 등용문도 활성화됐다. 반면 문학계에서는 여전히 시와 소설보다 주변부 장르로 다뤄지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계속해 유 교수는 창작이 활발해진 것에 견줘 수필을 전문적으로 해석하고 평가하는 비평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수필이 문학계에서 제자리를 찾으려면 비평 문화를 활성화하고 감성과 지성을 결합한 '비평적 에세이'로 영역을 넓혀야 한다고 제안했다. 개인 경험과 사물에 대한 감성적 반응에서 나아가 사회 현상을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글쓰기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경남수필가협회가 29일 마산 3.15아트홀 국제회의장에서 '수필, 미래문학인가'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참석자들이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경남수필가협회
신 발행인은 수필의 미래를 다른 장르와 우열을 가리는 방식으로 논의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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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나 소설보다 수필이 미래 사회에 더 적합하다는 주장은 객관적 전망이라기보다 수필을 향한 기대에 가깝다고 봤다. 중요한 것은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 아니라 오늘날 수필이 안고 있는 문제를 진단하고 스스로 바꾸는 일이라고 밝혔다.
신 발행인이 먼저 짚은 문제는 자아 중심주의다. 한국 근대수필은 개인 경험을 기록하고 자기 삶을 성찰하는 글쓰기로 성장했다. 그러나 작가 시선이 자기 내부에만 머물면서 타자와 사회 현실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아왔다.
그는 "미래 수필이 장르적 확장과 심화를 이루려면 자기 내부로만 향하던 시선을 타자, 사회, 시대 현실로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 위기와 인공지능, 양극화, 전쟁과 폭력 같은 현실을 다루고, 개인 경험이 어떤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됐는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와 소통하지 못하는 모호한 표현과 과장된 수사도 문제로 꼽았다. 난해한 관념을 문학적 깊이로 여기거나 작가 감정을 일방적으로 드러내는 글은 고립된 독백에 그칠 수 있다고 봤다. 개인 체험을 독자가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의미로 넓히려면 논리적 사유와 구체적인 사건, 타자와 맺는 관계를 글 안에 담아야 한다고 했다.
수필 이론과 비평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신 발행인은 수필이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나 '무형식 문학', '신변잡기'로 인식돼 온 데에는 이를 바로잡을 이론과 비평이 부족했던 탓도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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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줄거리와 주제를 정리하는 데 그치는 비평에서 벗어나 작품 구조와 문체, 미학적 성취와 한계를 따져야 한다고 밝혔다.
인공지능은 수필의 앞날을 논의할 때 피할 수 없는 문제로 다뤄졌다. 인공지능은 주제만 입력하면 감정 흐름과 교훈적 결말을 갖춘 수필 형태 글을 빠르게 만들어 낸다. 상투적인 감상과 예상 가능한 결론에 기대는 작품은 인공지능이 만든 평균적인 문장과 구별되기 어렵다.
신 발행인은 인공지능을 거부하거나 창작을 맡기는 태도 모두 해답이 될 수 없다고 봤다. 인공지능은 글의 구성과 반복, 논리적 비약, 상투적 표현을 。검하고 자료 정리와 개요 작성, 문단 배열을 돕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다만 경험을 해석하고 결과를 선택하며 글에 책임지는 일은 작가에게 남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필은 자신을 버려야 수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수필을 없애자는 뜻이 아니라 자아 중심 서정과 사적 감정을 문학성으로 여겨온 관습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문이다. 수필과 에세이, 산문, 기록, 증언, 비평적 글쓰기 사이에 세운 경계도 다시 살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수필가와 시인 등 문인 2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세미나는 백남오 문학평론가가 좌장을 맡았으며 윤은주·이선애 수필가가 질의에 참여했다.
경남수필가협회가 29일 마산 3.15아트홀 국제회의장에서 '수필, 미래문학인가'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경남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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