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도서관 독서문화행사 운영 꾸러미' 지원 사업을 진행하는 대구 2·28기념학생도서관 전경. 사진=대구 2·28기념학생도서관
학교에서 독서행사 하나를 준비하는 일은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든다.
책을 고르고 활동을 구상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학생 수에 맞춰 자료를 만들고 필요한 물품을 챙겨야 한다. 학년별 수준을 고려해 활동 방법을 조정하고, 실제 수업이나 행사에서 어떻게 진행할지도 미리 살펴야 한다.
평소 수업과 행정업무를 함께 맡고 있는 교사에게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선뜻 시작하기 어려운 이유다.
대구 2·28기념학생도서관이 2학기 개학을 앞두고 운영하는 '학교도서관 독서문화행사 운영 꾸러미' 지원 사업은 이런 학교 현장의 사정을 비교적 세심하게 반영하고 있다.
도서관은 대구 지역 초·중·고·특수·각종학교 가운데 신청한 219개교에 5종, 모두 1,029개의 독서문화행사 꾸러미를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지원한다. 상반기에도 323개 학교가 이 사업에 참여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단순히 독서활동용 물품을 보내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이다.
책과 아이디어만이 아니라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준비'까지
이번 꾸러미에는 '독서젠가', '책말잇기', '입체북 만들기', '생각 지도', '독서룰렛' 등이 담겼다.
독서젠가와 책말잇기는 친구들과 책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구성됐고, 입체북과 생각 지도는 읽은 내용을 다시 떠올리고 표현하는 활동이다. 독서룰렛은 평소 손이 잘 가지 않던 분야의 책까지 자연스럽게 만나도록 돕는다.
이름만 보면 학교에서 한 번쯤 접해본 독후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바로 시작할 수 있게 준비돼 있는가'가 중요할 때가 많다.
이번 사업에서는 공공도서관의 현직 사서들이 활동을 직접 기획하고, 학교에서 곧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활동 지도안까지 함께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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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사가 프로그램의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 만들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책이나 교구를 보내주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이들과 실제로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상태까지 준비해 학교에 건네는 방식이다.
좋은 독서 프로그램이 교실에 들어가기까지
학교 독서교육에는 이미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한 학기 한 권 읽기, 독서토론, 북큐레이션, 서평 쓰기, 작가와의 만남 등 좋은 사례도 적지 않다.
하지만 좋은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모든 학교에서 쉽게 운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가 준비할 것인지, 어느 시간에 진행할 것인지, 필요한 자료와 물품은 어디서 마련할 것인지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려면 학년과 학급 분위기에 맞게 프로그램도 손봐야 한다.
학교마다 사서교사나 독서교육 담당 인력의 여건이 다른 만큼 같은 프로그램이라도 실제 운영 모습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 。에서 대구의 독서꾸러미는 프로그램 자체보다 학교가 독서교육을 시작할 때 필요한 첫 준비를 함께 나눠 맡았다는 。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공공도서관이 가진 사서의 전문성을 활용해 기본적인 프로그램과 자료를 마련하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수준과 상황에 맞게 활용한다. 학교가 모든 준비를 처음부터 떠안는 대신 도서관과 역할을 나눈 것이다.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자료'의 힘
2·28기념학생도서관의 학교 지원은 이번 꾸러미에만 그치지 않는다.
도서관은 2019년부터 학교 독서수업에 활용할 수 있는 '2·28 독서활동지'를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올해 8월 기준 747종까지 늘었고, 누적 다운로드 횟수도 3만2천여 회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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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급에서 같은 책을 함께 읽을 수 있도록 동일 도서를 묶어 대여하는 '2·28책꾸러미'와도 연계해 사용할 수 있다.
특히 활동지는 정해진 방식대로 따라야 하는 완성형 수업안보다는 교사가 필요에 따라 수정할 수 있도록 제공된다. 학급 수준이나 수업 주제에 맞게 질문을 더하거나 활동 내용을 바꿀 수 있다.
이런 방식은 학교 현장의 필요와도 잘 맞는다.
교사에게 늘 새로운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미 어느 정도 준비돼 있으면서도 우리 반 아이들에게 맞게 조금씩 손볼 수 있는 자료가 더 유용할 때도 많다.
준비에 쓰는 시간을 덜어낼 수 있다면 그만큼 아이들의 반응을 살피고, 책을 둘러싼 대화를 이어가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
독서의 문턱을 낮추는 작은 활동들
이번 꾸러미에는 보드게임이나 만들기처럼 놀이의 성격을 가진 활동도 여럿 포함돼 있다.
독서교육을 생각하면 조용히 책을 읽고 감상문을 쓰는 모습을 먼저 떠올리기 쉽지만, 모든 아이가 같은 방식으로 책과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다.
친구와 책 제목을 이어 말해보고, 젠가 블록을 움직이며 질문에 답하고, 마음에 남은 장면을 입체북으로 만들어보는 활동이 어떤 아이에게는 책과 친해지는 시작이 될 수 있다.
물론 활동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재미있게 놀았지만 어떤 책을 읽었는지는 남지 않는다면 아쉬움이 생긴다.
그래서 활동 뒤의 연결이 중요하다.
친구가 소개한 책 가운데 읽어보고 싶은 책을 골라보거나, 만들기를 하면서 책의 특정 장면을 다시 펼쳐보게 하고, 게임에서 나온 질문을 책 이야기로 이어가면 놀이가 자연스럽게 독서로 돌아간다.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게 되는 길은 한 가지가 아니다. 때로는 가벼운 활동 하나가 책을 펼치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한다.
공공도서관의 전문성이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방식
이번 사례는 학교와 공공도서관이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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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도서관에는 오랫동안 책을 고르고 연결하며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해 온 사서의 경험이 있다. 학교에는 매일 학생들과 생활하며 아이들의 수준과 관심을 가장 가까이에서 살피는 교사가 있다.
두 전문성이 만났을 때 학교 독서교육의 폭도 넓어질 수 있다.
도서관이 기본적인 프로그램과 자료를 준비하고, 학교가 이를 학생들에게 맞게 조정해 사용하는 방식이라면 독서교육 담당자의 경험이나 학교 여건에 따라 활동의 기회가 크게 달라지는 문제도 조금은 줄일 수 있다.
특히 사서교사가 없거나 독서 프로그램을 따로 준비할 여력이 부족한 학교에서는 이런 지원이 더욱 반갑다.
대구 2·28기념학생도서관의 하반기 꾸러미는 전체 465개 학교 가운데 신청한 219개교로 향한다. 상반기에도 323개교가 참여했다. 학교 현장에서 '준비된 독서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가 적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숫자다.
독서교육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결국 '현장에서 쓸 수 있느냐'다
독서교육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좋은 수업 사례나 새로운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기 쉽다.
아이들이 깊이 토론하고, 한 권의 책에서 질문을 만들어내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장면은 분명 반갑다.
하지만 그런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 준비가 있다.
함께 읽을 책이 있어야 하고, 아이들과 나눌 질문이 필요하다. 처음 참여하는 아이도 어렵지 않게 들어올 수 있는 활동이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이를 준비할 시간과 사람이 필요하다.
대구의 독서꾸러미는 특별히 화려한 교육법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대신 학교 독서교육이 실제로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현실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교사에게 더 많은 열정과 준비를 요구하기보다, 아이들과 책을 만나는 데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도서관이 준비의 일부를 맡아주는 것.
좋은 독서교육은 새로운 아이디어에서 시작되기도 하지만, 그 아이디어가 실제 교실에서 무리 없이 실행될 수 있도록 돕는 준비에서 완성되기도 한다.
력이 부족한 학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