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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재산권법 권위자 정상조 서울대 명예교수
문소영 논설위원
미국 테크 기업들이 AI 학습을 위해 한국 책까지 대량 구매하자 국내 출판계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달 본지 단독보도에 따르면 생성형 AI 클로드 개발사 앤트로픽이 한국 신간 7년 치에 해당하는 41만 권을 사들였고, AI 기업을 배후에 둔 것으로 추정되는 10개의 해외 업체가 교보문고에 10만 종을 한 권씩 구매하겠다고 제안했다. 여러 중고서。에도 문의가 이어졌다. 출판계는 저작권 침해를 우려하며 대책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 마땅한 대응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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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학습 길 튼 미국의 공정이용
한국은 판례 없어 적용 어려워
저작권 분쟁 관련 새 법 만들고
소버린 AI용 데이터 공개해야
」
지식재산권법 권위자인 정상조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국내 AI 기업이나 도서관보다 외국 AI 기업이 먼저 국내 도서를 대량 매집했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생각된다”고 했다. 이번 사태를 구한말 열강들 앞에 무력했던 조선에 비유하며 “국내 AI의 학습 데이터 확보와 그에 필요한 정부 데이터 개방이 시급하다”고 했다. “구텐베르크 인쇄술로 창작 생태계가 송두리째 바뀌면서 저작권법이라는 새로운 제도가 생겼는데, 지금은 그보다 더 큰 문명사적 전환기이므로 기존 저작권에 대한 통념과 사회적 합의, 법 제도 자체가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지난해 정년퇴임 후 설립한 서초동 로앤테크연구소에서 그를 지난 2일 만났다.
Q : 책을 대량 구입한 다음 스캔해 AI를 학습시키는 것은 저작권 침해가 아닌가.
A : “앤트로픽과 메타(페이스북·인스타그램 모회사) 사건에 관한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지방법원의 판결이 유력한 참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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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부는 적법하게 구입한 책을 스캔해 학습시키는 것은 공정이용(Fair Use·저작권자의 허락 없이도 일정 조건에서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저작권이 살아 있는 책도 그렇다. 해적판 자료는 다르다. 결국 앤트로픽은 불법 복제물을 내려받아 서버에 저장한 행위에 대해 합의금을 지급했다. 메타 사건의 판사는 해적판 자료라도 P2P 방식으로 재공유하지 않고 학습에 이용한 것이라면 학습 자체는 공정이용이라고 봤다.”
원작자 손해 입증 어려워
Q : 책 한 권을 사면 학습할 권리도 얻는 셈인가. 한국 법원도 같은 결론을 내릴까.
A : “미국은 기계를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행위를 공정이용으로 비교적 관대하게 인정한다. 대표적인 것이 구글 북스다. 구글은 대학 도서관들과 협약해 수천만 권을 스캔하고, 저작권이 살아 있는 책은 검색어가 포함된 일부 문장인 ‘스니핏(snippet)’만 보여줬다. 작가들이 소송을 냈지만 항소법원은 공정이용이라고 판단했다. 색인이라는 새 가치를 창출하고 구매 링크로 책 구매를 촉진한다는 .을 중시했다. 최근 AI 관련 판결도 그 연장선이다. 한국에도 공정이용 조항이 있지만 관련 판례가 거의 없어 법원이 어떻게 판단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Q : AI가 시장을 잠식해 원작자가 손해를 볼 수 있는데 공정이용을 인정하는 것이 정당한가.
A : “가장 어려운 대목이 손해 입증이다. AI 결과물이 쏟아져 내 작품이 밀려날 것이라는 주장은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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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법원이 ‘실제로 책이 덜 팔렸다는 증거를 내라’고 하면 제시하기 어렵다. 보상한다 하더라도 얼마를 받아야 할지 계산하기 어렵다. AI로 시장이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AI로 인해 생산의 한계비용은 낮아지고 물건과 서비스는 넘쳐나는데,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고 창작자는 작품을 팔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사람들은 가난해지는 것이다. 저작권법은 물론 법질서 전반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외국 기업에 판다고 매국은 아냐
Q : 교보문고는 AI 학습 가능성을 이유로 책 대량 판매를 거절했다. 외국 기업이 우리 책을 가져가는 걸 막아야 하지 않나.
A : “교보문고는 여러 측면을 고려했을 것이다. 지금 상황은 거대한 열강 앞에 무력했던 19세기 말 조선 비슷하다. 우리가 우리 책을 구입해 국내 AI를 학습시켜야 했는데 외국 기업이 선。하는 것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 우리가 못한다면 차라리 미국 기업이라도 우리 자산을 학습시켜 활용하도록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외국 기업에 파는 게 매국은 아니다. 미국 AI가 한글 자료를 학습해 똑똑해지면 한국어를 활용한 업무에도 도움이 된다.”
Q : 정부가 강조하는 소버린 AI, 즉 AI 주권의 관.에서 보면 어떤가.
A : “우리가 만든 저작물과 데이터를 우리가 확보하고 이용하는 게 소버린 AI 아닌가. 그런데 정부는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에만 관심을 둔다. 반도체 공장을 호남에 짓는다고 소버린 AI가 이루어지나. (한국 AI 기업이 학습할 수 있도록) 정부 데이터 공개부터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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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부처의 데이터 공개 저항이 상상을 초월한다. 그 저항을 깨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사법부 판결문도 중요한 데이터다. 미국은 원고·피고 이름을 포함해 판결문 전체를 일반에 공개하는데 한국은 극히 일부만 공개하고, 이름도 갑·을·병으로 바꿔 검색하기 어렵다. 삼성과 애플의 ‘세기의 특허소송’ 판결조차 공개는 돼 있지만 ‘삼성’ ‘애플’로 검색이 안 된다. 코미디 수준이다. 피해자 보호가 필요한 형사사건을 제외하면 국민의 알 권리, 분석할 권리가 더 중요하다.”
Q : 언론사와 출판사가 AI 기업과 학습 보상에 합의할 수 있나. 정부의 현재 입장은 ‘선(先)사용·후(後)보상’ 방안인데.
A : “언론과의 합의 사례는 꽤 있다. 유료 기사는 방화벽 안쪽에 있고 AI 기업도 정리된 데이터를 제공받는 게 효율적이어서다. 오픈AI는 많은 언론사와 유상 또는 무상으로 합의했다. 윈윈할 조건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 다만 저작물마다 AI 학습에 기여한 정도와 보상액을 합리적으로 계산할 근거가 부족하다. ‘선사용·후보상’은 행정부의 절충안이다. AI 기업에 면책권을 주거나 저작권자에 새로운 권리를 준 것도 아니다. ‘알아서 하라’는 셈인데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저작권자에게 선택권 주는 유럽 모델
Q : 그렇다면 어떤 입법이 필요한가.
A : “유럽식 TDM(텍스트·데이터 마이닝) 예외 규정을 도입해야 한다. AI 학습을 위한 텍스트·데이터 분석을 허용하되 저작권자가 ‘내 저작물은 학습하지 말라’고 거절할 수 있는 옵트아웃 선택권을 두는 방식이다. 나는 AI 기업이 내 책을 마음대로 이용해도 좋고 로열티에도 관심이 없다. 널리 이용되는 게 책을 쓴 이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키고 싶은 사람은 지킬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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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공정이용 조항은 있지만 미국처럼 판례가 쌓이지 않아 기업도 저작권자도 판결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예측 가능성을 주기 위해서라도 법 개정이 필요하다.”
캐나다의 신예 베스트셀러 작가 텔리송 오렐리앵. 그의 소설 『그게 아니면 죽음이었다』를 낸 캐나다 출판사는 최근 이 소설 집필에 AI 사용이 확인됐다며 작가와 결별했다. 이 소설은 프랑스 공쿠르상 후보에 올랐었으나 같은 이유로 제외됐다. [AFP·로이터=연합뉴스]
Q : 최근 캐나다 출판사가 소설 집필에 AI를 사용했다며 신예 베스트셀러 작가와 계약을 해지한 일이 있었다. AI 활용을 어디까지 용인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은 아직 모호한데.
A : “계약에 만약 AI 금지 조항이 있다 하더라도 어디서부터 문제 삼아야 할지에 대한 기준은 추상적이다. 교정이나 자료 조사에 AI를 이용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나. 작가가 AI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경우 한국에서는 출판사가 입증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탐지 프로그램 결과에 대해 작가는 AI 활용 이전에 작성해 둔 파일이 있다면 그 파일을 근거로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무엇보다 기준 자체가 문제다. AI가 만든 어구를 단 한 차례라도 이용해서는 안 되는지 의문이다.”
Q : AI 생성물의 저작권은 어떤가? 인간이 프롬프트만 입력해 AI가 만든 그림은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하는데.
A :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 스티븐 탈러는 자신이 만든 AI ‘크리에이티비티 머신’으로 그림을 제작해 저작권 등록을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지난해 연방항소법원에서도 패소했다. 세계적으로 인간의 창작물만 보호한다는 원칙은 분명하다. 프롬프트에 따라 AI가 만든 표현은 인간의 산물이 아니라는 원칙이다. 나는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사람이 프롬프트만 입력했다 하더라도 그림이나 글의 세부를 구체적으로 상세히 지시했다면 이미 인간이 창작적인 행위를 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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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서 창의적 표현을 상상해 정교하게 프롬프트를 짰다면 산출물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래퍼 영 린과 무용수들이 ‘스톰 II’ 뮤직비디오의 유명한 군무를 지난 9월 27일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 공연에서 라이브로 선보이고 있다. 이 군무가 소셜미디어에서 AI로 등장인물만 바꾸어 수없이 복제되며 밈이 되자, 뮤비 감독은 인간의 진짜 퍼포먼스를 이 공연에서 보여주고자 했다. [AP=연합뉴스]
Q : 프랑스와 스웨덴 아티스트들이 합작한 뮤직비디오 ‘스톰 II’의 군무 부분을 AI로 등장인물만 바꾼 버전에 최근 크게 유행했다. 뮤비 감독은 원작을 시시하게 보이게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활용은 앞으로 계속 생겨날 텐데 법적으로 막을 수 있나.
A : “마음먹으면 막을 수 있다고 본다. 군무가 독특하고 창작성이 있다면 안무 자체가 저작물이다. 댄서가 AI 캐릭터로 바뀌었어도 일련의 율동과 전체적인 표현이 동일하면 저작권 침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금지와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고 본다.”
Q : AI를 활용하는 창작자와 기존 문화산업 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
A : “AI로 인해 창작 생태계는 문명사적 변혁에 처해 있다. 현행법 제도로는 갈등 해결에 역부족이다. 새로운 법질서가 필요하다. AI 사용을 완전히 배격하고 석기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문화산업계는 AI가 빠르게 발전한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활용할 길을 모색해야 한다.”
◆정상조=지식재산권법 전문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LSE)에서 법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법과대학장·법학전문대학원장,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현재 서울대 법전원 명예교수이며 2026년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됐다. 저서로 『인공지능, 법에게 미래를 묻다』 등이 있다.
문소영 논설위원
야 한다.”
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