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가 4주기를 앞두고 있다. 참사 이후 정부는 주최자가 없는 행사까지 재난관리 대상으로 포함하고 다중운집 인파에 대한 안전관리 제도를 정비했다. 그러나 법과 매뉴얼이 강화된 것만으로 인파 사고를 막을 수 있는지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최근 특별사위원회의 법의학적 검토에서 일부 희생자의 사망 원인이 질식이 아닐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초기 구조 대응의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국회에서는 인파 밀집에 따른 행사 중단과 해산 권고 등을 명문화하는 입법이 추진되는 등 재난 예방부터 현장 대응까지 안전관리체계 전반에 대한 .검이 이어지고 있다.
◇ 행사 중심에서 공간 중심으로…바뀐 안전 기준
이태원 참사는 특정한 행사 주최자가 없는 상황에서도 좁은 공간에 인파가 집중되면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당시 핼러윈을 즐기려는 시민들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 몰렸지만 인파의 규모와 이동 흐름을 예측하고 관리할 대응체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참사 이후 정부는 다중운집인파사고를 재난관리 대상에 포함하고,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 대해서도 지방자치단체가 안전관리 조치를 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했다.
위기관리 표준·실무매뉴얼과 현장조치 행동매뉴얼을 마련해 관계기관의 역할과 대응 절차를 구체화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지역축제와 다중운집 행사에 대해서는 이동 동선과 출입구, 대피로, 안전요원 배치 등을 포함한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다만 같은 인원이 모이더라도 넓은 광장과 좁은 골목의 위험도는 다르다. 계단이나 경사로, 지하철 출입구처럼 이동 방향이 겹치는 공간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인파로도 병목현상이 발생할 수 있어 장소별 특성을 고려한 관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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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원인 재검토가 남긴 구조 대응의 교훈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사망 원인을 재검토한 결과도 현장 구조체계의 중요성을 환기한다.
10·29 이태원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지난 7월 21일 법의학적 연구용역 결과를 발표하고 희생자 160명 가운데 15명의 사망 원인을 '불명'으로 판단했다. 질식 외 다른 원인으로 숨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이 사망진단서와 시체검안서, 구급활동일지, 병원 의무기록 등을 분석한 결과로, 압궤증후군과 횡문근융해증, 내부 장기 손상에 따른 복강 내 출혈 등이 가능한 사인으로 제시됐다.
이는 해당 희생자들의 구조 가능성을 단정하는 결과는 아니다. 다만 질식 외 원인으로 사망한 경우 생존 가능한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어질 수 있어 사고 초기 적극적인 구조활동이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김문영 특조위 비상임위원은 당시 "사망 원인이 질식이 아닌 경우 수 시간에서 수일까지 생존할 수 있다"며 적극적인 구조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조위는 당시 부검을 받은 희생자가 3명에 불과해 정확한 사인 규명에 한계가 있었다며 체계적인 검시제도 마련과 행정부검 확대도 제안했다.
유가족협의회는 "지난해 6월 이태원 참사 특조위가 조사개시를 결정하고 진상조사를 진행해 왔지만 1년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날 왜 참사가 발생했고 구조가 실패했는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며 "특조위는 진상규명에 매진하고 반드시 참사의 근본적 원인을 밝히는 조사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제도적 공백 메우기…예방 책임 강화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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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관리의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입법도 추진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의원은 지난 8일 다중운집 사고 등 사회재난의 예방과 관리체계를 별도로 규정하는 '사회재난대책법안'을 대표발의했다.
법안은 인파 밀집으로 안전 확보가 어려울 경우 중앙행정기관장이나 지자체장이 행사 중단 또는 현장 인파의 해산을 권고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지역축제와 행사에 대한 안전관리계획 수립, 민간 주최자의 사전 신고 의무를 규정하고 이를 위반하면 2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도 담았다. 재난 위험이 높은 곳을 '사회재난 관리지역'으로 지정해 위험요인을 정비하는 근거도 마련했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도 지난 6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사회재난대책법 제정 추진 방침을 밝혔다.
다만 법안은 현재 국회에 발의된 단계로, 실제 시행까지는 입법 절차가 남아 있다.
◇ 끝나지 않은 진상규명…지역사회로 이어진 기억
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고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지난 1일 '기억과 애도의 달'을 선포하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유가족 측은 특조위의 조사 개시 이후에도 참사 발생 원인과 구조 실패 경위가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참사 당시 구조활동에 참여한 뒤 정신적 고통을 겪다 숨진 이태원 상인 고(故) 백형준 씨는 지난 6월 160번째 희생자로 인정됐다.
정부와 유가족협의회, 시민대책회의, 서울시는 오는 24일 서울광장에서 시민추모제를 개최한다. 참사 4주기인 29일 오전 10시29분에는 광화문광장에서 정부 관계자와 유가족, 시민 등 1천여명이 참석하는 공식 기억식이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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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도 참사의 교훈을 이어가기 위한 제도화가 추진되고 있다. 전남광주 남구는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12·29 여객기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사회적 참사 희생자 추모 및 기억에 관한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조례안에는 추모공간 운영과 관련 사업 지원 등의 근거가 담겼으며, 남구는 구의회 심의 등을 거쳐 연말 공포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추모를 넘어 실질적인 사고 예방으로 이어지려면 번화가와 전통시장, 축제장, 대중교통 이용시설 등 일상적인 인파 밀집 공간에 대한 관리도 강화돼야 한다.
경찰과 소방, 지자체가 위험정보를 공유하고 인파가 집중되기 전에 보행 흐름을 분산하거나 출입을 통제할 수 있는 협력체계가 중요하다.
문현철 한국재난관리학회 부회장은 안전관리위원회와 재난안전대책본부, 긴급구조통제단을 재난관리체계의 핵심 3축으로 꼽으며 지방자치단체 안전관리위원회의 형식적인 운영을 지적했다.
문 교수는 "재난관리는 유관기관 합동 작전"이라며 기관장과 중간관리자 교체 시에도 대응체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인수인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태원 참사 이후 4년 동안 법과 매뉴얼은 보완됐지만, 이를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시키는 것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참사의 교훈이 또 다른 제도 마련에 그치지 않고 시민들이 오가는 일상 공간의 안전으로 이어져야 하는 이유다. /조태훈·박건우 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강기정 광주시장이 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3주기를 맞아 서울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3주기 기억식'에 참석해 유족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광주시 제공
광주광역시 남구가 지난해 9월 4일 이태원·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과 관내 양우내안애 광장에 설치된 경관조명 제막식을 갖고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식을 가졌다. /남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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