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7월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에서 열린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결승전 하프타임쇼에 출연했다. 2013년 데뷔한 BTS는 7명 원년 멤버 그대로 13년 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빅히트뮤직 제공
70대 이상 노년층은 말할 것도 없고, 40대 이상의 중장년과 만나 음악 관련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김없이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아이돌이라는 요즘 애들은 나왔다가 금방 사라져서 그런지 누가 누군지 전혀 모르겠더라고!” 서너 명인 그룹 구성원들도 헷갈리는 판에 10명이 넘는 그룹이 흔한 지금 가수들의 이름을 꿰기란 사실 어렵다. 막 음원차트 정상에 등극한 이수만의 새 기획·제작 걸그룹 ‘에이투오 라이트’도 멤버가 자그마치 9명이다.
이들 소식을 듣자마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언제 이 멤버들의 이름을 다 외우지?”였다. 음악 관계자로서 요즘 젊은이들과 대화할 때 아이돌의 멤버 이름을 정확히 인지하는 것은 기본 소양에 해당한다. 외국 여행을 다녀온 어른들은 방탄소년단(BTS) 덕에 대우받은 경험 때문에도 BTS란 그룹명을 알지만, 그렇다고 구성원 일곱을 다 대는 사람은 여전히 소수다. 그들은 “젊었던 시절에도 송골매 멤버들 이름을 몰랐는데 지금 나이에 어떻게 BTS 멤버를 다 알겠는가?”라고 하소연한다.
기억력이 떨어져 가는 어른들 입장에서 아이돌 멤버들 이름을 하나하나 맞추는 게 쉽지 않은 것은 이해가 되지만 상기한 그들의 반응에서 잘못된 부분이 있다. ‘나왔다가 금방 사라져서…’라는 대목이다. 중장년 이상에게 거의 고정관념이 되다시피 한 선입관 가운데 하나가 자신들이 젊었을 때의 밴드와 그룹은 오래갔고 요즘 친구들은 ‘단명’이라는 .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반대로 요즘 아이돌이 예상보다 오래 활동한다는 것이다.
방탄소년단부터 얘기하면 5~6년 정도 활동했을 것이라고 응답하는 어른이 많지만 놀랍게도 올해로 그들의 활동 경력은 13년 반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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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필의 ‘바운스’가 한참 히트하고 있던 2013년 6월에 데뷔한 그들은 활동 초기에 화양연화라는 캐치프레이즈와 다르게 무진 고생하며 긴 무명 시절을 겪었다. 뒤늦은 성공 때문인지 10년이 훨씬 넘은 팀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다.
팬덤 아미는 남들이 잘 알지도 않는 그룹에 정을 쏟은 초기 시절을 공유하기에 끈끈한 유대관계를 보이며 나중에 BTS가 대성했을 때 누구보다 감개무량해했다. 1995년생인 한 팬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남들에게 아미라는 사실도 숨기며 남몰래 지지했던 어둠의 시절이 있었기에 그들에 대한 팬심이 남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13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자신은 아직도 BTS의 광팬이라고 했다.
BTS뿐 아니라 2018년 그들과 함께 미국의 빌보드 싱글과 앨범차트에 오르며 ‘K팝 인베이전’ 현상을 일으킨 블랙핑크와 NCT 127과 NCT 드림도 모두 올해로 활동 10주년을 맞았다. 블랙핑크는 그룹도 그룹이지만 근래 세계에서 가장 히트한 곡 가운데 하나인 ‘아파트’를 부른 로제, 최근 호주 밴드 테임 임팔라와 협업한 ‘드라큘라’로 빌보드 싱글차트에 무려 55주간 랭크된 제니가 말해주듯 솔로 활동이 눈부시다.
이들의 합인 블랙핑크가 화려한 각개전투 덕에 존재감이 커진 것은 지민의 ‘라이크 크레이지’와 정국의 ‘세븐’이 빌보드 싱글차트 넘버원에 올라 BTS 그룹의 무게감을 견고하게 유지해준 것과 비슷하다. 그러면서 데뷔 10년 차와 13년 차라는 금자탑을 쌓은 것이다. 그 숫자가 데뷔 30, 40, 50주년이 흔한 이 시대에 뭐가 대단하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 전설적 그룹들의 궤적과 비교해보면 유의미한 요소를 찾을 수 있다.
한국 록의 전설로 평가받는 들국화는 1985년 첫 앨범 발표 뒤 채 2년을 버티지 못하고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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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국화 1집 앨범 커버
‘단명’은 오히려 전설들의 일이었다
실제로 과거의 유명 그룹들은 지속성을 발휘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결코 활동 기간이 길지 않았다. 한국 록의 자존심으로 평가받는 1980년대 록의 전설 들국화는 역사적인 1985년의 첫 앨범 이후 채 2년을 버티지 못했다. 결성한 1983년부터 따져도 멤버들이 함께한 햇수는 5년이 채 안 된다. 1977년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청춘 록의 부활을 견인한 위대한 밴드 산울림도 1980년대 들어 동생들의 입대와 입사로 완전체 활동이 불가능해지면서 산울림 이름의 음반은 계속 발표됐지만 실상 김창완 혼자 작업한 결과물들이었다. 형제들이 함께 움직인 것은 4년이 채 되지 않는다.
‘록의 대부’ 신중현은 1960년대부터 애드포, 조커스, 덩키스, 신중현과 더 맨, 엽전들, 뮤직파워 등 여러 밴드를 결성했지만 대부분 2~3년을 넘기지 못했다. 1974년 ‘미인’이란 국민가요를 낸 엽전들도 이듬해 말 대마초 사건으로 신중현이 구속되면서 밴드는 그걸로 끝이었다. 앨범은 두 장, 활동 기간도 딱 2년에 불과했다. 대마초, 금지 처분, 활동 정지로 이어진 국가에 의한 강제 해산이었다.
송골매의 경우 그룹 IP를 소유한 배철수의 분투로 아홉 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1979년부터 1991년까지 10년 이상 존속하며 장수 그룹에 속한다. 다만 구창모와 의기투합해 대중적 인기의 최고조에 오른 그룹의 최전성기는 1982년부터 1985년까지 3년이다. 동방신기가 ‘풍선’을 리메이크해 재조명된 1980년대의 인기 밴드 다섯손가락도 원년 멤버인 임형순과 이두헌의 음악적 노선 차이로 3년 미만의 짧은 동행 후 해산했다.
역시 1980년대의 인기 밴드 벗님들도 원년 멤버 간 갈등이 폭발하면서 9년 호흡 끝에 둘로 쪼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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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1988년에 벗님들의 타이틀을 내건 서로 다른 두 장의 앨범이 발표되는 슬픈 촌극이 빚어졌다. 한국 포크와 동의어라 할 송창식·윤형주의 트윈폴리오의 경우는 단명 사례 중 끝판왕이라 할 만하다. 둘은 1968년 2월에 공식 데뷔해 정확히 1년 10개월 뒤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갈라섰다. 1970년 발표된, 우리가 사랑한 트윈폴리오의 기념비적 앨범은 실상 ‘고별’ 앨범이다.
‘마의 7년’ 넘어 장기 브랜드로
물론 아이돌 음악계에도 오랫동안 ‘7년 차 징크스’나 ‘마의 7년’이란 부정적 어휘가 퍼져 있었다. 데뷔 7년 되던 해에 멤버 탈퇴와 소속사 이전, 해체 등의 사건이 잇따른 것을 가리키는 비유였다. 이를 계기로 2009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전속계약 기간을 7년으로 권고하는 표준전속계약서를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거대 문화자본의 확립, 퍼포먼스의 흡인력, 프로듀싱 능력의 일취월장에 힘입은 K팝의 글로벌 성공과 함께 기획과 제작이 시스템화하면서 소속사와 가수 간 공식 계약은 필수적이고 보편적인 관행이 됐다.
이 때문에도 흥행에 실패하지 않는 한 아이돌 단기 활동의 흐름은 약해지고 앞서 언급했듯 상당수 아이돌이 활동 10년을 넘기는 장기 브랜드 시대로 돌입하게 된 것이다. 계약 환경은 분명 아이돌 롱런의 으뜸 요인일 테지만 이와 관련해 멤버 간의 우정과 동료애라는 인간적인 요소를 놓쳐서는 안 된다. BTS의 일곱 멤버 간의 케미는 이미 소문나 있으며 구성원 넷이 막역한 친구 사이여서 블랙핑크는 애초 리더를 두지 않았다.
K팝은 한편으로는 멤버십의 승리라 해도 무방하다. 배제와 갈등이 난무하던 과거의 그룹들과 확연히 다른 대목이다.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함께 겪으며 축적한 구성원들의 멤버십이야말로 오늘날 K팝의 토대다. 또한 10년 이상이 흘렀어도 대부분 원년 멤버 그대로다. 외국 청소년들의 한국 아이돌에 대한 호응에는 이러한 멤버십, 열정, 착한 노랫말 등 교육적 요소가 한몫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K팝에서 멤버십이 품는 가치를 재조명해야 할 때다.
임진모 음악평론가
키는 비유였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