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밀라노 갤러리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안에 지난달 새롭게 선보인 프라다 갤러리아. 프라다 제공
지난달 25일 이탈리아 밀라노의 두오모 성당 옆 갤러리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높이 솟은 유리 돔 아래로 햇빛이 쏟아지고, 화려한 모자이크 바닥 위로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19세기에 지어진 이 쇼핑 아케이드는 오늘날까지 밀라노 시민들의 자부심이자 세계적 명소다.
이곳은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프라다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1913년 마리오 프라다가 동생 마르티노 프라다와 함께 여행 가방과 가죽제품을 판매하는 ‘프라텔리 프라다’를 열었다. 지금은 창업자의 손녀 미우치아 프라다가 브랜드를 이끄는 가운데 프라다는 지난달 23일, 113년 전 첫 매장 터에 ‘프라다 갤러리아(Prada Galleria)’를 새롭게 선보였다.
프라다 갤러리아 . 프라다 제공
밀라노 패션위크 기간에 베일을 벗은 프라다 갤러리아는 쇼핑과 예술, 역사, 미식을 결합한 8개 층의 복합문화공간이다. 창업의 정신을 간직한 장소에 프라다가 추구해 온 다양한 문화적 실험을 집약한 것이 특징이다. 패션과 여행용품, 홈 컬렉션, 뷰티 제품 사이로 역사적인 벽화와 아카이브 자료가 어우러진다.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을 넘어 브랜드의 역사와 철학을 경험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가장 흥미로운 공간은 지하의 통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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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 아케이드의 중앙 팔각형 공간을 사이에 둔 여성 매장과 남성 매장을 지하로 연결하고 ‘비밀의 통로’라고 이름 지었다. 통로 양옆의 조명 진열장에는 프라다가 오랫동안 시도해 온 다양한 협업과 실험의 결과물들이 전시돼 있었다.
눈이 번쩍 뜨인 건 프라다와 LG전자가 손잡고 2007년 선보인 프라다폰이었다. 전자제품에 명품 브랜드의 디자인 감각을 결합해 당시 화제를 모았다. LG전자는 2021년 휴대전화 사업을 접었지만 프라다폰은 지금도 프라다의 혁신을 보여주는 유산으로 남아 있었다. 반가우면서도 묘한 아쉬움이 들었다.
프라다 갤러리아 . 프라다 제공
2층의 ‘프라다스피어(Pradasphere)’는 프라다 최초의 상설 역사 전시 공간이다. 1913년 창립부터 현재까지 패션과 예술, 건축, 영화, 스포츠를 넘나들며 쌓아 온 창의적 여정을 소개한다. 상당수 아카이브 자료가 처음 공개되며 사전 등록을 통해 관람할 수 있다. 미국 우주기업 액시엄스페이스와 협업해 개발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아르테미스 3호’ 달 탐사 임무용 우주복도 눈길을 끌었다. 명품 가방과 의류를 만들며 축적한 소재와 제작 기술을 우주복 개발에 활용했다.
프라다 갤러리아에는 개인 쇼핑을 위한 살롱과 프라이빗 행사 공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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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아파트를 상상해 꾸민 공간에는 독일 사진작가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작품과 이탈리아 앤티크 가구가 어우러졌다. 맨 위층의 ‘오세르바토리오 폰다지오네 프라다’에서는 현대미술을 감상하고, 200년 역사의 ‘마르케시 1824’에서는 이탈리아의 카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프라다 갤러리아. 프라다 제공
프라다 갤러리아에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대학 도서관을 연상시키는 독서실이었다. 현대미술과 건축, 사진 등에 관한 책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호강이 됐다. 패션과 예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연구와 학습을 염두에 두고 구상한 공간이라고 한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성공의 비결을 화려한 감각이나 타고난 재능보다 공부에서 찾는 디자이너다. 2020년 한 어린이가 패션계에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그는 “공부하세요. 공부하세요. 공부하세요(Study! Study! Study!)”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프라다 갤러리아의 독서실은 이러한 철학을 공간으로 구현한 듯했다. 제품을 소비하는 공간 한가운데 지식을 탐구하는 장소를 마련한 것이다.
끊임없는 연구와 실험의 정신은 지난달 22일 밀라노에서 열린 프라다의 2027 봄여름 여성복 패션쇼에서도 확인됐다. 미우치아 프라다와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라프 시몬스가 선택한 주제는 다름 아닌 ‘스커트’였다.
“내게 스커트는 티셔츠와 같은 존재다.” 프라다를 이끄는 미우치아 프라다가 2006년 미국의 한 인터뷰 프로그램에서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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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커트는 스웨터나 셔츠와 손쉽게 조합할 수 있고, 디자인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에게 스커트는 기본 중의 기본이자, 쉬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담을 수 있는 옷이었다. 프라다는 2004년 도쿄에서 스커트를 주제로 한 전시 ‘웨이스트 다운(Waist Down)’을 열었고, 2009년에는 서울 경희궁에 설치된 이동식 건축물 ‘프라다 트랜스포머’에서도 이를 선보였다.
지난달 밀라노패션위크 프라다 쇼. 프라다 제공
이번 쇼에서는 런웨이에 등장한 63개 착장 모두에 스커트가 있었다. 주름을 잡거나 몸을 감싸고, 크리스털을 장식하거나 꽃무늬를 프린트한 스커트들이 저마다 다른 모습을 드러냈다. 프라다는 오랫동안 여성성을 상징해 온 익숙한 옷을 소재와 형태, 착용 방식의 변화를 통해 새롭게 해석했다.
지난달 밀라노 패션위크 프라다 쇼. 프라다 제공
창업이 시작된 장소에서 미래를 찾는 프라다 갤러리아와 기본 패션 아이템인 스커트에서 혁신을 찾는 패션쇼는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오래된 것을 어떻게 새롭게 바라볼 것인가.
프라다 갤러리아에 아카이브 제품으로 전시돼 있던 꽃봉오리 모양의 벨트를 보면서 20년 전 세일 때 구입한 벨트가 떠올랐다. 귀국해 옷장을 뒤졌더니 그 벨트가 여전히 있었다. 오래된 물건에 새로운 쓰임을 부여하는 것도 창의성의 한 방식일 것이다. 올 가을에는 옷장 속 그 벨트를 꺼내 다양한 감각으로 스커트를 즐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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