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숱한 영부인이 있었지만, 1974년 8월 15일에 불의의 총격으로 별세한 육영수 여사만큼 사람들의 기억에 짙게 남은 인물은 드뭅니다. 그때 유치원생이었던 나는 마치 세상 사람 모두가 어머니를 잃은 듯한 슬픔에 빠진 것 같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틀린 기억이 아니었다는 것을, 얼마 전 국사편찬위원회가 공개한 당시 주한 미 대사관의 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김영재·Midjourney
“육 여사의 서거에 대해 국민적인 슬픔과 충격이 존재한다. 장례식에 대규모 인파가 몰렸고 이는 전적으로 연출된 것이 아니라는 。에서 알 수 있듯이, 육 여사는 남편에게 반대했던 사람들에게조차 널리 존경받은, 품위 있고 따뜻하며 동정심 많은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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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유튜브 '유석재의 악인전'
그 뒤로 많은 영부인이 있었지만, 어떤 이는 TV에 나올 때마다 급하게 채널을 돌려야 할 대상이거나 개그의 소재가 됐고, 어떤 이는 별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이번 ‘악인전’은 바로 1974년 8월 15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일어났던 그 사건의 저격범을 다룹니다.
/조선일보 유튜브 '유석재의 악인전'
문세광은 이념과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지도 않은 채 시류에 휩쓸려 마치 ‘진보’의 길을 걷거나 ‘신념’이 투철한 것처럼 자신과 남을 속여가며 ‘혁명’을 패션처럼 소비하는 얼치기(들)이 얼마나 선을 넘는 엄청난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얼마나 역사에 커다란 해악을 남길 수 있는지 보여주는 표본과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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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유튜브 '유석재의 악인전'
육 여사 서거 이후 유신 정부는 전보다 훨씬 거칠어졌고, 중정과 경호실의 수장으로 몹시 위험한 인물들이 들어왔으며, 끝내 5년 뒤 박정희 정부는 최후를 맞게 됩니다. 문세광의 잘못만은 아니겠지만, 한 번 일본발(發)로 만들어진 음모론이 몇 번의 우회를 거쳐 얼마나 조악한 형태로 재생될 수 있는지 보여줬다는 。에서 더욱 소름 끼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선일보 유튜브 '유석재의 악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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