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파보 예르비. 빈체로 제공. ⓒTeatroallaScala
"에스토니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는 중요한 임무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 중 한 명인 파보 예르비(63)는 고국 에스토니아를 세계에 알리는 데 열심이다. 그는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자 도이치 캄머필하모닉의 예술감독이다. 2028/29 시즌부터는 런던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 겸 예술고문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지만 자신이 창단한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EFO)와의 무대는 예르비에게 각별하다. 18일 아트센터인천 콘서트홀, 2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EFO와 내한 연주회를 갖는 그를 최근 화상으로 만났다.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와의 공연을 위해 파리에 머물던 중 연락이 닿은 그는 "다소 작은 문화권 출신으로서 국제적이 된 모든 사람은 어떤 면에서 그 문화의 대사"라며 "나는 에스토니아 음악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 국가 전체를 소개한다"고 말했다.
EFO는 예르비가 2011년 아버지인 거장 지휘자 네메 예르비(89)와 함께 에스토니아의 휴양 도시 페르누에서 페르누 뮤직 페스티벌을 시작하며 창단한 악단이다. 축제 상주 악단인 EFO가 한국을 찾는 것은 2022년 첫 내한 이후 4년 만이다. 악단 이름에 지역명인 페르누 대신 에스토니아를 넣은 것도 음악가들이 어디에서 왔고 누구를 대표하는지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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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을 직접 선발한 예르비는 EFO의 특별함으로 뛰어난 음악성뿐 아니라 음악가들 사이의 유대와 소통 능력을 꼽았다. 그는 "훌륭한 오케스트라는 음표를 정확히 연주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며 "궁극적으로 음악에서 중요한 것은 완벽하게 연주하는 능력만이 아니라 인간적인 소통"이라고 밝혔다.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빈체로 제공. ⓒTaavi Kull
발트 3국 중 가장 북쪽에 있는 에스토니아의 인구는 약 130만 명. 규모는 작지만 세계 음악계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 온 나라다. 그는 "큰 나라 중에도 오늘날 활동하는 흥미로운 작곡가를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경우가 있지만, 에스토니아에는 아르보 패르트를 비롯해 뛰어난 작곡가가 많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문화는 오락을 넘어 국가의 존립을 지탱하는 토대다. 그는 소련 시절 에스토니아어와 고유문화를 약화시키려 했던 '러시아화' 정책을 언급하며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음악과 언어, 문학 등 문화의 기둥이자 기본은 지켜내야 한다"며 "문화와 언어, 음악이나 기록된 역사를 잃는 순간 우리라는 존재도 사라진다"고 말했다.
음악과 권력에 대한 시각도 이와 맞닿아 있다. 예르비는 "음악은 세상을 바꾸기에는 힘이 약한 소프트파워로 여겨지곤 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강력하다"며 "비슷한 생각을 가진 많은 사람을 연결하는 힘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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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소련 .령하의 에스토니아를 떠나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며 "역사상 믿기 어려울 만큼 비극적인 시기"라고 말했다. 이어 "세상이 혼란에 빠져 있기에 예술이 이 시대를 조금이나마 견딜 만하게 하고 사람들 안의 선함과 인간성을 보여줄 것이라는 희망을 준다"고 덧붙였다.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빈체로 제공. ⓒMarco Borggreve
EFO는 이번 공연 1부에서 에스토니아 작곡가 에르키스벤 튀르의 '패션-일루전'을 한국 초연한다. 학생 시절 함께 록밴드에서 활동한 튀르는 예르비에게 각별한 친구다. 그는 "30년 동안 튀르의 음악을 연주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클라라 주미 강과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다. 2부는 날짜별로 다르다. 18일에는 브람스 교향곡 1번, 20일에는 시벨리우스 교향곡 5번을 연주한다.
한국 관객을 '최고'라고 치켜세운 예르비는 "그들의 열정이 무대 위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준다"고 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 조성진을 비롯한 한국 젊은 연주자들과 여러 차례 함께 연주해 온 그는 이들을 '클래식 음악의 미래'라고 평가하면서 이런 연주자들이 잇따라 배출되는 배경을 한국 관객의 클래식 음악 사랑과 존중에서 찾았다.
페르누에 페스티벌을 만든 이유에 대해 예르비는 "페르누는 세상이 빠르게 잃어 가는 친밀함과 평온함이 남아 있는 공간"이라며 "사람들이 이곳에서 에스토니아와 사랑에 빠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에스토니아를 몰랐던 사람도 이번 공연을 보고 나면 그곳이 궁금해질지 모른다. 예르비의 음악은 고국 에스토니아로 향하는 초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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