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시끄러운 고독 I 보후밀 흐라발 I 문학동네.2016
130페이지 남짓한 얇은 소설이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꾸만 멈춰 생각하게 되는 문장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책을 사랑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면서,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인간의 존재 가치와 독서의 의미를 되묻게 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한탸는 35년 동안 지하 작업장에서 폐지를 압축해 온 노동자다. 그가 매일 마주하는 것은 버려진 종이와 책들이다. 누군가에게는 더 이상 쓸모없는 폐지에 불과하지만, 한탸에게 책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는 폐지 더미 속에서 수많은 사상가와 철학자, 예술가를 만나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책을 읽고 사유하는 일은 반복되는 노동 속에서도 그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소설의 배경에는 20세기 체코슬로바키아의 격동이 자리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의 폭력, 전후 공산주의 체제의 검열과 통제, 그리고 산업화로 이어지는 시대적 변화가 한탸의 기억과 일상에 스며들어 있다. 그가 사랑했던 여인을 잃은 기억은 역사의 비극이 한 개인의 삶에 남긴 상처를 보여준다. 또한 버려지고 파괴되는 책들은 시대가 무엇을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하고, 무엇을 지워 버리는지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한탸를 위협하는 것은 과거의 상처만이 아니다. 새로운 대형 압축기가 등장하고, 효율성과 생산성을 앞세운 노동 방식이 그의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한다. 35년간 이어 온 노동은 더 이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오랜 시간 익힌 기술과 경험도 새로운 기계 앞에서는 무용한 것이 되어 간다.
바다이야기예시종료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한탸는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 된 것일까. 아니면 사회가 더 이상 그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게 된 것일까.
한탸에게 압축기는 단순한 노동 도구가 아니었다. 책을 만나고 세상을 이해하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던 공간이었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면서 그가 지켜 온 세계는 서서히 무너진다. 자신의 삶이었던 책들도, 존재의 의미를 찾았던 공간도 .차 멀어진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한탸의 내면은 체념인 듯하면서도 수용인 듯하다. 어쩌면 그 사이에는 평생 자신의 삶을 지탱해 온 것들을 잃어버리는 깊은 상실감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평생 버려진 책들을 압축해 온 한탸가 변화하는 시대 앞에서 그 책들과 다르지 않은 처지가 되어 간다는 사실은 잔혹한 역설로 다가온다.
책을 읽으며 유독 오래 머물렀던 문장이 있다.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 나는 행복이라는 불행을 짊어진 사람인데, ……"(70쪽)
행복이라는 불행.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단어가 한탸의 삶을 설명한다. 그는 책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기쁨을 얻었지만, 동시에 인간의 잔혹함과 삶의 모순까지 알아차리게 되었다. 지식이 쌓일수록 세상은 더욱 넓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넓어진 세계만큼 외면할 수 없는 현실도 많아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책을 읽고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일일까. 아니면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삶의 모순과 고통까지 알아차리게 하는 일일까.
나는 한탸가 책을 읽었기 때문에 불행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온라인골드몽
오히려 책을 읽었기에 자신의 불행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던 사람이 아닐까.
우리는 흔히 독서가 삶을 풍요롭게 하고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책을 읽는다고 현실의 고통이 사라지거나 삶의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반드시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글을 읽었다고 해서 그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책에서 얻은 지식과 그것을 삶으로 살아내는 일 사이에는 분명 간극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에는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대가 있고,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으며, 경험하지 못한 삶이 담겨 있다. 독서는 익숙한 세계 너머의 삶을 만나게 하고, 당연하게 믿었던 생각에 의문을 품게 한다. 때로는 자신의 불행을 이해할 언어를 건네기도 한다.
한탸에게 독서는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었다.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존재를 사유하는 과정이었다. 비록 그가 맞이하는 현실은 비극적이지만, 책과 함께한 35년의 시간이 무의미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책을 사랑하는 한 남자의 삶을 통해 인간의 가치가 무엇으로 결정되는지를 묻는다. 동시에 책을 읽는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돌아보게 한다.
책을 덮고 나니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책을 읽는가.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서일까.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과 타인의 삶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일까.
어쩌면 독서가 주는 행복은 불행을 모르는 삶이 아니라, 행복과 불행이 공존하는 삶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행복이라는 불행.
책을 덮고도 오래도록 생각하게 되는 말이다.
인간이 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