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기본소득사업 도입 이후 주민들의 소비가 늘면서 영양군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매출이 평균 20~30% 가량 증가하는 등 지역 상권에도 온기가 돌고 있다. /영양군 제공
농어촌기본소득사업 시행 이후 청송군에서 전입신고가 크게 늘고 있는 가운데 한 민원인이 읍사무소에서 전입신고를 하고 있다. /청송군 제공
인구는 줄고, 가게 문은 닫히고, 마을에는 노인들만 남았다. 대한민국 농촌이 마주한 냉혹한 현실이다. 이런 농촌에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것이 ‘농어촌 기본소득’이다. 주민들의 생활비 부담을 덜고 침체한 골목상권을 살리는 동시에 인구 유입까지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31일 황이주 울진군수가 사전 약속도 없이 이재명 대통령을 2시간30분이나 기다려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지역 선정을 건의한 것도 농촌의 절박함을 보여준다. 오는 19일 추가 선정을 앞두고 지방자치단체들의 유치 경쟁도 치열하다. 경북도에 3일 마감 시한까지 신청서를 제출한 기초지자체만 7개에 달한다. 이미 시행중인 영양과 청송을 제외하면 경북도내 대부분의 군지역이 신청한 셈이다.
과연 기본소득은 농촌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경북매일신문은 기본소득 시행 4개월째를 맞은 청송과 영양을 찾아 주민 생활과 전통시장·골목상권의 변화, 인구 유입 효과를 살펴봤다. 현장에서는 소비가 늘고 지역경제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잇따랐다. 하지만 소비 편중과 인구 정착, 재정 부담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았다.
◇청송군 “주민 지갑 열리고 전통시장에 활기”
농어촌 기본소득이 청송 주민들의 소비생활과 지역 상권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주민들은 생활비 부담을 덜고, 전통시장 상인들은 지역화폐를 사용하는 고객이 늘면서 오랜만에 장사할 맛이 난다는 반응이다.
청송군은 지난 7월부터 주민 1인당 월 2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역화폐인 청송사랑카드로 지급하고 있다. 단순한 생활비 지원을 넘어 지역 안에서 소비가 이뤄지도록 설계한 정책이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과 상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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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읍 전통시장 한 상인은 “기본소득이 지급되면서 청송사랑카드를 사용하는 손님들이 늘었다”며 “요즘은 그나마 장사하는 맛이 난다”고 말했다.
진보면 전통시장 상인도 “장을 보러 나온 손님들이 평소에는 사지 않던 물건까지 구매하곤 한다”며 “손님은 부담 없이 물건을 사고 우리는 매출이 늘어나니 서로 좋은 일 아니냐”고 반겼다.
주민들의 소비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청송읍 금곡리 이용준(80)씨는 “처음에는 카드를 사용할 줄 몰라 불편했지만 사용법을 익히고 나니 훨씬 수월하다”며 “없던 돈이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진보면 진안리 김영진(28)씨는 “예전에는 친구들과 식사할 때 비용이 부담스러웠는데 이제는 서로 ‘내 카드 쓸게’라고 한다”며 “경제적 부담도 덜고 친구들과 우정도 쌓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그러나 기본소득의 소비 효과가 모든 상권에 고르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청송읍 달기약수탕 일대 상인들은 기본소득에 따른 매출 증가를 크게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관광객 소비 의존도가 높은 데다 면 지역 주민들이 지급받은 기본소득을 청송읍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제약도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반면 진보면 신촌리 약수탕 일대에서는 기본소득 지급 이후 매출이 25~35%가량 증가했다는 상인들의 반응이 나온다. 같은 군 안에서도 지역화폐 사용 범위와 생활권에 따라 소비 효과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인구 변화도 눈길을 끈다. 청송군 인구는 6월 말 2만4020명에서 7월 2만4437명으로 한 달 사이 417명 증가했다. 9월 3일 기준 전입자는 1715명으로 집계됐다. 인구 감소에 시달리던 농촌에서 나타난 변화라는 。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다만 전입 증가를 모두 기본소득의 효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실제 거주와 장기 정착 여부, 연령별 유입 및 전출 규모 등을 함께 분석해야 정책 효과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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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부담도 과제다. 청송군은 올해 제2회 추가경정예산에 기본소득 사업비 296억원을 반영했다. 소비 활성화 효과를 지속하면서 장기적인 재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영양군 “전통시장·소상공인 매출 20~30% 증가”
전국 최초로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추진한 영양군에서도 지역경제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주민들의 소비가 늘면서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매출이 평균 20~30%가량 증가하는 등 침체했던 골목상권에 온기가 돌고 있다.
영양군은 국비 15만원과 군비 5만원을 합쳐 주민 1인당 매월 20만원을 지역사랑상품권으로 지급하고 있다. 주민 생활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외부로 빠져나가던 소비를 지역 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취지다.
영양전통시장과 음식。, 동네 상가에서는 실제로 매출 증가를 체감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매월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지역화폐가 새로운 소비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남석진 영양시장상인회장은 “기본소득 지급 이후 시장을 찾는 주민들의 소비가 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체감하고 있다”며 “어려웠던 전통시장에 조금씩 활기가 생기고 있는 만큼 이런 효과가 지속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음식. 등 생활밀착형 업종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이어진다.
장성욱 노랑통닭 영양。 관계자는 “지역화폐를 사용하는 손님들이 늘면서 소비 분위기가 이전보다 나아졌다”며 “대형 유통업체뿐 아니라 동네 음식.과 작은 가게들도 함께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기본소득이 지역경제 전반의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소비가 특정 업종이나 대형 .포에 집중되는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영양읍에 신규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기본소득 소비가 일부 유통.에 쏠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영양군 방문 당시 기본소득의 지역 내 소비 구조를 강조하며 사용에 다소 불편함이 있더라도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정책 목적을 살려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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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지급된 돈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고 지역 안에서 순환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영양군의 ‘이동식 마실장터’는 이러한 정책 취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상。이 부족하고 교통 여건이 열악한 면 지역 주민들에게 생필품을 공급하면서 기본소득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주고 있다.
입암면 신사1리 권윤동 이장은 “면 지역은 읍내와 달리 물건 하나를 사려 해도 이동해야 하는 불편이 크다”며 “마실장터는 어르신들이 가까운 곳에서 생필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취급 품목 확대와 가격 경쟁력 확보, 정기적인 방문, 지역 농산물 판매 연계 등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인구 변화에서는 기대와 한계가 교차한다.
영양군은 지난해 10월 시범지역 선정 이후 올해 5월까지 인구가 820명 늘어 1만6005명을 기록했다. 그러나 6월 말에는 1만5972명으로 감소하면서 다시 1만6000명 선이 무너졌다.
학령인구(6~21세)는 전월보다 8명 감소했고, 청년인구는 9명 증가한 반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31명 늘었다.
기본소득이 인구 유입을 유도하는 요인이 될 수는 있지만 저출생과 고령화라는 구조적인 문제까지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소비 증가 넘어 일자리·청년 정착으로 이어져야
청송과 영양의 실험은 농어촌 기본소득이 주민들의 소비 여력을 높이고 침체한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소비가 늘었다는 성과에만 안주해서는 안 된다. 그 소비가 누구에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통시장과 작은 가게는 물론 외딴 농촌 마을까지 혜택이 고르게 전달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인구 유입 역시 단순한 주민등록 이전을 넘어 실제 거주와 장기 정착으로 이어져야 의미가 있다.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고 아이를 키우며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함께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에서 받은 돈이 지역에서 소비되고, 그 소비가 다시 주민 소득과 일자리로 돌아오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농어촌 기본소득이 일시적인 경기부양책을 넘어 지속 가능한 농촌의 생존 모델로 자리 잡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전에는 친구들과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