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나침반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방향을 안내하는 도구입니다. 방향은 제시하지만, 특정 경로를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이 칼럼이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과제와 나아갈 길에 대해 함께 성찰하는 장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박남기 광주교대 명예교수
2001년에 전 세계 비교교육학자가 한자리에 모이는 WCCES(World Council of Comparative Education Societies) 학술대회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됐다. 폐회식에서 일본 학자 한 명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자신은 일본 학교의 화장실이 세계에서 가장 깔끔하고 선진적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번에 한국 학교의 화장실을 둘러보면서 그것이 아님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학회 참석자를 위한 학교 방문 프로그램에 선진형 화장실 구축 시범학교가 포함돼 있었고, 이를 보고서 일본학자가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이었다.
그동안 여러 교육청에서 선진지 시찰이라는 이름으로 소위 선진국의 교육청과 학교를 무수히 방문하고 돌아와 그들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기가 많던 핀란드 학교들은 학교는 관광지가 아니라며 방문을 거절했던 사례가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들이 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화장실 시범학교를 보고 감탄한 일본 학자가 자꾸 떠올랐다. 내가 알고 있는 해당 국가 교육의 실상과 다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통나무 다리 위의 개' 닮은 한국 교육
여러 교육청이 흉내 내려던 핀란드는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 성적 급락으로 학력 저하가 뚜렷해지자 2023년에 초등학교 수업 시간을 늘려 학력을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심지어 여름방학 단축 방안도 추진 중이다. 그러한 변화에도 핀란드 교육에 대한 환상은 여전하다. 독일 교육제도를 찬양하는 사람도 있다.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는 시。에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김나지움과 직업교육으로 이어지는 레알슐레·하우프트슐레(또는 이를 통합한 학교) 등으로 나뉘므로, 가난한 집 아이들 상당수는 일반대 진학이 사실상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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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프랑스 고등학생들의 시위는 프랑스 교육제도 벤치마킹을 주장해 오던 사람들을 당황케 하고 있다. 시위의 이유는 결원 교사가 채워지지 않아 수업 공백이 반복되는 것, 낡아 폭염에 취약한 교육 시설, 나아가 대입제도(파르쿠르쉽)가 지닌 불공정성, 계층 간 교육 불평등과 지역 격차 등 교육 인프라와 핵심 제도 자체의 문제다.
한동안은 선진교육의 사례로 미국 교육 사례를 드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환상을 깨기 위해 2000년대 초반 내 경험을 토대로 '미국 초등학교 깊이 읽기'라는 책을 출판했다. 그 책 내용을 일부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솝 우화에 나오는 '통나무 다리 위의 개'처럼 행동해 왔다. 우리 교육이 갖고 있던 강.을 보지 못하고 남의 것을 모방하려고 한 결과 교실 붕괴, 교사의 사기 저하 등의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최근에는 학생들의 학력 저하라는 심각한 우려마저 낳고 있다. 밝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최대한 살리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제반 문제의 전조가 25년 전 이전에 이미 나타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토대로 당시 모 방송사와 함께 제작했던 '미국 공교육 개혁 열풍'이라는 특별 프로그램의 첫 화면 자막은 "미국 공립학교에는 '천국과 지옥'이 병존한다"는 것이었다. 미국 교육 현지 시찰을 다녀온 많은 공무원과 교원이 본 것은 바로 '천국'이었음을 일깨우기 위해서였다.
미국 사례를 토대로, 학교에 변호사가 들락거리기 시작하면 학교 교육은 붕괴한다고 1990년대부터 경고해 왔으나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지난 40여 년의 경험을 통해 생명체의 노화만이 아니라 교육을 포함한 사회제도의 노화 또한 막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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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력해도 소위 선진국의 다양한 문제가 우리 교육에서도 시차를 두고 비슷하게 발생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노력하면 인간의 노화 속도를 늦출 수 있듯이 교육을 포함한 사회의 노화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우리 상황에 맞지 않는 외국의 제도를 그대로 들여오는 것과 같은 잘못된 노력은 오히려 교육 시스템의 노화속도를 가속하기도 한다. 외국의 제도와 정책을 도입하고자(벤치마킹) 할 때는 제도 정립의 역사, 문화, 사회적 토양, 그리고 현실의 여건을 먼저 비교해야 한다는 것이 비교교육학의 기본이다. 교육 시스템의 노화를 늦추고 청춘과 성년기를 더 오래 유지하게 하는 하나의 방안은 우리 교육의 강。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토대 삼아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외국의 사례를 우리 상황에 맞게 수정·보완해 시도해 보는 것은 보탬이 될 수도 있다.
K-교육이 나아갈 방향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은 누구나 알고 있다. 과열된 교육열과 과도한 사교육, 교권 침해와 학교폭력, 그리고 학생들의 높은 자살률 등은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시스템과 우리 사회 시스템이 결합해 생긴 문제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한 교육과 사회 개혁을 추진하되 동시에 'K-교육' 모델을 정립해 가야 한다. K-교육은 다른 나라에도 시사。을 줄 수 있는 미래 선도형 한국 교육을 의미한다.
우리만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 우리가 살려가야 할 첫 번째 강。은 우수 교원 확보 시스템이다.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은 제2조에서 교원에 대한 예우를, 제3조에서 교원 보수의 우대를 규정하고 있다. 즉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교원에 대한 특별한 예우뿐 아니라 '보수를 특별히 우대하여야' 한다.
한국전쟁 직후 유네스코 교육지원단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미국 교수는 여려 보이는 젊은 여교사가 운동장 교실에서 학생들을 너무나 훌륭하게 이끌어가던 모습을 미국 대학 강의실에서 몇 번이나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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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이 정한 바에 따라 교원을 특별히 예우하고 보수를 우대하는 것이 K-교육이 더 강화해야 할 첫 번째 과업이다. 그 안에는 교육기회 균등보장을 위한 교원 순환근무제도가 포함된다. 이 제도는 소외된 지역의 교육 질 보장을 위한 핵심이다.
두 번째 강.은 공정한 입학시스템을 유지해 온 것이다. 우리처럼 철저하게 학생 개인의 실력을 바탕으로 입학을 결정할 때 학생의 학습의욕과 학부모의 지원 의지를 살려갈 수 있다. 우리 생각과 달리 이 원칙을 잘 지키는 나라는 많지 않다. 이와 더불어 사회약자를 위한 사회통합전형 비율을 높여가는 것도 꼭 필요하다.
세 번째 강.은 기초학력 보장을 위해 지속해서 노력해 온 것이다. 과거에는 교사 개인의 헌신에 의존했다면 이제는 '기초학력 보장법'에 따라 학습지원 대상 학생에게 '개인의 상황과 특성에 맞는 내용과 방법으로 실시하는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기대한 결과가 나오도록 보완해 갈 필요가 있다. 그동안 시행해 온 국가교육과정과 국정·검인정 교과서 체제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이는 교육기회 균등을 보장하는 훌륭한 기반이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보완해 간다면 다른 후발국가들에도 좋은 모델이 될 것이다.
네 번째 강。은 탄탄한 교육예산 확보 시스템 구축이다. 최근 그 기반이 흔들리고는 있지만 이는 우리 교육 발전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왔다. 더 바람직한 미래형 예산 확보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강.을 바탕으로 정보통신기술(IT)·인공지능(AI) 강국으로서의 이。을 교육과 접목해 K-교육 모델을 세계에 제시할 때,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가 더 희망차게 될 것이다. 인류의 미래는 후세 교육의 성패에 달려 있다. 세계에서 우리만큼 자녀 교육에 높은 관심을 갖고 부모가 직접 나서서 헌신해 온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의 성공과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 교육에 희망을 주는 교육강국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과 달리 이 원칙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