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미국 노동운동과 민권운동에 큰 발자취를 남긴 돌로레스 우에르타가 28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6세.
우에르타의 유족은 이날 성명을 통해 그가 캘리포니아주 베이커스필드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1930년 미국 뉴멕시코주에서 태어난 우에르타는 농업 공동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어머니를 보고 자랐다. 대학에서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농장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사회봉사 활동에 뛰어들었다.
1962년 그는 봉사단체에서 만난 노동운동가 세사르 차베스와 함께 농촌 노동자들의 복지 향상을 목표로 한 전미농장노동자연맹(NFWA)을 창설했다. 당시 미국 농장 노동자들은 평균 0.93달러의 시급을 받으며 살충제에 노출된 채 일했지만, 단결권조차 보장받지 못했다.
NFWA는 1966년 포도농장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불매운동을 시작, 4년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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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베스가 캘리포니아주에서 약 480㎞를 행진하며 시위하는 동안 우에르타는 농장 노동자와 업계 간 협상을 이끌어냈다. 이는 NFWA의 첫 성과로 평가된다.
우에르타는 라틴계 이민자와 여성 등 소외계층의 권익 증진에도 헌신했다. 남성 중심 노동계에서 겪은 성차별에 당당히 맞섰다. 남녀 임금 격차 해소와 라틴계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를 위해 노력했고, 재생산권 보장에도 관심을 뒀다.
그는 미국 진보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68년 로버트 F 케네디의 민주당 대선 경선 승리를 도왔고, 버락 오바마와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선거운동에도 참여했다. 특히 그가 노동운동 과정에서 만든 ‘그래,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뜻의 스페인어 구호 “시, 세 푸에데”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2008년 대선 슬로건 ‘예스 위 캔’의 모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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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에르타는 2012년 미국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영예인 대통령 자유훈장을 받았다.
말년에는 오랜 동지인 차베스로부터 60여 년 전 성폭력을 당한 사실을 고백했다. 그는 차베스 사후 미성년자 성폭력 의혹이 불거지자 지난 3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자신 역시 1966년 겨울 외딴 포도밭에서 성폭력을 당했다고 밝혔다. 당시 노동운동이 타격받거나 동료들이 자신을 믿지 않을 것을 우려해 수십 년간 침묵했다고 했다.
우에르타가 40년간 지도부로 몸담은 미국 농업노동자연합(NFWA의 후신)은 “우에르타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농장노동자들을 위해 투쟁했다”고 추모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우에르타는 나의 영웅이었다”라며 “그는 자신도 성차별과 학대에 직면했지만 여생을 소외된 공동체를 위해 싸웠다”고 밝혔다. 이날 로스앤젤레스 시내에 있는 우에르타의 벽화 앞에는 촛불과 장미를 든 시민들이 모여 고인을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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