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이라는 낙인은 누가 찍는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때로는 기록하는 자의 시샘과 질투가 한 사람의 생애 전체를 집어삼키기도 한다. 소설가 정진영(사진)이 장편소설 ‘누명’(무블)에서 조선 전기의 인물 유자광을 다시 불러낸 것도 바로 이 물음에서 출발했다. 지난 2일 전화로 만난 그는 “간신은 대개 끝이 좋지 않은데 유자광은 천수를 누렸고 집안도 몰락하지 않았다”며 “나라에 해를 끼친 적도 없는 사람이 왜 간신 소리를 듣는지 오래전부터 궁금했다”고 말했다.
해답의 실마리는 ‘조선왕조실록’에 있었다. 정 작가는 5년 가까이 틈날 때마다 실록 속 유자광의 흔적을 추적했다. 실록을 기록한 사관들은 대부분 그를 증오한 정적이었으나, 악의로 가득 찬 문장들을 짚어갈수록 유자광의 진면목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정 작가는 “야사나 뜬소문은 배제하고 철저히 실록의 기록에서 벗어나지 않게 썼다”고 강조했다. 실록에 없는 유배지에서의 일상 등 ‘기록의 공백’만을 상상력으로 채워 넣었다. 유자광은 세조 앞에서 무예로 좌중을 놀라게 했고, 행정에 능해 별시 문과에 장원급제했으며, 정적들조차 그의 문장만은 인정했다. 그러나 무오사화의 장본인으로 지목되며 간신의 대명사로 남았다. 끝내 그를 가로막은 것은 서얼이라는 신분적 굴레였다.
정 작가는 그 모습에서 오늘의 청년을 봤다. 아무 배경 없이 능력 하나로 버텨야 했던 유자광이 “지금의 MZ 세대와 꼭 닮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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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득권이 돼 권력만을 탐하는 훈구와 사림의 다툼은 지금 정치권과 겹쳐 보였다. 작가가 역사의 외피를 두른 이 작품을 “굉장히 현대적인 소설”이라고 단언하는 이유다.
문학계에서 겪었던 치사함과 서러움을 인물에게 투영하며 유자광과 함께 늙어가는 기분으로 집필에 매진했다는 작가. 어지간한 장편 두세 편을 쓴 만큼 기력이 쇠했다. 근래 보기 드문 고전적이고 선 굵은 남성적 서사를 내놓는, 무모해 보일 수도 있는 도전이다. “요즘 이런 이야기가 잘 없잖아요. 독서 시장에서 소외된 남성들이 읽으면서 ‘잠깐, 이거 우리 얘기잖아’하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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