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영국 등 연금 선진국에서 보편화된 ‘기금형 퇴직연금’이 도입되는 것은 고질적인 문제로 꼽혀온 ‘쥐꼬리 수익률’ 때문이다. 퇴직연금 적립금은 지난해 말 501조4000억 원으로 불었지만, 최근 10년간 연평균 운용 수익률은 2.78%에 그친다.
지난해도 퇴직연금 수익률은 6.47%로 역대 가장 높았지만 국민연금(18.82%), 공무원연금(17.2%) 등과 비교하면 한참 낮다. 퇴직연금 적립금 대부분이 정기예금 같은 원리금 보장 상품에 방치돼 있다 보니 ‘노후 안전판’이 되지 못하고 있다.
전문성을 갖춘 제3자 수탁법인이 개인과 기업별로 흩어진 퇴직연금을 기금 형태로 한데 모아 굴리면 규모의 경제 효과를 통해 수익률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과 개인형퇴직연금(IRP) 가입자들은 내년 수탁법인 설립 등을 거쳐 이르면 2028년 상반기(1∼6월)에 기금형에 가입할 수 있다.
● DC형 가입자, 내후년부터 ‘기금형’ 선택 가능
현재 퇴직연금은 회사가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퇴직연금 사업자와 계약을 맺은 뒤 기업이나 근로자가 직접 상품을 선택해 운용하는 ‘계약형’ 구조다. 확정급여(DB)형은 회사가 운용을 책임지고, DC형과 IRP는 개인이 운용 방식을 결정한다.
29일 정부가 발표한 ‘퇴직연금 기능 강화 방안’에 따르면 DC형과 IRP를 대상으로 별도의 수탁법인이 퇴직연금을 굴리는 ‘기금형’이 추가돼 가입자의 선택권이 넓어진다. 기금형은 수탁법인 설립 주체에 따라 금융회사가 단독 또는 컨소시엄으로 만드는 ‘금융기관 개방형’, 여러 노사 단체가 공동으로 설립하는 ‘연합형’,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푸른씨앗)처럼 근로복지공단 같은 공공기관이 운용하는 ‘공공기관 개방형’ 등 세 가지 유형으로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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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근로자대표 동의 등을 거쳐 기금형을 도입하면 근로자가 수탁법인을 선택하면 된다. 기업은 계약형 퇴직연금을 그대로 두면서 기금형을 도입할 수도 있고, 복수의 기금형을 도입할 수도 있다.
기금형 퇴직연금이 활성화되면 규모의 경제 효과는 물론이고 기금 간 경쟁으로 수익률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제학과 교수는 “기금형을 도입한 호주를 보면 기업이나 근로자가 수익률이 높은 수탁법인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하면서 기금 간 수익률 경쟁이 일어난다”며 “기금에서 책임지고 운용한다는 장。도 있다”고 말했다.
기금형 운용기관이 사실상 국민의 노후 소득을 책임지게 되는 만큼 엄격한 인가 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수탁법인을 설립하려면 노사와 전문가, 정부 등이 참여하는 인가위원회 심의와 고용노동부 장관 인가를 받아야 한다. 금융기관 개방형의 최소 자본금은 120억 원이며, 내부 통제 등을 맡을 인력 7명을 확보해야 한다. 자산을 직접 운용하려면 전문인력 5∼8명을 추가로 갖춰야 한다.
기금형 퇴직연금이 가입자 이익과 어긋나거나 정치적 목적 등으로 운용되지 않도록 ‘수탁자 책임’도 강화한다. ‘수탁법인은 가입자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는 규정을 법제화하고, 손실 보전과 사고 대응에 활용할 ‘운영위험준비금’ 적립도 의무화한다. 수탁법인은 운용 과정에서 이해 상충 의무 위반 등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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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RP 주식형 투자 ‘70% 제한’ 풀기로
기존 계약형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높이는 방안들도 마련됐다. 우선 더 공격적인 투자가 가능하도록 IRP의 위험자산 투자 한도를 현행 70%에서 단계적으로 완화한다. 현재 IRP는 주식형 펀드나 상장지수펀드(ETF) 등 주식형 상품에 70%까지만 투자할 수 있고 나머지 30%는 예금이나 채권형 펀드 등 안전자산으로 채워야 한다. 또 DC와 IRP에 증권사의 종합투자계좌(IMA)와 발행어음 등도 담을 수 있게 된다. IMA는 증권사 운용 수익에 연동돼 수익률이 연 3∼8%대로 정기예금 금리보다 높다.
수익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퇴직연금 사업자 평가 방식도 바꾼다. 현재는 정성 평가를 바탕으로 상위 10% 우수 사업자만 공개하지만, 앞으로는 전체 사업자의 평가 결과를 공개해 가입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경쟁을 유도할 방침이다. 미리 정한 방식으로 퇴직연금을 알아서 굴려주는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상품도 평가를 강화해 수익률이 낮거나 성과가 부진한 상품은 퇴출시키기로 했다.
퇴직연금의 노후소득 보장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퇴직급여를 연금으로 받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현재 퇴직연금 적립금을 중도 인출하거나 퇴직 때 일시금으로 받는 사례가 많아 노후 연금 기능을 못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주택 구입이나 생활자금 등 목돈이 필요한 가입자가 퇴직연금을 중도에 깨지 않도록 담보대출 상품 출시를 지원할 방침이다. 또 일시금 수령 의사를 미리 밝히지 않으면 자동으로 연금으로 지급하는 방식도 검토한다.
아울러 청년층의 퇴직연금 납입액에는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15%의 세액공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현행 세액공제율은 12%이며 총급여가 5500만 원 이하일 때만 15%가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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