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나무 조각이 고급 장식장이 되고 화산재가 가구의 재료로 쓰인다. 파인애플 잎에서 뽑아낸 섬유는 정교한 직물로 변신한다. 언뜻 가구와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재료들이 필리핀 장인들의 손을 거쳐 새로운 쓰임새를 얻고 있다.
지난 15~17일 필리핀 마닐라 세계무역센터에서 열린 국제 디자인 전시회 ‘마닐라 페임(Manila FAME) 2026’은 이러한 필리핀의 독특한 공예 기술과 디자인을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행사였다. 올해로 74회를 맞은 전시회에는 가구·패션·생활용품 업체 350여 곳이 참가했다. ‘블룸(Bloom·개화)’이라는 주제에 맞춰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가구와 조명, 생활용품이 소개됐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제품을 만드는 재료부터 남다르다는 .이다. 필리핀 가구업체 ‘콘템포라네오(Contemporaneo)’는 공장에서 버려지는 목재 자투리를 활용한다. 작은 나무 조각들을 이어 붙여 독특한 무늬를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올해는 이 기술을 활용해 바 캐비닛과 콘솔, 탁자 등을 개발했다. 원래라면 폐기할 재료를 디자인의 핵심 요소로 바꾼 것이다.
‘사우스이스트 메트로 아츠(South East Metro Arts)’는 1991년 대규모 분화를 일으킨 피나투보 화산의 화산재를 복합 소재로 가공해 가구와 장식품을 제작하는 업체다. 이번에는 필리핀의 꽃과 식물에서 영감을 얻은 조명과 장식품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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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섬에 본사를 둔 ‘네이처스 레거시(Nature’s Legacy)’는 천연 폐기물과 유기물을 활용한 친환경 소재로 유명하다. 올해는 비눗방울의 둥근 형태를 본뜬 조명과 꽃병, 촛대 등을 개발했다.
이처럼 소재가 독특하다고 해서 디자인까지 투박한 것은 아니다. 필리핀의 전통적인 제작 기법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유럽과 미국의 고급 인테리어 시장에서도 통할 만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이 업체들의 목표다.
이번 전시회에서 가구 부문 카타(KATHA) 디자인상을 받은 ‘자라테 마닐라(Zarate Manila)’도 그런 업체 중 하나다. 이 회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짐 자라테 토레스는 금속 공예를 전문으로 해왔지만 최근 가죽과 목재, 섬유 등 다양한 소재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전시장에서는 낙하산 줄로 만든 조명과 19세기 유럽의 토넷 의자에서 영감을 받은 가죽 가구 등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토레스는 수상 소감을 묻자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며 “처음부터 상을 받으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갖고 있던 소재를 활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했다.
자라테 토레스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필리핀 산토토마스대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한 그는 회사에 소속된 디자이너로 일하다 자신만의 브랜드를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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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현대적인 디자인이지만, 가능하면 필리핀 고유의 미적 요소를 녹여내려고 한다”며 “전통적인 직조 기술과 같은 요소도 세계 시장에서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세련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필리핀 정부도 이러한 장인들의 기술을 수출 산업으로 발전시키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올해 전시회의 특별 기획관인 ‘디자인 코뮌(Design Commune)’에서는 디자이너 토니 곤잘레스의 지도로 신진 디자이너 5명과 제조업체 20곳이 협업해 장식품과 조명 등 시제품 90.을 개발했다. 가구 업체가 제품을 만든 뒤 디자이너에게 외관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제품을 구상하는 단계부터 함께 참여하는 방식이다.
지방의 전통 공예 업체들을 지원하는 ‘아티산 빌리지(Artisans Village)’도 운영됐다. 보홀과 아클란, 타를라크, 이사벨라 등 지역의 업체 약 50곳이 참여해 천연 섬유 직조와 목공예 등 지역 특유의 기술을 활용한 제품을 소개했다. 해외 전문가들은 상품 개발부터 가격 책정, 해외시장 진출 전략까지 조언했다.
1983년 시작된 마닐라 페임은 필리핀 통상산업부 산하 국제무역박람회센터(CITEM)가 주최하는 수출 전시회다. 지난 14일 열린 개막 행사에는 리자 아라네타 마르코스 필리핀 영부인과 크리스티나 로케 통상산업부 장관이 참석했다.
레아 풀리도 오캄포 CITEM 사무총장은 “단순히 아름다운 물건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장인 공동체가 세계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육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우리가 추구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