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태의 성모상이 유모차에 실려 배를 타고 서해 굴업도 공소에 도착했다.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굴사모) 제공
지난 10월 말 ‘유모차를 타고 굴업도를 찾은 성모 마리아’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처음엔 환경운동 단체의 활동 내용을 알리는 상징적, 은유적인 내용인 줄 알았습니다.
‘굴업도’라면 아마도 많은 분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가 몇 개 있을 겁니다. ‘핵폐기장’ ‘골프장’ 등이죠. 1994년 정부가 이 섬에 핵폐기장을 지으려다 홍역을 치르고 계획을 접었지요. 그다음엔 대기업이 골프장과 리조트를 지으려다 시민단체, 환경단체 등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고요. 그렇게 사회적으로 첨예한 이슈의 한복판에 섰던 섬이 굴업도이지요. 저도 그런 인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유모차를 타고 굴업도를 찾은 성모 마리아’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보고는 ‘굴업도가 또 무슨 사회문제에 휩싸였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메일을 열어보니 문자 그대로 ‘성모 마리아상이 유모차를 타고 굴업도에 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지난 10월 19일 굴업도에 있는 천주교 공소(公所)에서 성모상을 봉헌하는 미사가 열렸다. 봉헌된 성모상은 서울에서부터 인천을 거쳐 굴업도로 모셔갔는데 무게가 무거워 카트 같은 것으로 옮겨야 했다. 마침 행사 참가자 중에 유모차를 가진 분이 있어서 유모차에 성모상을 실어 옮겨갔다.>
최대한 간단히 정리해 뼈대만 추리면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복원을 마치고 입구 옆에 성모상을 설치한 굴업도 공소 전경. /굴사모 제공
지난 10월 19일 굴업도 공소에서 성모상을 봉헌하는 미사를 마친 후 참석자들이 함께 기념촬영했다. /굴사모 제공
그런데 이 뼈대에 ‘외국인 신부의 한국 사랑’이라는 역사와 ‘문화예술’이라는 스토리가 켜켜이 쌓이면서 풍성한 문화 현상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여러 층의 스토리를 한 겹 한 겹 펼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최분도 신부가 뿌린 신앙의 씨앗
병원선 '바다의 별' 앞에서 최분도 신부(왼쪽)가 어린이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여의도성모병원 제공
우선 공소부터. 공소는 사제가 상주하지 않는 천주교의 작은 신앙 공동체입니다. 굴업도의 복음화는 미국 메리놀외방선교회 최분도(본명 베네딕트 즈웨버·1932~2001) 신부에 의해 시작됐습니다. 1966년 덕적도성당에 주임신부로 부임한 최분도 신부는 단순히 선교만 한 것이 아니라 현지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먼저 찾아 나섰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다의 별’이란 병원선(病院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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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신부는 ‘바다의 별’ 병원선을 덕적도에 발령받기 전인 1964년부터 시작했습니다. 당시 백령도, 덕적도, 굴업도 등은 서해 낙도(落島)라고 불렸습니다. 의료시설도 제대로 없었지요. 병원선은 섬을 찾아다니는 병원이었습니다. 맹장염으로도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던 시대에 섬마다 찾아오는 병원선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였을지는 충분히 짐작이 됩니다. 최 신부는 그뿐 아니라 휴가 때마다 미국에서 모금해 발전기를 들여와 전기를 놓고, 상수도를 설치하는 등 주민들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최 신부가 굴업도에 공소(公所)를 지은 것은 1974년이었습니다. 공소란 사제가 상주하지 않은 작은 규모의 신앙 공동체이지요.
#‘한국의 갈라파고스’ 굴업도
인천 옹진군 굴업도는 백패킹의 성지로 불린다. 인공 조명 없이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감상하는 기분은 다른 곳에선 쉽게 경험할 수 없는 호사다. /인천관광공사 제공
그 후로 한참 세월이 흘렀습니다. ‘핵폐기장’ 계획은 없어졌고, ‘골프장’ 문제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던 무렵인 2011년 원로 건축가 김원(세례명 안드레아)씨가 굴업도를 찾아갑니다. 김원씨는 이 아름다운 섬을 잘 보존하자는 뜻에서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 약칭 ‘굴사모’를 결성했습니다. 200여 문화예술인이 함께했고요. 김씨는 본지와 통화에서 “굴업도는 일본의 나오시마처럼 아름다운 섬이 될 가능성이 충분했다”고 말했습니다. 나오시마(直島)는 일본 시코쿠 앞바다의 14㎢ 면적의 작은 섬입니다. 여의도 면적의 약 2.7배 크기인 이 섬에는 주민 약 3000명이 사는데, 연간 방문객은 100만명에 이릅니다.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거죠. 비결은 이 섬 전체가 미술관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 미술가와 건축가의 작품으로 가득한 ‘예술섬’으로 유명해졌기 때문이죠. 김원 건축가가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을 결성한 것도 굴업도를 예술가들의 활동이 넘치는 예술 섬으로 만들자는 뜻이었습니다. 굴사모는 그동안 크고 작은 규모로 50여 차례 굴업도를 찾았고 음악 공연, 춤 공연, 시 낭송과 조각가의 작품 설치 등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는 사이 골프장 건설 계획은 철회됐습니다.
#건축가 김원 “굴업도를 한국의 나오시마로!”
김원씨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입니다. 서울 한강성당,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본원, 광주가톨릭대학교 등 가톨릭 건축물을 다수 설계했습니다. 그는 최분도 신부가 만든 굴업도 공소를 살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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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자신이 소장하던 성미술품을 굴업도에 봉헌했습니다. 가톨릭 성미술로 잘 알려진 원로 여성 조각가 이춘만(세례명 크리스티나) 작가의 십자고상(十字苦像)을 굴업도 공소에 기증한 것입니다. 이 작가는 서울 명동성당의 ‘성 김대건 신부 흉상’과 절두산성지 입구의 ‘절두산 순교 기념비’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졌습니다. 2012년 굴업도 공소에서는 이 십자고상을 봉헌하는 미사가 열렸습니다. 당시 봉헌한 십자고상은 일반적인 ‘십(十)’ 자형이 아닌 ‘T’ 자형으로 보입니다. 보기에 따라선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렸다기보다는 무거운 지게 같은 짐을 진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는 걸작입니다. 이 작품 기증으로 공소엔 활기가 돌기도 했습니다.
#설치미술가 조숙진 “공소 복원은 운명”
재미 설치 미술가 조숙진씨가 굴업도 공소 복원 과정을 정리한 블로그. /조숙진씨 블로그
그렇지만 신자가 없는 공소는 이내 황폐해졌지요. 2024년 굴사모는 재미 교포 설치미술가 조숙진 씨에게 공소 건물의 보수를 의뢰합니다. 조씨는 책 ‘아트하우스채플’(눈빛)에 당시 상황을 자세히 적었습니다. 처음엔 굴업도에 미술 작품을 설치해 달라는 의뢰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굴업도로 향하기 직전 전화 통화에서 굴사모 김원 대표는 “굴업도 공소가 많이 망가졌어요. 가능하다면 공소 복원도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답니다. 막상 굴업도에 도착하니 바닷가에는 파도에 밀려온 폐어구(漁具)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답니다. 그 쓰레기들은 ‘삶의 색채: 모여라 꽃’이라는 제목의 설치 작품으로 재탄생했답니다.
복원된 굴업도 공소 내부. /굴사모 제공
공소는 어떻게 됐을까요? 공소 복원을 준비하던 중 조 작가는 최분도 신부 친형의 사연을 듣게 됩니다. 유엔군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최분도 신부의 형 메다드(1930~1956)는 전쟁 후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전후 복구를 돕던 미국 경제조정관실(OEC)에 근무했답니다. 그러던 중 1956년 여름 광나루에서 어린이 둘이 물에 빠진 것을 발견하고 뛰어들어 아이들을 구한 후 자신은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고 합니다. 형의 한국 사랑과 희생에 감명받은 동생은 3년 후 메리놀회 선교사로 한국에 왔다고 합니다. 이런 사연을 들은 조 작가는 굴업도 공소 복원 작업이 ‘운명’처럼 느껴졌다고 합니다. “그분들의 희생과 사랑이 존중받으며, 이곳에서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로 이어지길” 바라게 됐다는 것이지요.
굴업도 공소 복원 과정에서 발견된 1974년의 상량문. /조숙진 작가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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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음을 먹고 천장을 뜯었더니 1974년 8월에 올린 상량문이 나왔다고 하네요. 딱 50년 전이었던 것이죠. 여러 가지 의미를 느끼면서 작업을 했고, 아담하고 소박한 원형은 유지한 채로 말끔하게 복원 작업을 마치게 됐지요.
#최종태의 성모상, 유모차 타고 바다를 건너다
이렇게 새 단장을 한 공소에 지난 10월 새 성모상이 봉헌된 것입니다. 이번에 봉헌된 성모상은 가톨릭 미술의 대가로 꼽히는 최종태(세례명 요셉) 작가의 작품입니다. 1983년 작품인데요, 역시 김원 건축가가 개인적으로 소장해 온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성모상을 모시기로 하고 봉헌 미사 날짜도 10월 19일 오후 4시로 잡았지요. 이 성모상은 청동 작품인데 높이가 1m, 무게도 40㎏쯤 된답니다. 크기와 무게가 모두 사람이 그냥 들고 갈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요. 그렇다고 일반 택배 물건처럼 바퀴 달린 카트에 실어 옮길 수도 없었지요.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유모차’였다고 합니다. 굴사모 박민영 운영위원장은 “유모차에 모시니 크기나 무게가 딱 맞았다”면서 “과거엔 인천에서 덕적도를 거쳐서 가야 했는데, 마침 인천에서 굴업도로 가는 직항편이 생겨서 3시간 만에 모셨다”고 했습니다.
굴사모가 제공한 사진에는 담요를 두르고 유모차에 앉은 채로 여객선에 승선한 성모상의 모습도 있습니다. 그렇게 굴업도로 옮겨진 성모상은 공소 입구에 단정하게 놓였습니다.
봉헌 미사는 굴사모 회원들과 가톨릭환경연대, 인천환경연대 대표, 이곳을 찾은 방문객,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천주교 인천교구 환경사목국장 오병수 신부의 주례로 열렸습니다. 오 신부는 성모상을 축성하고 “앞으로 굴업도 공소의 성모 마리아가 시련과 고통의 상처가 겹겹이 쌓인 주민들을 치유하고 이곳을 찾는 수많은 방문객에게 위로와 신앙의 빛이 되기를 기도한다”고 강론했다고 합니다.
본지 통화에서 김원 굴사모 대표는 “사실은 주민들에게 미안했다”고 했습니다. 골프장이 생기면 섬은 경제적으로 윤택해질 수도 있었으니까요. 김 대표는 “‘굴업도를 나오시마 같은 예술섬으로 만들어 드리겠다’는 약속을 믿어주신 주민들을 위해서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굴업도를 ‘한국의 나오시마’로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 공소 재단장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최근 들어 굴업도는 ‘한국의 갈라파고스’ ‘백패킹의 성지’ ‘살아 있는 지질 교과서’로 불리고 있습니다.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덕분이지요. 이제 여기에 문화예술까지 더해진다면 국내를 넘어 세계인들까지 즐겨 찾는 ‘예술섬’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우리 속담에도 ‘시작이 반’이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축적된 이야기에 더해 새로운 스토리의 탄생을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시작됐습니다.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