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DNA를 주사해 병을 치료하는 약이 처음으로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이 치료제를 개발한 이노비오는 미국 나스닥시장에서 하루 만에 주가가 3배가량 뛰었다.
20년 넘게 같은 기술을 연구해 온 진원생명과학도 들뜬 분위기다. 김경진 진원생명과학 대표는 와 만나 “그동안 DNA에 투자한 전략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입증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이노비오와 뿌리가 같은 진원생명과학은 이 치료제 생산에 자회사 VGXI 생산 기술이 쓰였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특허 침해 소송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진원생명과학은 상장폐지 이의신청과 유상증자 납입 등 당장 넘어야 할 고비도 적지 않다.
수술 대신 '설계도 주사'…DNA 치료제 첫 관문 넘었다
▲이노비아가 개발한 보세릭을 셀렉트라를 활용해 신체에 주입하는 과정 [자료=이노비아 IR]
미국 식품의약국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이노비오 파마슈티컬스의 '보세릭(VOCERYQ)'을 가속승인했다. FDA는 이 약을 미국 최초의 플라스미드 DNA 기반 면역치료제라고 소개했다.
다음 거래일인 지난 2일 미국 나스닥시장에서 이노비아 주가는 213.75% 올라 1.8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대상 질환은 재발성 호흡기 유두종증(RRP)이다. 인유두종바이러스(HPV)에 감염돼 후두와 기도에 사마귀 같은 혹이 계속 자라는 희귀질환이다. 암은 아니지만 떼어내도 다시 자라 해마다 여러 번 수술을 받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성대나 기도가 다치기도 한다.
보세릭은 몸이 스스로 바이러스와 싸우게 만드는 약이다. 바이러스 단백질의 '설계도'를 담은 고리 모양 DNA(플라스미드)를 어깨 근육에 주사하면서 전기 자극을 주면 DNA가 세포 안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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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가 설계도대로 바이러스 단백질 조각을 만들면 면역세포가 이를 보고 감염된 세포를 공격하도록 훈련된다. 수술로 혹을 떼어낸 뒤 9주 동안 4번 맞는다.
임상에서는 1년에 수술을 3번 이상 받던 환자 26명 가운데 7명(27%)이 투여 후 1년 동안 수술을 받지 않았다. 정문섭 진원생명과학 최고기술책임자(CTO)는 “26명이라는 적은 수인데도 승인을 내준 건 환자들에게 그만큼 이。(베네핏)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속승인은 일종의 조건부 허가다. 정 CTO는 “희귀질환이라 환자를 많이 모아 3상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단 판매하면서 3상(확증임상)을 같이 하라는 개념"이라며 “확증임상에서 문제가 생기면 승인이 취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노비오는 올해 말까지 확증임상 계획 초안을 FDA에 내고 내년 중반까지 확정할 계획이다.
정 CTO는 이번 승인의 의미를 mRNA와 비교해 설명했다. 그는 “코로나19 전에는 mRNA와 DNA가 엇비슷한 위치였는데 mRNA는 코로나 때 검증을 받았고 DNA는 받지 못했다"며 “이번 승인은 DNA도 상업화될 수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준 근거"라고 강조했다.
이노비오는 VGXI와 한 뿌리
진원생명과학과 이노비오는 인연이 깊다. 이노비오의 전신인 미국 VGX파마수티컬스는 2008년 DNA 생산 사업을 진원생명과학 계열의 VGXI에 넘겼다.
이후 두 회사는 역할을 나눴다. 이노비오는 신약 연구를 맡고, VGXI는 약의 원료인 DNA를 생산했다. 이노비오의 2009년 연차보고서에도 VGXI가 “이노비오의 모든 연구와 임상시험에 쓰이는 DNA 플라스미드를 생산·공급"한다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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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CTO는 코로나19 백신 개발 전까지 두 회사의 DNA 백신은 기본 틀과 접종 기기가 같았다고 설명했다.
김경진 진원생명과학 대표는 “DNA 백신으로 미국 FDA 승인을 처음 받은 것이라 DNA 한 우물을 판 회사로서 굉장히 의미가 있다"며 “비록 경쟁사인 이노비오가 했지만 생산 기술은 우리가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승인은 진원이 연구한 가치와 그동안 전략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입증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노비오 치료제에 VGXI 생산기술 쓰였을 것"
▲진원생명과학 연구진이 서울 구로구 진원생명과학 본사 연구실에서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 진원생명과학은 2012년 연구소를 설립한 뒤 미국 FDA와 국내 식약처에서 12건의 임상 승인을 받았다. 회사는 개인맞춤형 DNA 항암백신 플랫폼 AIMX™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사진=회사 제공]
진원생명과학은 이노비오가 개발한 보세릭에 VGXI의 생산기술이 쓰였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이노비오는 2020년 VGXI와 관계가 틀어진 뒤 다른 위탁생산업체(CDMO)로 생산을 옮겼다.
정 CTO는 “처음 연구할 때는 VGXI 기술로 생산했는데 공장이 바뀌었는데도 품질 문제가 없다는 건 우리 생산 공정 기술이 다른 업체로 넘어간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 있는 대목"이라며 “생산 기록(배치 레코드)만 보면 다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도 “이노비오는 연구 기업이고 우리는 생산 기업"이라며 “이번 승인 제품에 VGXI 제조 기술이 들어가지 않았나 상당히 의심된다"고 말했다. 그는 “생산 기술은 특허로 보호받고 있어 우리 기술이 침해됐다고 보고 소송을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1000억 궐석판결·상폐 결정·유증 납입…연말 세 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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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 별개로 진원생명과학이 당장 풀어야 할 숙제는 무겁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몽고메리카운티 법원은 지난달 19일(현지시간) 이노비오가 낸 소송에서 진원생명과학과 VGXI가 약 1065억원을 물어주라는 궐석판결을 내렸다. 진원생명과학 자기자본의 2.6배다. 2020년 이노비오가 코로나19 DNA 백신 생산기술을 다른 공장으로 넘겨달라고 요구했고 VGXI가 거부하면서 시작된 소송이다.
궐석판결은 피고가 재판에 나오지 않아 원고 주장대로 내려지는 판결이다. 김 대표는 “이전 대리인 로펌이 수임료 미납을 이유로 사임해 변호사가 재판에 나가지 못했다"며 “새 변호사를 선임해 재심리를 신청하고, 안 되면 항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협상 여지도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양측 모두 돈이 없어 이겨도 받아낼 게 없다는 걸 안다"며 이노비오 측과 대화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노비오도 판결 직후 “피고의 재무 상태로 판결금 일부 또는 전부를 회수하지 못할 수 있다"고 밝혔다.
상장 유지도 갈림길이다. 한국거래소 기업심사위원회는 지난달 29일 진원생명과학이 상장폐지 기준에 해당한다고 결정했다. 회사는 19일까지 이의신청을 하고, 이후 20영업일 안에 열리는 상장공시위원회에서 다시 심의를 받는다.
관건은 150억원 유상증자다. 리볼트투자조합은 진원생명과학에 150억원 유상증자에 참여해 최대주주에 올라설 예정이다. 다만 궐석판결 여파로 납입일이 26일로 미뤄졌다. 김 대표는 “투자조합 출자자들에게 다 확인했고 무조건 납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텍사스 제1공장은 다시 가동에 들어갔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채권자에게 넘어간 제2공장(콘로)을 되사려면 12월 15일까지 3990만달러를 마련해야 한다.
증자 납입과 상장공시위원회 심의, 공장 환매 등 연말까지 이어지는 일정이 DNA 의약품 시대의 문턱에서 진원생명과학의 앞날을 가를 전망이다.
생산기술이 쓰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