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환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장·건축학부 교수
몇 해 전 여름 성 베네딕트 채플을 찾아 스위스의 작은 마을로 향하던 중이었다. 구글맵을 따라 산길로 접어들 즈음, 마당에 물을 뿌리던 할아버지가 있어 차를 잠시 멈췄다. 옆으로 비껴가려는데 그가 나에게 무언가 말을 건넸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듯했지만, 한참을 듣다 보니 ‘춤토르’라는 단어가 들렸다. 내가 길을 잘못 들었다는 이야기였다. 아마 나처럼 춤토르의 건축을 찾아 이곳을 헤매는 사람이 종종 있는 모양이었다. 그가 알려준 길로 방향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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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프스 고지대의 소박한 채플
바람·빛을 끌어들인 병산서원
좋은 건축은 장소와 하나 돼
지금 우린 그런 건물 짓고 있나
」
스위스 알프스 고지대에 있는 성 베네딕트 채플. [사진 임영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됐다. 구글맵이 알려준 길은 오토바이밖에 갈 수 없는 좁은 길이었다. 하지만 그가 알려준 길도 녹록지 않았다. 폭 3m도 안 되는 낭떠러지 옆 일방통행 길, 노르웨이 피오르의 도로보다 더 아슬아슬한 산길을 5분쯤 올라서야 비로소 마을 어귀에 닿았다.
알프스 고지대 마을의 풍경은 압도적이었다. 그 풍경의 가장 윗부분, 경사진 산등성이 위에 고동색 비늘을 두른 작은 건물 하나가 겸손하게 서 있었다. 페터 춤토르가 설계한 성 베네딕트 채플이다. 춤토르는 스위스 건축가다. 화려한 형태보다 재료와 빛, 촉감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설계의 중심에 두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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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프리츠커상을 받은 그의 작업 중에는 이 건물처럼 찾아가기조차 쉽지 않은 곳에 자리한 것이 적지 않다.
잎사귀 같은 춤토르의 설계
채플의 평면은 배 모양처럼 보인다고도 하지만 내 눈에는 잎사귀에 가까웠다. 내부 의자는 일곱 줄뿐, 세계적인 건축가의 작품이라 하기엔 너무 작고 소박했다. 지붕을 떠받치는 목재는 잎맥처럼 뻗어 나가 벽과 바닥까지 이어져 있다. 건물이라기보다 한 그루의 나무가 그 자리에서 자라난 것처럼 느껴졌다. 외벽의 낙엽송 너와는 햇빛을 오래 받은 남쪽만 은빛으로 빛나, 시간이 새겨놓은 무늬처럼 보였다. 가구 목공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춤토르는 나무의 결이나 물성을 일찍부터 깊이 이해했다. 그가 선택한 나무는 그렇게 알프스의 햇빛과 시간을 받아들이며 건축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노르웨이 도브레피엘 국립공원 자락의 야생순록전망대. [사진 임영환]
몇 해 뒤 노르웨이에서도 비슷하게 길을 헤맸다. 내년 문을 여는 부산 오페라하우스를 설계한 노르웨이 건축사무소 스노헤타의 작은 전망대를 찾아갈 때였다. 야생 순록 관찰을 위해 지어진 이 전망대는 도브레피엘 국립공원 자락, 해발 1250m 고원에 있다. 구글맵을 따라가도 좀처럼 방향을 잡기 어려웠고, 도로가 끝난 뒤에는 한참을 걸어야 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던 차에 멀리 커다란 개와 함께 걷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인적도 없는 광야에서 달리 방법이 없어 무작정 그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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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걷자 다행히 내가 찾던 전망대가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길을 묻지도 못했다.
전망대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름이었지만 산속의 공기는 제법 쌀쌀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한쪽에 작은 난로가 놓여 있었다. 부드럽게 굽이치는 나무 의자에 앉아 몸을 녹이며, 통유리 너머 스노헤타산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었다. 이 건축사무소의 이름이 된 바로 그 산이다. 거대한 노르웨이의 자연을 보기 위해 찾아간 전망대에서 정작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이런 장면이었다. 따뜻한 불과 나무 의자, 그리고 고요한 공간. 건축은 자연보다 앞서지 않았고, 사람이 그곳에 잠시 머물 수 있을 만큼의 온기만 만들어놓았다.
두 건축은 여러모로 닮아 있었다. 성 베네딕트 채플은 일곱 줄의 의자만으로 가득 차는 작은 예배당이고, 노르웨이의 전망대는 거대한 자연 속에 놓인 작은 방과 같은 공간이었다. 장소도 용도도 달랐지만, 둘 다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나는 그 건축물을 보기 위해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와 다시 몇 시간을 차로 이동했고, 길까지 헤맸다. 내가 그곳까지 찾아간 이유는 분명했다. 그곳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건축을 보기 위해서였다.
안동 병산서원의 만대루. [사진 임영환]
그런데 이런 건축은 우리에게도 있다. 경북 안동 병산서원의 만대루다. 만대루에 오르면 건축 자체보다 먼저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벽을 세우지 않은 누각 사이로 낙동강이 흐르고, 그 너머 산이 병풍처럼 들어선 병산의 절벽이 길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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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로운 것은 만대루가 이 풍경을 위해 특별히 무언가를 더하지 않았다는 。이다. 오히려 벽을 비우고 기둥과 지붕만 남김으로써 강과 산, 바람과 빛이 건축 안으로 들어올 자리를 만들었다. 건축이 비워둔 자리를 주변의 풍경이 채우는 셈이다. 그래서 만대루는 건물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낙동강과 병산이 함께 있을 때 비로소 만대루가 된다. 다른 곳에 그대로 옮겨 짓는다면 기둥과 마루는 재현할 수 있어도, 그 순간 만대루는 이미 다른 건축이 된다. 강도 산도 그 자리의 빛과 바람도 함께 옮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장소를 특별하게 하는 건축
세 건축의 공통.은 소박함에 있지 않다. 건축이 놓인 장소와 맺는 관계에 있다. 건축이 스스로 주인공이 되기보다 그곳에 원래 있던 자연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장소가 건축을 특별하게 만들고, 다시 그 건축이 장소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생각해보면 건축을 보러 떠난 여행에서 내가 가장 오래 기억하는 것은 건축만이 아니었다. 길을 잃었던 순간도, 우연히 만난 사람도, 한참을 걸었던 길도 모두 그 건축의 일부처럼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건축은 그렇게 건물의 경계를 넘어 그곳의 풍경과 사람, 시간까지 하나의 기억으로 묶어놓는다.
좋은 건축을 가늠하는 질문은 의외로 단순할지 모른다. 이 건축을 다른 곳에 옮겨놓아도 지금과 똑같을까. 만대루가 그렇듯, 어떤 건축은 그 자리에 있을 때 비로소 온전해진다. 풍경과 기후, 빛과 바람, 그곳에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까지 함께 끌어안은 건축. 길을 잃었던 순간마저 건축의 일부로 기억되는 곳. 우리는 지금 그런 건물을 짓고 있을까.
임영환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장·건축학부 교수
있다. 건축은 그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