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률이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2026 김동률 콘서트-오래된 노래’에서 단독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하고 있다. 뮤직팜 제공
가수 김동률의 콘서트엔 3가지가 없다. 응원봉, 화려한 디지털 스크린, 그리고 관객들의 비명 같은 ‘떼창’이나 ‘스탠딩’(기립)이다. 모름지기 잘나가는 가수의 콘서트라면 없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요소들이다. 하지만 김동률은 개의치 않는다. 빠른 비트로 편곡된 ‘첫사랑’을 부를 때도, 어깨가 들썩여지는 ‘기필코’를 노래할 때도 자리에서 일어나 호응하는 관객이 없다. 마치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보컬의 강약과 악기의 선율에만 집중한다. 대중음악 가수의 ‘난장(亂場)’ 같은 시끌벅적함이 아니라 클래식 연주자의 낮고 묵직한 떨림에 더 가깝다. 김동률은 “우리는 스탠딩에 연연하지 않는다”며 “나만의 속도로 (공연)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동률이 지난 17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2026 김동률 콘서트-오래된 노래’ 공연을 열었다. 2019년 공연 이후 세종문화회관 극장 공연은 7년 만이다. 약 3000석은 치열한 예매 경쟁률을 뚫은 관객들로 이내 꽉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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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멜로디’)과 2025년(‘산책’)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KSPO돔(약 1만5000석 규모)에서 하던 것에 비하면 5분의 1 규모였으나 공연의 열기는 한 치도 모자라지 않았다. 7회 동안 총 2만1000여 명이 다녀갔다.
김동률이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2026 김동률 콘서트-오래된 노래’에서 5명의 밴드와 호흡을 맞추는 모습. 뮤직팜 제공
이번 공연에서 김동률은 “오케스트라 없는” 무대를 강조했다. 김동률 콘서트에 빠지지 않은 열성 팬들은 잘 알겠지만 그의 공연에선 오케스트라 반주가 ‘시그니처’다. 바이올린, 첼로, 트럼펫 등으로 구성된 관현악 밴드와 기타, 베이스, 드럼 등의 록 밴드를 섞은 퓨전 밴드. 여기에 김동률이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화룡.정’을 했다. 그런데 이번엔 관현악 밴드 숫자를 확 줄였다. 뮤직비디오 출연으로 김동률과 인연이 있는 배우 이동욱은 오프닝 멘트에서 이를 “칼과 방패 없이 (공연)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김동률의 말처럼 단독 피아노 연주곡 ‘겨울잠’으로 무대를 연 공연은 중저음의 울림이 인상적인 ‘그림자’, 재즈로 편곡한 ‘문라이트’, 브라스를 더한 ‘바이크 라이딩’ 등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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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 반주가 줄어든 자리는 김동률의 진한 보컬로 가득 채웠다. 그의 대표곡 ‘취중진담’과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의 클라이맥스 포인트인 중저음의 압도적 음색이 더 또렷하게 살아났다. 이번 공연은 ‘산책’ 콘서트를 했던 1년 여 전부터 기획했다고 한다. 객석 수는 적더라도 관객과 더 가까이서 오롯이 음악에만 몰두하는 콘서트. 김동률은 “발가벗고 시작하는 느낌”이라며 각별한 긴장감을 전하면서도, “7년 만의 극장 공연이니 제 마음껏 선곡하겠다”며 아티스트다운 고집을 공연에 꾹꾹 눌러 담았다.
밴드 형식만 바꾼 것도 아니다. 김동률은 관객과의 거리를 더욱 좁히기 위해 2곡을 부르고 난 뒤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름의 끝자락’과 ‘문라이트’를 연달아 부르고 나서 녹색의 밀밭을 영상 처리하지 않고 “한 땀 한 땀 직접 심었다”고 소개하거나, 피아노를 담당하는 멜로망스 정동환이 공연을 위해 맹연습했다는 식이다. 너무 친절한 설명에 관객들은 연신 감탄사를 연발했다.
“오케스트라 없이” 준비했다고 하지만 밴드의 힘은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규모를 압축하니 오히려 세기(細技)가 살아났다. 밴드 연주자는 14명에 불과했지만 파워와 입체감은 대형 오케스트라 못지않았다. 특히 김동률의 보컬이 생생히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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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음역대에서의 미세한 떨림, 중저음역대의 중후 장대한 울림이 극장 안을 가득 메우고도 남았다. 10명의 퓨전 밴드가 협연한 ‘뒷모습’, 바이올린·첼로·반도네온(개량된 아코디언)·기타·콘트라베이스가 마치 현악 5중주처럼 하모니를 이뤄 탱고 스타일로 편곡한 ‘낙엽’을 부를 때 절정에 달했다. 김동률은 예리하면서도 풍부한 보컬로 밴드를 이끌었다. 마치 세계적인 클래식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처럼, 밴드와 한 몸이 된 듯 호흡했다. 하지만 이들을 지휘하는 건 손끝의 지휘봉이 아니라 리듬을 타고 흐르는 그의 탄탄한 보컬이었다.
뭐니 뭐니 해도 2부 막바지에 나온 발라드 히트곡은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다. 김동률은 “그래도 김동률표 발라드는 들려드려야죠”라며 ‘그건 말야’ ‘취중진담’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연이어 열창했다. 1990∼2000년대를 대표하는 명곡들이다. 관객들은 눈을 지그시 감고 보컬의 향연을 만끽했다. 저마다 20대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황홀한 표정이었다.
클래식 연주회 같은 인터미션 휴식을 제외하면 김동률은 옷도 갈아입지 않고 2시간여를 내리 질주했다. 부드럽지만 강하게 어쿠스틱의 매력을 뿜었다. 그는 “(작은 극장 공연)에 다들 멋있다고 할 줄 알았는데… 객석 숫자가 너무 적다고 하더라… 하지만 저도 조성진 티켓 예약에 매번 실패한다”면서 “초심을 잃으면 안 된다. 조금만 더 늙어서 다시 만납시다”라며 손을 흔들고 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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