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 만평 ‘안마봉’은 과거 ‘신동아’와 ‘동아일보’에 실린 만평(동아로 보는 ‘카툰 100년’)에서 영감을 얻어 같은 그림체로 오늘날의 세태를 풍자한 만평입니다.
ⓒ정승혜
저마다의 소질을 살려 꿈과 희망을 노래해야 할 대한민국 청년들이 빚이라는 쇠공을 차고 신음하고 있다. 치솟는 주거비와 학자금 탓에 '부채 청년' 10명 중 6명은 2건 이상의 대출을 안고 있는 다중 채무자로 나타났다.
10월 15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청년 부채 현황과 채무조정제도의 정책과제 연구'에 따르면, 한국평가데이터(KoDATA)가 제공한 금융기관 대출·연체 이력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신용정보가 있는 19~34세 청년 중 대출을 받은 청년은 409만6660명(2024년 말 기준)으로 나타났다. 전체 청년 중 과반인 55.5%에 해당한다.
대출을 받은 청년 중에서도 168만5073명(41.1%)은 이 1건의 대출이, 나머지 58.9%는 2건 이상 대출이 있었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7건 이상 대출을 받은 청년이 13.6%로 나타났다는 .. 이는 40대(8.5%) 50대(7.5%), 60대(4.6%) 등 기성세대와 비교해 약 2배 가까이 높은 수치로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대출 종류는 전 연령대에서 신용대출이 1위였다. 청년의 경우 신용대출(41.9%)에 이어 학자금대출(29.3%), 지급보증담보대출(24.9%), 전세자금담보대출(18.8%), 주택담보대출 9.6%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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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액대별로는 청년 55.8%가 3000만 원 미만 소액 구간에 몰려 있지만, 고위험 대출로 분류되는 신용평가 7등급 이하 대출이 49.8%로 나타났다.
물론 저마다의 사정은 있겠으나, 청년들은 불안정한 고용과 주거 불안 등 복합적인 문제에 노출되는 나이대인 만큼 소득이 끊기거나 줄었을 때 상환을 유예해 주거나 경제적 자립을 돕는 청년 사회안전망 재설계가 필요해 보인다. 자신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달려야 할 청년들이 다중채무라는 거대한 쇠공을 차게 된 데에는 기성세대의 책임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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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로 보는 '카툰 100년'
1933년
빚에 묶인 농민, 8억640만 원의 무게
전조선 농업부채 8억640만여 원(조선농회조사) - ‘신동아’ 1933년 12월호
‘신동아' 1933년 12월호에 실린 만평에는 남루한 옷차림의 농민이 주저앉아 있다. 그의 발목에는 커다란 쇠공이 연결돼 있다. 그림 아래에는 '전 조선 농업 부채 8억6400만 원(조선농회 조사)'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농민의 발목을 잡은 쇠공은 식민지 조선 농촌이 짊어진 빚의 무게를 상징한다.
당시 조선 농촌은 만성적인 부채에 시달리고 있었다. 일제강.기 산미증식계획으로 쌀 생산은 늘었지만 그 혜택이 농민에게 고르게 돌아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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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농민이 지주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고, 수확물의 상당 부분을 소작료로 내야 했다. 종자와 비료 구입비, 생활비를 마련하려면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농사를 지으려고 빚을 내고, 수확한 곡식으로도 빚을 갚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1929년 시작된 세계 대공황은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면서 농가 수입은 줄었는데 빚과 소작료 부담은 줄어들지 않았다. 쌀값이 떨어지자 빚을 갚기 위해 더 많은 쌀을 팔아야 했다.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고, 일부 농민은 토지를 잃거나 농업 노동자로 전락했다.
조선총독부는 농촌의 위기에 대응한다며 1932년부터 농촌진흥운동을 추진했다. 근검절약과 저축, 생활 개선을 강조하고 농가 부채를 정리하는 정책도 시행했다. 그러나 높은 소작료와 불안정한 경작 조건, 농산물 가격 하락과 금융 비용 등은 절약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만평 속 농민은 쇠공의 줄을 끊으려 애쓰지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않는다. 그저 몸을 웅크린 채 앉아 있다. 아무리 일해도 빚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에 지친 농민의 모습으로 읽힌다.
‘신동아' 만평이 보여주는 것은 농가 부채의 규모만은 아니다. 일할수록 빚이 쌓이고, 빚 때문에 다시 일해야 했던 식민지 농업경제의 모순도 함께 보여준다. 쇠공 하나가 당시 농민들이 처한 현실을 압축해 보여주고 있다.
황승경 예술학 박사·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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