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가에 진심인 사람들이 이룬 공동체.?'요가 하우스'는 단지 요가 강습소가 아니라 요가 스튜디오이자 공동생활 공간(yoga and shared-living community) 이었다.
ⓒ 이안수
그릇을 바꿔야
아내가 요가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 시작이 과테말라 체류 연장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한 가지 새로운 배움을 시작하면 여전히 열정을 쏟는 아내의 모습은, 세상을 항해하는 한 배를 탄 동지인 나에게도 의지를 잃지 않는 데 도움이 된다. 열정과 호기심이 사그라드는 나이를 탓하지 않고 그 불씨를 계속 살려 나가는 일은 몸과 정신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시니어의 건강을 지키는 데 꼭 필요한 일이다.
아내는 몸의 기능이 마치 계단을 내려가는 것처럼 툭툭 떨어지는 것을 느낄 때마다 순응하기보다 항전하는 모습이다. 멕시코에서는 사막에서 자전거를 탔고 군인들과 함께 수영을 했다. 캐나다에서는 때때로 곰이 출몰하는 긴 숲길을 오가며 태극권 아침 수련에 합류했다.
한곳에 정주하는 짧은 시간 동안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었다가도 다시 표류하는 자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유랑자의 삶이다. 그렇게 맺은 인연을 떠나는 것이 아쉬워 새로운 시작을 망설이기도 했다. 셀라(케찰테낭고)에서 잔병치레가 잦아지면서 명상만으로는 정신을 담는 그릇 자체를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실감하고 다시 용기를 냈다. 그릇의 강도를 높일 방법으로 찾은 것이 요가였다.
먼저 주변을 살폈다. '요가 하우스(Casa de Yoga)'는 우리 호스텔의 사거리 건너편에 숨은 듯 자리하고 있었다. 낡은 건물 대문에 걸린 작은 나무 간판 중앙에는 힌두교와 불교 등에서 우주의 첫 소리이자 신성한 음절로 여겨지는 옴(Om, ?) 기호와 아무 형용사 없이 쓰인 YOGA HOUSE라는 손글씨가 적혀 있었다. 문을 두드렸고 요가의 문이 열렸다.
요가 공동체
그곳은 단지 요가 강습소가 아니었다. 요가 스튜디오이자 공동생활 공간이었다. 요가에 진심인 사람들이 이룬 공동체임을 나중에 알았다.
남미와 북미는 물론 유럽 각국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며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각자가 지향하는 일상을 이 낡은 한 지붕 아래에서 살아내고 있었다. 이 집에는 11개의 방이 있다. 1층의 일부를 요가 스튜디오로 사용하고 2층에 공유 주방과 서재가 있어서 식사와 회의와 파티가 이루어진다. 두 개의 옥상 중 하나는 피트니스 공간으로 쓰고 있다.
단기 여행자들도 일일 혹은 주간 단위로 요가에 참여할 수 있다. 이곳 사람들은 각기 다른 나라에서 다른 이유로 합류한 사람들로 요가라는 공통. 외에는 닮은 .을 찾기 어려웠고 나이도 편차가 컸다. 그럼에도 이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가족 같기도 한 사회적 관계가 객지에서 서로의 일상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 호스텔 부엌에서 만든 한국음식 한 접시를 들고 요가원을 찾았다.?매일 함께하는 요가 외에 일요일 저녁 7시에는 식사도 나눈다. 각자 한 가지씩 준비한 메뉴를 평소에는 책상으로 활용하는 긴 테이블에 펼쳐 놓고 함께 먹는다.
ⓒ 이안수
매일 함께하는 요가 외에 일요일 저녁 7시에는 식사도 나눈다. 각자 한 가지씩 준비한 메뉴를 평소에는 책상으로 활용하는 긴 테이블에 펼쳐 놓고 함께 먹는다. 칠판에 각자가 준비할 음식을 미리 적어 놓는 것으로 메인 디시와 디저트의 메뉴가 겹치는 것을 피한다.
이 팟럭 디너(Potluck Dinner)에서 자기 나라의 익숙한 전통 음식이 준비되는 경우가 많아서 레시피를 공유하는 얘기로 시작하기도 하지만 먹고사는 일과 앞으로 지향하는 삶의 방향까지 온갖 이야기가 뒤섞인다. 함께하는 식사 한 끼에서 궁금하거나 답답했던 마음이 출구를 발견하기도 한다. 구성원의 생일에는 팟럭 디너와는 별개로 팟럭 파티가 열린다.
낡은 건물에서 23년을 이어 온 공동체의 보스 요기, 케빈
요가를 좋아하던 케빈(Kevin)은 미국 디트로이트 사람으로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며 함께 사는 공동체를 꿈꾸었다. 그는 자동차 산업으로 가득했던 그 도시를 떠나 과테말라로 온 것이 30여 년 전이었고 안티구아에서 요가 수련을 하다가 이런 공동체를 구상하고 셀라로 온 건 23년 전이었다.
프로그램은 가장 기본적이고 전통적인 호흡(프라나야마, Pr???y?ma)과 자세(아사나, ?sana)에 충실한 '하타 요가(Hatha Yoga)'와 강도 높고 역동적인 '아쉬탕가 요가(Ashtanga Yoga)'는 물론, 고강도 운동과 휴식을 반복하는 체력과 지구력 향상 훈련인 'HIIT (High Intensity Interval Training)'까지 새벽, 오전, 오후에 이어진다.
▲ 이곳 사람들은 요가라는 공통. 외에는 닮은 .을 찾기 어려웠다.?그럼에도 이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가족 같기도 한 사회적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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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금은 월간 150케찰(GTQ), 한화로 약 2만 6000원이다. 원하는 사람은 이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이곳 입주자의 숙박 요금은 호스텔의 반값에 불과하고, 모든 요가 수업에는 무료로 참가한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요금으로 운영이 지속될 수 있는지를 묻자 케빈이 웃으며 답했다.
"이 건물은 원래 비어 있던 건물이었어요. 지붕에서 비가 새고 바닥에도 금이 가 있었죠. 주인은 제게 아주 저렴한 가격에 렌트를 주었고 제가 그 모든 문제를 보수하고 관리하기로 했어요. 주인은 지금까지 렌트비를 올리지 않은 대신 이 건물 관리에 어떤 비용도 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인과 저와 입주자와 수강생 모두가 승리자인 셈이죠."
요가 수업을 케빈 홀로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가르칠 만한 수준에 오른 사람이 수업을 담당하기도 한다. 수업 수익은 강사별로 분배한다. 그런 면에서는 요가 협동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일요일의 팟럭 디너 전에 공동체의 구성원이 참여하는 회의가 먼저 열린다. 공동체 생활의 불편한 .에 대해서 토론하거나 도입할 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한다. 건물 주변과 옥상에 작은 정원을 조성하여 허브나 채소를 재배해 공동 식사 준비에 사용하고 재활용이나 친환경 생활 습관을 공유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 요가 공동체를 방문할 때마다 라틴아메리카의 어느 혁명가가 꿈꾸었던 이상적인 공화국이 작게 실현된 듯한 느낌이다.
몸과 마음의 실험실, 공동체
아내는 요즘 셀라 밖으로 나가는 일정이 없는 경우, 아침 프로그램부터 오후 프로그램까지 두루 참여하고 있다. 처음 2주 동안은 무리한 나머지 발등이 붓고 두어 번 수면 중에 다리 경련이 일어나는 일도 있었지만 이제는 회복되었고 아우성치던 온몸 근육의 반항도 잦아들었다.
케빈과 동료 수련자들은 요가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아내의 열성을 몹시 반기는 모습이란다. 케빈은 아내가 한 동작을 건너뛰어도 '민지!'를 외치며 엄격히 독려하고 이상이 있는 근육에 대해서 하나하나 원인을 짚어 주면서 대응법을 설명해 주고 있다.
아내는 이런 스승과 동료들을 만난 행운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 또한 이곳을 떠난 뒤에도 홀로 수련을 지속할 수 있을 만한 수련법을 익히기 위해 요가원 출입에 열성이다.
사실 아내가 좋아하는 것은 건강을 위한 요가 수련뿐이 아니다.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저마다의 라이프스타일과 삶에서 체득한 지혜를 나누는 다문화적 분위기를 사랑한다. 팟럭 디너 자리에서 오가는 다양한 레시피와 이야기도 즐겁다. 영어와 스페인어 등 필수적인 언어에 노출되는 것은 덤이다.
지난주 금요일은 공동체의 창립자인 케빈의 생일이었다. 아내 덕분에 나는 매번 팟럭 디너와 파티에 초대받고 있다. 생일 축하 노래까지 거절하는 수줍은 케빈을 불러 세우고 아내가 선창하고 다른 사람들도 동참해서 생일 축하곡을 불러주었다. 그는 노래를 듣는 그 시간을 땀을 쏟는 HIIT 훈련 시간보다 더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옥상에서의 체력 훈련 뒤에 솔선해서 낙엽을 쓸어주는 아내의 명을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 빌린 중고자전거로 여정을 계속할 체력을 키우는 일환으로 두어 달 계속했던 자전거 타기?멕시코 라파스에 잠시 정주하는 동안 '2024년 바하칼리포르니아수르주 산악 사이클링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었다. 6km의 다섯 개 사막산을 한 바퀴 도는 여자부문의 최고령자였다. 그로부터 2년, 노화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아내가 노화에 저항할 방법으로 찾은 것이 요가였다.
ⓒ 이안수
공용공간의 벽에는 타인을 비판하기보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이 종교와 정신 수련의 진정한 목적이라는 제14대 달라이 라마 성하 텐진 갸초의 메시지가 붙어있다.
"내면 들여다보기. 종교의 진정한 목적은 타인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비판해야 합니다. 나는 나의 분노에 대해, 나의 집착에 대해, 나의 증오에 대해, 나의 오만과 질투에 대해 얼마나 대처하고 있는가? 이것들이 바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매일 。검해야 할 것들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실험실로 삼아, 여러분 자신의 정신적 기능에 대해 철저한 연구를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내면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가능성을 검토해 보십시오."
이 공동체에서 요가가 본질적 목적이 아닌듯했다. 몸은 마음을, 마음은 몸을 상호 보완하는 관계인 것을 망각하고 노화라는 현상을 핑계 삼은 내 게으름을 성하께서 나무라고 있었다.
아내를 통해 무너지는 것들에 맞서며 다시 쌓아 가는 시니어 몸의 대응법을 살핀다. 오늘 오전, 요가원에서 돌아온 아내가 샤워를 하려고 타월을 챙겨 나가다 발길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요가 수련에 합류하기를 여전히 미루고 있는 나에게 아내가 말했다.
"당신 몸 아프다고 하면 당신 버리고 나 혼자 떠날 거예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모티프원의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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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열성을 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