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이 다시 보호를 요청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최초 심사에서 자신의 박해 경험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거나, 뒤늦게 관련 자료를 확보하기도 한다. 난민심사에 출석하지 못하거나 제출한 자료에 문제가 있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본국으로 돌아가도 안전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을 충분히 살펴보지 않은 채 난민신청을 종결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지난 28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국회에서 논의 중인 '난민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난민 재신청 요건을 지나치게 제한하지 않고, 형식적인 사유만으로 난민신청을 각하하기보다 개별적인 사정을 고려하여 실질적으로 심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난민심사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개선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3월 김기표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의안번호 2217617호)은 중대한 사정변경 없는 재신청, 거짓 서류 제출이나 거짓 진술, 면접 출석요구에 3회 연속 불응하는 경우 등을 이유로 난민신청을 각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난민심사의 효율성을 높이고 심사 지연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지난 7월 9일 난민인권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법안의 폐기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7월 21일 성명을 발표하여 개정안이 난민 보호의 근간을 훼손하고 강제송환금지 원칙을 위반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며 법안 철회를 촉구했다. 이번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표명은 시민사회와 법조계에서 제기해 온 우려가 국가인권기구의 공식적인 검토에서도 주요 쟁.으로 확인되었다는 。에서 의미가 있다.
ⓒ 난민인권센터
다시 신청할 수밖에 없는 이유
난민신청자는 자신이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박해받을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박해를 피해 급하게 본국을 떠난 사람이 관련 자료를 충분히 확보하기는 어렵다. 본국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은 사람이라면 해당 정부에 자신의 피해를 증명할 서류를 요청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위험할 수 있다.
진술 역시 마찬가지다. 심각한 폭력과 박해를 경험한 사람이 낯선 나라의 공무원 앞에서 자신의 경험을 처음부터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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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성폭력 피해나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박해처럼 쉽게 털어놓기 어려운 경험도 있다. 충분한 통역이나 법률조력을 받지 못했다면 자신의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최초 심사에서 설명하지 못했던 박해 사유를 뒤늦게 밝히거나, 새롭게 확보한 자료를 제출하기 위해 다시 난민신청을 하는 경우가 있다.
출신국의 정치적 상황이나 신청자 개인의 사정이 달라져 귀국의 위험이 커질 수도 있다. 실제로 법무부의 2025년 말 기준 통계에 따르면, 재신청을 통해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은 91명, 인도적체류허가를 받은 사람은 222명이다. 모두 313명이 최초의 불인정 결정 이후 다시 보호를 요청하여 한국에 머물 수 있는 법적 지위를 얻은 것이다. 재신청이 단순히 제도의 남용으로만 설명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개정안은 재신청의 요건이 되는 '중대한 사정의 변경'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개정안이 제시하는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새로운 자료', '난민 신청자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경우' 등의 요건이 재심사를 시작하는 단계부터 지나치게 높은 입증 부담을 부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초 심사에서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던 사정을 다시 살펴보기 위해 재신청하는 것인데, 재심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새로운 자료가 결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임을 입증하도록 요구한다면 실질적인 심사의 기회가 사라질 수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최초 난민심사가 충분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졌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이다. 통역과 법률조력 등 기본적인 절차적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지 못했고, 중요한 박해 사유가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다면 그 책임을 신청자에게만 돌릴 수 없다. 민변 역시 성명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다.
출입국행정 당국의 부족한 자원 등으로 많은 난민신청자들이 최초 심사에서 자신의 박해 사유를 충실히 심사받지 못하고 있으며, 법률대리인의 도움 없이 소송을 통해 난민불인정결정의 위법성을 인정받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행정심사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사법적 구제절차조차 충분히 기능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재신청마저 제한하는 것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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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난민 재신청에 대해 처음부터 동일한 심사절차를 반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재신청을 제한하려면 적어도 최초 심사가 충분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졌는지, 다시 살펴보아야 할 보호 필요성이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최초 심사의 한계를 그대로 둔 채 재신청의 문턱만 높여서는 안 된다.
형식적인 사유만으로 심사를 끝내서는 안 된다
개정안이 정한 다른 각하 사유 역시 난민신청자가 처한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난민신청자는 본국에 남아 있는 가족이나 지인, 제3자의 도움으로 자료를 확보하는 경우가 많다. 제출한 자료가 거짓으로 밝혀졌다고 하더라도 신청자가 이를 알고 있었는지, 해당 자료가 난민신청의 핵심적인 내용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별도로 살펴야 한다. 진술이 달라졌다는 사실 역시 반드시 의도적인 거짓말이나 사실 은폐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개정안은 거짓 서류 제출 등이 '법원의 판결 등으로 명백히 밝혀진 경우'라는 요건을 두고 있지만, 민변은 어떠한 판결이나 절차를 통해 이를 확인할 것인지 불분명하고 그 판단이 행정기관의 재량에 맡겨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면접에 출석하지 못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난민신청자 중에는 안정적으로 머물 집이 없어 거처를 자주 옮기는 사람이 있다. 체류자격과 신분증 문제로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를 개통하기 어렵거나, 출석요구서가 발송된 주소지에서 더 이상 생활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주소나 연락처 변경을 신고했더라도 그 정보가 난민심사 담당 부서에 원활하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현장에서 제기되어 왔다. 질병이나 장애, 구금과 입원, 어린 자녀의 양육 등으로 면접에 출석하지 못할 수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출석요구가 실제로 전달되었는지, 신청자에게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난민심사에서 각하는 단순히 행정절차 하나를 종료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 사람이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어떤 위험에 처할 수 있는지 충분히 판단하지 않은 채 보호를 요청할 기회를 닫는 일이 될 수 있다.
바뀌어야 할 것은 난민신청자가 아니라 난민심사제도
이번 국가인권위원회 의견표명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난민심사의 장기화를 신청자들의 반복적인 신청만으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이다. 인권위는 심사인력 부족과 통·번역 지원 미흡, 전문성 확보의 어려움 등 난민심사 제도 자체의 문제를 함께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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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2023년에도 난민심사 지연 문제와 관련하여 전문 심사인력 확충과 난민위원회의 상설화 및 위원 확대 등을 권고한 바 있다.
난민심사가 장기화되는 문제는 분명히 해결해야 한다. 신청자 역시 자신의 체류와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그동안 취업과 생계, 주거 등 일상생활의 어려움도 감당해야 한다. 신속한 난민심사는 난민신청자의 권리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러나 심사기간을 단축하는 것과 심사받을 기회를 줄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최초 심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신청자는 이의신청과 소송을 거쳐야 하고, 경우에 따라 다시 난민신청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불안정한 삶이 길어지고 행정적인 부담도 커진다. 그런데도 이러한 결과를 난민신청자의 반복적인 신청 때문이라고만 설명한다면, 제도 자체가 만들어내는 문제는 가려지게 된다.
난민심사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전문성을 갖춘 심사인력을 확충하고, 통역과 번역을 충분히 제공하며, 신청 초기부터 법률조력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최초 심사의 질과 공정성을 높이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재신청과 분쟁을 줄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박해 위험이 명백한 신청자에게 신속하게 보호를 제공하는 방식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지난 7월 시민사회단체와 민변은 이번 난민법 개정안의 폐기를 요구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번 의견표명에서 재신청 요건을 완화하고, 형식적인 사유로 각하하기보다 개별 사정을 고려한 본안 심사를 보장하며, 난민심사의 전문성과 절차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요구의 수위에는 차이가 있지만, 난민 보호절차에 접근할 기회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심사 지연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된다는 공통된 우려를 담고 있다.
국회가 이번 개정안을 심의하면서 먼저 살펴야 할 것은 난민신청을 더 쉽게 각하하는 방법이 아니다. 최초 심사에서 충분히 검토되지 못한 보호 필요성은 없는지, 재신청이 반복되는 원인은 무엇인지, 현재의 심사제도가 보호가 필요한 사람을 제대로 발견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난민신청을 각하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본국에서 겪을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보호가 필요한 사람을 심사절차 밖으로 밀어낸다고 해서 국가의 보호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난민심사의 문을 더 빨리 닫는 것이 아니라, 그 문을 통해 보호가 필요한 사람을 제대로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은 222명이다.